"문제는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그 목적지가 어디냐는 것이다."
-메이벨 뉴컴버
메이벨 뉴컴버의 이 문장을 입 안에서 천천히 굴려본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정반대의 믿음 속에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습관처럼 속도를 점검한다. 남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내 나이 즈음이면 마땅히 도달해 있어야 할 지점에 깃발을 꽂았는지 그 효율과 성과를 끊임없이 셈한다. 시계는 자주 들여다보지만 정작 나침반을 꺼내 본 지는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 그 방향에 대한 물음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쯤에서 우리는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전력질주하고 있는 이 길은 진정 나의 선택인가
아니면 그저 멈추는 법을 잊은 시대의 관성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불안의 근원은 걸음이 느리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진정한 두려움은 내 발이 닿는 이 길이 도대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때 짙은 안갯속을 걷는 듯한 막막함에서 피어난다. 반대로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명확히 알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목적지가 선명한 사람에게 속도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확신이 있다면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도 때로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시간조차 견딜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과정이 아무리 고단하고 버거워도 그 길 끝에 놓인 의미가 나를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꿔보자.
나의 목적지에 마침내 도달했을 때
그곳에서 나는 누구와 함께 어떤 모습으로 서 있고 싶은가.
단순히 '무엇'이 되겠다는 성취를 넘어 그곳에서의 나의 상태와 가치를 그려볼 때 우리의 발걸음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목적지가 흐릿하면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도착한 자리가 낯설다. 잘 해냈다는 말보다 잘못 온 것 같다는 감정이 먼저 앞선다. 그 어긋남은 성실함의 부족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삶의 만족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느냐보다 왜 그것을 선택했느냐에 가깝다. 같은 하루를 보내도 맥락에 따라 마음의 무게는 전혀 달라진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잊지 말고 확인해야 한다.
오늘 하루 비록 눈에 보이는 거대한 결과물은 없었더라도
나를 미소 짓게 한 과정의 순간은 무엇이었는가.
결국 사람은 속도로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 도착한 지점에서 이 길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에만 그 여정은 비로소 '잘 살았다'라고 불린다. 삶은 속도전이 아니라 나만의 방향을 찾아가는 긴 순례이기 때문이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