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 사이
필사를 하다 보면 손끝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새 입술이 달싹이며 글자를 뒤쫓고 목소리는 문장의 결을 따라 흐른다. 김은주 작가의 『달팽이 안에 달』을 옮겨 적던 날, 나는 '사람'과 '사랑'이라는 두 단어 사이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사람을 발음하면 입술이 닫히고,
사랑을 발음하면 입술이 열린다.
사람은 사랑으로 서로를 열 수 있다.
-달팽이 안에 달, 김은주
본래 나는 단단하고 틈이 없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도,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도 빈틈없는 문장처럼 견고하기만 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다 보면 어느새 나는 빈틈 투성이가 되고 만다. 세상의 모든 따뜻한 빛을 다 흡수할 것처럼 속절없이 열리고 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랑'. 이 두 단어를 소리 내어 뱉었을 때 전해지는 묘한 물리적 감각이 나의 시간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사람'을 발음할 때 단단히 맞물리던 입술이 '사랑'에 이르러 부드럽게 열린다는 그 단순하고도 선명한 사실. 닫힌 입술이 곧 사람의 닫힌 마음이라면, 그 빗장을 가만히 열어젖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이 다정한 통찰 앞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펜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문장은 나를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나직이 소리 내어 말해보라고 당신의 몸으로 이 문장을 직접 감각해 보라고 조용히 권할 뿐이었다. 실제로 '사람'에서 발음을 멈추면 어딘가 꽉 막힌 듯한 고요가 찾아오지만 '사랑'으로 문장을 넘기면 비로소 막힌 곳이 뚫리며 길이 나는 기분이 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필사란 문장의 뜻을 머리로 이해하는 행위를 넘어 어떤 태도를 몸에 오롯이 새기는 일이다. 글자를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결한 숨결을 내 안으로 조심스레 옮겨오는 일이다.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은 아마도 세상을 이기려 드는 이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잘 흔들리고 쉽게 다치기에 타인에게 닿을 말을 남보다 더 조심스럽게 고르고 고르는 사람일 테다. 상대의 닫힌 마음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려 애쓰기보다 그 마음이 스스로 차올라 열릴 때까지 곁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 문장을 통과하고 나면 뜨거운 감동보다 먼저 미지근한 '안심'이 찾아온다. 아, 여전히 이렇게 여린 언어로 말해도 괜찮은 세계구나. 크고 단단한 것들만이 힘을 갖는 것은 아니구나. 작고 부드러운 말도 누군가의 굳게 닫힌 마음을 기어이 움직일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사람과 사랑 사이에는 단 한 글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받침 하나가 닫힌 입술을 열고, 빈틈없던 사람을 열고, 끝내 닫힌 세계를 연다. 필사를 하며 그 글자를 천천히 옮길 때 나는 단어가 아니라 어떤 온기를 옮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에서 사랑으로 가는 그 짧고도 먼 여정을 이제 나는 내 입술의 가장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기억한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