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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는 연습

by 꿈꾸는 나비

운전면허를 따고 소위 말하는 장롱면허로 몇 년을 지냈다. 그러다 면허 딴 지 거의 10년 만에 정말 실전 운전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막상 운전대 앞에 앉아보니 한 치 앞을 보느라 진땀을 뺐다. 코앞에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주차장이나 코너를 돌 때는 거의 기어가듯이 갔고 도로 정체의 주범이 된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운전을 하는 게 맞나…’ 싶은 순간이 많았다.


차에 ‘도로주행 연습 중’이라고 크게 붙여놨지만 사람들은 기다려주지 않더라. 경적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 와중에 옆에서 선생님은 계속 말했다.


“멀리 보세요. 멀리 보면서 가세요.”


아니, 지금 한 치 앞도 제대로 안 보이는데 어떻게 멀리를 본단 말인가 싶었다. 입으로는 ‘네, 네’ 하면서도 마음처럼 멀리 내다보는 게 쉽지가 않았다.


생각해보면 자동차 게임을 해봐도 알 수 있다. 커브가 있다고 해서 핸들을 휙휙 꺾는 사람은 없다. 그건 진짜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는 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 핸들을 슬쩍 잡아만 줘도 차는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어간다.

가까이만 보면 커브가 너무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멀리 보면 그 길은 그냥 하나의 곡선일 뿐이다. 당장만 보면 직선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 말이 이해가 됐다. 시선을 들어 멀리 두니 지금 가야 할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핸들을 쥔 손에 힘도 자연스럽게 빠졌다. 조급하게 이것저것 피하려다 보면 오히려 핸들은 더 흔들리고, 차는 위태로워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2006년 11월 23일 : 경제신문 파이낸셜 뉴스 중에서

손정의가 그랬다지.

“눈앞을 바라보면 멀미를 느끼며 포기하게 된다. 그럴 때는 몇백 킬로미터 앞을 보면 평온한 바다가 보인다.”


우리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 뭔가를 휙 꺾어야 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 멀리에 시선을 두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늠하면서 천천히 준비해가면 되는 것이다.


시선을 너무 가까이에 두면 사소한 것에도 금세 흔들리고, 어지럽고, 몇 발짝 못 나가게 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장애물만 피하려다 보면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 놓치기 쉽다.

그러니 조금 멀리 바라보면 좋겠다. 가고 싶은 길을 눈으로 마음으로 그리면서. 방향이 보이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렇게 천천히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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