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가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 김경미, 다정이 나를
드라마 속에서 이 시를 처음 만나자마자 나는 흘러가는 영상을 붙잡아두고, 멈춰진 화면 위로 쏟아지는 문장들을 몇 번이고 입속에 머금었다.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손가락으로 그 문장을 가만히 끄적여보았다.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다는 그 역설적인 비명.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감각이 마치 길 위에 툭 튀어나온 돌부리처럼 자꾸만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려 해도 마음은 자꾸만 그 문장에 걸려 넘어졌고, 겨우 일어나 다시 한 걸음을 떼려 하면 또다시 그 자리에 툭, 걸려버리는 식이었다. 세상의 온기여야 할 ‘다정’이 어째서 누군가에게는 날카로운 흉기가 되는 걸까. 그 의문은 드라마 속 차무희를 가만히 응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시가 드라마의 몸을 빌려 내게 건네는 말을 조금씩 읽어낼 수 있었다.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 속 차무희는 다정을 밀어내는 사람이다. 마음속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키고, 상대의 온기가 닿기도 전에 먼저 서둘러 선을 그어버린다. 세상이 워낙 팍팍해서일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 하나 지키며 사는 일조차 만만치 않은 요즘, 우리 대부분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온몸에 가시를 세운 채 살아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가 건넨 아주 작은 친절에 울컥 눈물부터 차오르는 순간이 있다.
무희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 다정은 부드러운 위로라기보다 차라리 '자연재해'에 가깝다. 피할 수도, 대비할 수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풍우처럼 말이다. 그래서 무희는 겁을 먹는다. 그 달콤한 다정이 나를 무너뜨릴까 봐, 그 낯선 온기에 익숙해졌다가 다시 혼자가 되어 추워질까 봐 무서워서 먼저 밀어내고 만다. 그녀가 내뱉는 가시 돋친 말들은 실은 방어막인 동시에 "나를 좀 살려달라"는 가장 절박한 신호이기도 한 셈이다.
이상한 일이다. 화면 속 무희를 보고 있는데 자꾸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나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 안의 깊숙이 숨겨둔 가시들이 들킨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다. 이 드라마의 제목에 왜 '통역'을 끼워 넣었는지,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왜 하필 '통역사'인지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거절'은 사실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고, 누군가의 고집스러운 '침묵'은 사실 가장 뜨거운 '간절함'의 변주이기도 하니까.
자기만의 언어에 갇혀버린 고립된 마음에는 반드시 통역이 필요하다. 뾰족하게 날 선 말이 실은 다정해지고 싶다는 수줍은 고백임을 알아채 주는 존재.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떨고 있는 진심을 해석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안도하게 될까. 우리가 서로를 향해 조금 더 진솔한 언어를 건넨다면 언젠가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해석해 낼 수 있을까. "다정이 나를 죽일 것 같다"라며 뒷걸음질 치던 마음이 언젠가는 "당신의 다정 덕분에 살 것 같다"라고 환하게 웃어 보일 날이 올까.
이 시 한 구절이 이 드라마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른다. 무희의 가시가 부드러운 솜털로 바뀌는 그 기적 같은 통역의 순간을, 나 역시 간절히 기다리며.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