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이 다하는 쪽이면 충분하다
1856년 마이클 패러데이의 크리스마스 강연에서 패러데이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어떤 다이아몬드가 양초처럼 빛날 수 있을까요?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은 어두움에서 빛을 발하는 양초의 불꽃 덕분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양초가 비추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양초는 어둠 속에 스스로 빛나지요." 그리고 강연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나는 여러분이 양초처럼 빛나길 바랍니다. 여러분 세대가 이웃에게 빛을 발하며 인류에 대한 의무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면, 오늘 양초의 아름다움에 대한 강연은 보람될 것 같습니다."
판타레이 p.235
1856년의 크리스마스, 마이클 패러데이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떤 다이아몬드가 양초처럼 빛날 수 있겠느냐고. 다이아몬드의 화려함은 사실 제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타오르는 양초의 불꽃을 빌려와 산란시킬 뿐이다. 양초가 비추기 전까지 보석은 그저 단단한 돌에 불과하지만 양초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제 몸을 녹여 어둠을 밀어낸다. 이 질문을 읽으며 '빛이 나는 것'과 '빛을 내는 것' 사이의 거리를 생각한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전혀 다른 두 가지 태도였다.
나는 본래 승부욕이 희미한 사람이다. 앞질러 가는 쾌감보다 그 시간 안에 머무는 감각이 소중했고, 결과는 손에 남는 만큼이면 충분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의욕 없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타이틀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는 늘 증명과 설명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이기기보다 지치지 않는 법을, 나를 증명하기보다 이 일을 지속하는 법을 택했다. 모두가 정점을 향해 질주할 때 나는 그 사이의 틈새에서 즐길 수 있는 순간을 골라 담았다.
빛나기 위해 반드시 화려한 이름이 필요한가. 요즘 사람을 볼 때 성취보다는 태도와 말투, 습관을 보게 된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보다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채우는지가 그 사람의 진짜 형상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빛이 닿을 때만 존재하지만, 양초는 어둠 속에서도 제 몫의 불을 켠다. 나는 이제 쓰임이 다하는 쪽이면 충분하다고 느낀다. 보여주려는 태도는 눌러두고 본분의 힘을 다해 살아내는 것. 크게 빛나지 않아도 그 자리에 필요한 만큼의 온기면 족하다.
문장을 따라 걷다, 마지막 글입니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