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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솔 Mar 09. 2024

훌륭한 이놈아저씨가 되는 길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당시 프론트에서 고객을 맞이하는 업무를 했었기에 꽤나 다양한 상황을 마주했었다.


평소 어떤 사람이 와도 긴장하거나 당황하는 일이 거의 없는 나인데,


나를 가장 당황시킨건 의외로 평범한 어느 젊은 엄마와 어린아이였다.  


손님이 많아 둘은 줄을 서야만 했는데,


대기하는 동안 아이는 뭔가 불만이 있는지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칭얼댔다.


엄마는 그런 아이에 대해 이골이 났는지 피곤한듯 적당히 달래주며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내 앞에 그 둘이 왔을 때,


엄마는 결단이 난 듯 엄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일렀다.


‘자꾸 그러면 이놈아저씨가 뭐라한다!’


이 말에 재밌네, 생각하고 적당한 향수를 찾아 빠지려는 찰나 고개를 들어보니,


그 엄마의 진지한 눈은 나를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옆의 다른 직원도 눈치채고 나를 보며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조차 약간의 공포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 순간 그 셋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건 곧 인륜을 저버리는 짓이다.


‘이.. 이노옴~’


처음 겪는 상황에 사고가 정지한 나는 미처 이놈아저씨의 특성들을 제대로 장전하지 못했다.


엄해야만 할 표정은 웃어버렸고,


목소리에도 위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바람빠진 풍선마냥 ‘이노옴’이란 단어만 새어나왔을 뿐이다.


아이엄마는 실망했고,


직원은 아무도 안 무서워하겠다고 폭소했으며,


아이는 의외로 만만한 이놈아저씨에 어리둥절해했다.  


나는 반성했다.


아이엄마는 육아를 하며 최후의 수단으로써 이놈아저씨를 소환해왔을 터인데,


이 일을 계기로 아이는 이놈아저씨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을 것이며


엄마는 또 다른 최후의 수단을 강구해야만 할 것이 아닌가?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내 자신이 공포스럽고 엄한 존재가 되어야만 할 이유가 생겼다.


언젠가 마주할 또 다른 기회를 기약하며 훌륭한 이놈아저씨가 되기 위한 훈련에 돌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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