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채 한 살이 안 되던 때, 뉴저지의 이모집 2층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기어서 올라갔었다. 끝까지 다 올라가서는 돌아보더니 내려오는 것은 겁이 났던지 멈칫하더구나. 아빠가 올라가서 안아서 내려왔었다. 그게 벌써 10년을 훌쩍 넘긴 과거의 기억이 되었다. 차를 렌트해서 세 가족이 태평양을 낀 해안도로를 타고 올라가 나파에 가서, 너를 한 팔에 안고 와인을 시음하며 돌아다녔었다. 그리고 지금, 너는 엄마와 함께 뉴욕에 가 있다. 공항으로 들어가는 둘의 모습을 보니 키가 같아져 있었다. 너는 기억하지 못할 추억이 뉴욕에도 묻어 있지.. 아장아장에서 성큼성큼으로 변했듯, 뉴욕도 많이 변해서 우리 가족의 추억은 많이 흐려졌을 것이다. 너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울 것이다. 흐르는 시간 위에서 바라보는 수많은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것으로 보이듯 말이다.
너를 보고, 너와 함께 있는 시간은 행복이었다. 지난 2주를 함께 있으면서 아빠는 그 행복함을 새삼 다시 느꼈다. 친밀감, 든든함, 충만 같은 것이 안에 가득 있어서, 행복감은 다른 행복과는 조금 다른 기분으로 다가온다. 코타츠에 함께 앉거나 누워 부대끼면서도 싫지 않은 친밀감이 있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작은 미소가 지어진다. 너는 엄마 아빠에게 그러한 존재다. 존재의 이유란 것은 없다. 단지 있기에 좋은, 그런 너인 것이다. 다만, 행복은 너무 잘 굴러가면 부딪혀 깨질까 봐, 약간의 흠을 주었다. 너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걱정과 고민들.. 무엇을 말하는지 너도 잘 알 것이다.
너는 아직 어리다. 아빠는 10살이 넘으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재량을 많이 주어야 한다 생각한다. 주어진 재량껏 해 보고 실패도 해 보고, 잘 되면 우쭐해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성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위험하거나 무모하거나, 판단이 너무 섣부르거나 해서 아빠는 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너는 타지에 있으면서 네가 몸담아야 할 한국사회 안에서의 재량을 제대로 활용해 본 적이 없다. 네가 아직 어린 이유이고, 아빠가 너를 계속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너는 이제 제대로 성장을 해야 할 때이다. 몸도 마음도, 언제나 안락함만 찾을 수 없는 시기가 시작되고 있다. 아빠는 ‘네가 많이 컸구나.’라고 느낄 때를 기다린다. 천천히, 차분하게 기다릴 것이다.
아빠는 성장할 너에게 건넬 한 가지 중요한 도구로서, 언어를 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어다.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은 한 언어를 배우기엔 무척 짧은 시간이지만, 너는 그 시간 동안 알차고 든든하게 도구를 연마했다. 영어를 배우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잘 활용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언어라는 것은 의사표현의 수단으로써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생각을 정리하고 깊이를 만들어서 소리로 만들거나 활자로 만들어야 한다. 언어는 너의 인격과 생각을 빚어내는 도구이다. 네가 영문학에서 헤매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빚어지는 생각들을 너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단지 그것만으로 온전함이 아니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은 많지만, 말에 생각을 담아 영어로 말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말을 한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고, 너의 영어공부는 거기에 가 닿아야 한다. 이것을 조금 달리 말하면, 너의 모어인 한국어로 말하고 쓰면서 너의 생각을 글에 담을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너의 모어인 한국어는 너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언어이고, 이것이 완벽하게 훈련되었을 때 영어에 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