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심었다. 심기로 생각한 틀의 멀칭을 걷어내고, 굼벵이 방제약을 조금 뿌려 준 다음, 사 온 고구마 줄기를 하나하나 심었다. 고구마를 심는 일은 어렵지 않다. 촘촘히 심어도 알아서 잘 자라준다. 심으면 정말 자랄까? 싶게 생긴 시들시들한 줄기가 흙을 덮고 물을 주면 서서히 살아나는 모습은 신기함과 안도감을 준다. 심고 남은 줄기들을 어떻게 해야하나 싶은 고민이 오히려 더 크다.
멀칭을 일단 텃밭의 모든 면적에 작업했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구마와 같이, 멀칭이 필요하지 않은 작물들도 있으니 말이다. 고수나 쌈채소 등등을 굳이 멀칭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스파라거스는 심고 나니 내년이나 후년에 올라올 싹을 생각하면 비닐멀칭은 전혀 맞지 않았다. 잡초가 올라오는 모습이 확연히 줄었고, 잡초덤불로 텃밭에 잘 들어오지 않던 아내가 맘편히 텃밭을 오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멀칭은 확실히 사람에게 편안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작물들에게는 다른 문제였다.
고추나 가지 호박 등등에게 멀칭은 흙의 수분을 유지하고 땅의 온도를 높여주니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대개 파종으로 길러먹는 작물들, 예를 들어 고수나 루꼴라 같은 작물들은 구멍을 내어 기르는 방식이 매우 비효율적이었고, 날이 덥기도 해서인지 금방 웃자라버렸다. 굳이 멀칭을 해야 하나 싶었던 작물들은, 그 고민대로 나름의 실패를 맛보고 있는 중이다. 파종을 할까 하다가, 또는 포트에서 미리 길러서 옮겨 심을까 했다가, 귀찮음에 그냥 모종을 사서 심었다. 결국, 모종값만 더 들었고, 뒤늦게 파종하여 즐김의 시기가 늦어지는 결과만 낳았다.
멀칭에 적응하는 작물도 조금은 달랐다. 수박의 경우 작년에 심은 자리 주변만 멀칭을 해주어서 줄기가 잡초덤불 사이사이를 기어다니며 수박 서너개를 맺어 주었었다. 올해는 주변을 모두 비닐로 뒤덮은 자리에, 기대와 함께 수박모종을 4개 심었다. 잘 자랐다. 하지만, 길다란 줄기 멀찍이에서 수박꽃이 피고 수박이 두어 개가 맺힐 때 쯤, 까만 깨알같은 벌레들이 수박의 줄기와 잎 뒷면에 촘촘히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이파리들이 쪼그라들고 새순들이 쪼그라들며 말라죽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방제의 게으름 때문이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귤나무 주변으로 어느 정도는 멀칭을 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는 잡초덤불들이 뒤엉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귤나무와 가장 가까운 자리의 멀칭구멍에는 수박이 자리했다. 그 수박이 줄기를 뻗어 잡초덤불로 향하는 모습을 그냥 놔두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덤불 위를 기는 줄기와 이파리는 건강했다. 그 수박줄기 역시 병충해의 영향을 받았는데, 뿌리주변과 멀칭 위를 달리는 구간의 줄기와 이파리는 쪼그라들면서도, 덤불 위의 줄기와 이파리는 멀쩡한 것이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잡초들과 작물들이 벌레들의 영향을 나눠가지며 생기는 현상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전적으로 멀칭 위를 달리는 수박은 벌레들의 유일한 타겟이 되기 때문에?
오이도 멀칭을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오이는 고질적인 적응의 문제가 있었다. 언제나 뿌리와 흙이 만나는 줄기가 썩어들어가며 말라죽는 것이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가시오이 모종들은 자라는 듯 하더니 그렇게 말라죽었다. 백오이 모종은 잘 버티며 줄기를 뻗고 꽃을 피웠다. 찾아보니 오이뿌리가 썩는 병은 방제법이 없고 저항성 품종을 찾아야 한단다. 별 수 없이 죽은 오이들 자리에 백오이 모종을 사다 다시 심었고, 취청오이 모종도 시험삼아 심어보는 중이다.
조금 멍청하달까 싶은 실수를 매해 연발하는 중이다. 웃거름 문제다. 모종을 심고 한 달 정도 지난 뒤 웃거름을 줘야겠다 생각하던 차였다. 지인이 농사를 짓는 아버지께서 모종 심고 2주가 지나면 웃거름을 주라고 했다고 하셨단다. 그 말에 귀가 솔깃한 내가 문제였다. 모종을 심은 지 3주가 지나고 있는 시점이었다. 때마침 비가 온다고도 해서 나는 얼른 웃거름을 모종마다 넉넉히 주었다. 잘 녹는 펠렛 형태의 웃거름을 생각했는데, 시중에 없어 알갱이로 된 거름을 사다 모종과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고 넉넉히 주었다. 결국 사달이 났다. 잘 자라던 고추들이 시들기 시작했고, 깻잎은 버티는 듯 싶더니 잎이 까맣게 말라가고 있었다. 바질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엔가도 그랬었다. 욕심에 웃거름을 일찍 주었다가 호박들을 다 말려죽였는데, 올해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땅을 희석한답시고 물을 열심히 주고, 녹다가 남은 거름들을 멀칭 비닐 아래서 멀리 씻어내는 작업을 했지만, 허사였다. 살아남은 것들은 그대로 잘 보살피고, 시들어버린 것들은 다시 심어야 했다. 가지는 잘 버텨냈다. 애호박은 멀칭에 웃거름 시기가 잘 맞았는지 줄기가 무성해지고 꽃을 피워댔다. 참외역시 줄기를 풍부하게 뻗어냈다. 그렇게 심은 작물의 3분의 일 정도를 다시 심는 처참한 상황에 빠졌지만, 일부는 적절한 웃거름 효과를 보고 있었다.
멀칭은 능사가 아니었다. 멀칭으로 가능한 농사를 구분해야 했고, 단순히 사람 편하자는 일이었다. 그리고 공부나 노력없는 농사는 그르치기 마련임을 매해 깨닫는다. 십 년이 넘는 텃밭관리를 했으면서도 이렇게 무지할 수 있나 싶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나의 게으름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텃밭은 먹거리를 넉넉히 내주고 있어서, 요즘음엔 주말마다 입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이 불어오는 테라스에서 텃밭의 쌈채소에 구운 고기를 싸서 즐기고 있다.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에 즐겨야 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고추와 가지가 쏟아지고, 참외도 몇 개 달릴 것이며, 애호박도 쏟아질 것이다. 수박은 조금 걱정이다. 여튼, 나도 멀칭이랍시고 온자리를 뒤덮어놓고는 적응하고 배우는 중이다. 시간은 흘러 점점 더워지니 마당에 티트리꽃이 만발하다. 그늘을 만들어줘도 스스로가 원하는 그늘에만 들어가는 까다로운 라이녀석도 조금 걱정이다. 털갈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