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과 한여름의 생기가 그립다는 말은 한 달 만에 취소해야겠다. 지금 텃밭은, 한창때의 모습으로 가을을 보내고 있다. 마치 그 생기가 지금이 적기라는 듯, 고추가 열리고 가지가 열린다. 한여름보다 더 윤기있고, 생생한 모습으로 매달린다. 10월의 초순이다. 입이야 조금 즐겁긴 하지만, 이 시즌에 이 모습이 정말인가 싶다.
풍경이 어색하다. 고추와 가지가 생생하고 넘치게 매달리는 모습도 그렇지만, 고구마 줄기와 잎이 무성한 모습도 이걸 어째야 하나 싶은 고민만 들게 한다. 파종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고수가 몇 개 싹이 나지 않은 것도 뭔가 이상하다. 서늘한 아침저녁과 한낮의 가을볕이 반가워야 하는데, 조금 시원한 아침저녁과 조금 따가운 가을볕에 풍경이 변해간다. 시간은 내가 아는대로 흐르는데, 흐름 위의 풍경들이 이제까지의 기억들과 다르다. 마치 위아래로 분리된 화면의 두 장면이 제각각인 것처럼,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풍경이 제각각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오늘 아침 출근길의 온도가 18도였는데, 퇴근길의 온도가 24도였다. 집에 도착하니 공기는 더욱 온화하면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곧 비가 올 것 같은 습한 저녁이었다. 어제 일요일, 집안 여름 소품들을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 코타츠를 세팅하고 마당에서 즐기던 간이 캠핑 장비들을 2층 테라스로 옮겼다. 그랬는데, 오늘 저녁은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작은 더위가 집안을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남해안 지역에 호우특보를 내렸다고 했다. 아마도, 협소한 비구름대를 중심으로 양측으로 형성된 찬공기와 더운공기의 온도차가 큰 듯 싶었다. 제주는 더운공기권에 속해 습하고 더운가 싶었다. 그런데, 이게 10월의 날씨현상이라니.. 예년이라면 귀뚜라미 울고 풀벌레 우는 소리들이 가을밤의 공간을 채웠을 것이다. 아니면 점점 북상하는 태풍소식에 텃밭 작물들을 살피며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마치, 다시 6월의 초입을 지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이 혼란은 나에게는 사소한 일이다. 오히려 텃밭에서 먹을 것들이 좀 더 오래, 많이 나오니 좋은 점도 있다. 태풍이 오지 않으니 비바람에 집 걱정, 텃밭 걱정도 덜었다. 예전과는 다른 풍경이 조금 어색할 뿐, 내가 굳이 어색함에 진지함을 얹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굳이 마음에 담지 않아도 될 불편함이 항상 마음에 담긴다.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이 어색한 풍경의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색한 또는 불편한 현상이 있을 것만 같아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배기가스 등등의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지자 화석연료 대신 전기로 주행하는 전기차를 만들었지만, 실은 배터리 처리의 문제와 리튬광산의 개발에 따른 새로운 환경오염이 문제가 되는 현실이다. 폭염에 견딜 수 없어 에어컨을 틀어대지만, 실외기에서 뿜어나오는 열기에 의해 시원한 공간 밖의 공기는 더더욱 뜨거워지는 현상 말이다. 전기차를 타고 에어컨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리튬확보를 위한 제3 세계 사람들의 노동력과 터전을 폭력적으로 착취 장악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에어컨이 없어 폭염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선풍기나 부채로 견뎌야 하는 약자들이 존재했다. 벌어지는 현상에 반하여 나타나는 반대편의 역현상이 더욱 도드라져 발생한다. 이 현상은 점점 양극화되어 시야 안으로 더욱 분명하게 들어오고 있다.
그러니까, 나의 불편함은 어색하지만 나에게 그다지 나쁠 것 없는 계절의 변화 이면에, 무언가 정말 불편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서 기인한다. 그것이 사소한 수준이면 상관없겠지만,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그런 현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의 차원에서 감당해야 하는 그런 현상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에, 나를 비롯한 인간 집단이 감당해야 하는 버거운 현상일 것이라는 짐작만 앞선다. 감당해야 하는 인간들 중 하나는 내 자식을 포함한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도 하다. 너무 거창하고 불필요하게 진지한 일일까? 기후위기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고, 우리는 두려운 무엇인가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쉽게 짐작하고 있다. 기후변화, 기후위기에 대한 걱정은 이제 보편적이다. 그러니까, 내가 텃밭의 어색한 풍경에 얹은 불안은, 실은 이미 느끼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한 불안의 한 현상으로써, 경험 중인 하나의 증거인 셈이다.
올리브가 나무 한 가득 열렸다. 작년에 꽤 많이 열려서 올해는 쉬어가나 싶었는데, 어느새 나무 전체 속속들이 올리브 열매들이 가득해졌다. 열매 크기가 작긴 하지만, 뭔가를 하기엔 적지 않은 양이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전에, 저 많은 올리브를 어떻게 다 거둘지 난감부터 든다. 그냥 놔두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또 뭔가 아깝지 않은가.. 제주에 올리브 오일을 내리는 집이 있다던데, 문의를 해 볼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라이의 그늘자리 옆의 구아바나무에도 작은 열매가 무성하게 열렸다. 초록이던 열매가 어느 순간 노랗게 변하며 순식간에 땅에 떨어졌다. 엄지손톱만한 크기이지만, 노란색을 띌 때 먹어보면 달고 맛있었다. 대추도 제법 열렸다. 맛은 별로였지만 말이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텃밭과 마당은 풍성했다. 이게 다 기후의 변화 때문인지, 나무 각자의 전성기를 만난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한바탕 비에 쪽파가 이파리를 쑥쑥 키우고, 싹을 솎아준 무는 이파리를 넓히며 자리를 잡았다. 겨울을 날 녀석들이 열심히 자라주는 모습이 고맙지만, 이 늦더위에 웃자라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한 주 정도 있다가 고구마를 캘 생각이다. 캐고나면, 틀밭 하나는 양파를, 다른 하나에는 2월 즈음에 완두를 심을 생각이다. 어색하게 달라진 풍경 안에서도 해야 할 일은 줄을 잇는다. 그게 흐르는 시간과 달라진 풍경의 엇갈림 속에서 할 일이 맞는가 조금은 혼동이 생기긴 해도 말이다. 시점의 혼란이지,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