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텃밭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웅 Sep 19. 2024

2024년의 텃밭일기 : 0919

  늦봄과 한여름의 생기가 벌써 그립다.  모든 것은 기울었다.  기울지 않은 것은 단지, 폭염 뿐이었다.  기울어버린 절기에 고추는 질기고 매워졌다.  아삭함의 기대보다는 매울까 두려운 대상이 되어버렸다.  기울었다지만 폭염은 여전한데, 고추는 예년처럼 시간을 따라 질기고 매워진다.  시간이 만드는 것인지, 사람처럼 더위에 지쳐버린 탓인지 알 수 없다. 


  만찬이 끝나자, 텃밭은 그저 어수선함이었다.  여전히 맺을 수 있는 녀석들은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덥지만 이제 곧 가을이라는데, 수박도 작게작게 알맹이를 맺었다.  참외는 여전히 제 세상인듯, 곳곳에 초록과 노랑의 결실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제 그런 것들이 소용없게 되었다.  맺어도 기울어진 날들에 더 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익어도 한여름의 텁텁하고 달달함을 선사하지 못할 것들에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애호박 역시, 곳곳에서 작게 매달리나, 모양이 틀어지고 금방 쇠어버렸다.  이럴때, 인간은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미련을 가지고 그렇게 아쉬워지는 것들을 붙들어 본 사람도 있었다.  이제 그 사람은, 여전히 미련이라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이 텃밭에서는 소용없음을 알아버린 이상, 텃밭 앞에서는 일부러 과감해진다. 

  가을 텃밭을 준비한다.  너무 더워서 한 낮에는 움직이는 것 자체가 무리이자 위험한 날들이었다.  하지만, 재난문자가 권고하는 것처럼 새벽이나 해저물녁에 여유로이 일을 할 수 없는 인간은, 무리를 해서라도 주말의 한 낮에 움직여야 했다.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수건을 둘러 뒷목을 가리고, 긴 팔 옷을 입고 과감하게 텃밭에 들어갔다.  말라비틀어진 오이 덩굴들을 걷어내고, 오이망을 거두었다.  지주대를 뽑아 한 쪽에 가지런히 정리했다.  토마토 역시 이제는 말라가고 있었다.  빨갛게 열린 것들은 작고 선명해서, 이제 마지막임을 말하고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거두고, 지주대를 뽑아냈다.  지주대를 걷어야 하는 두 작물의 자리를 정리하고, 내년에도 쓰게 될 지주대를 정리해서 창고 한 쪽 자리에 두었다. 


  호박과 수박 덩굴들을 뽑아냈다.  별로 재미를 못 봤던 깻잎도 뽑아냈다.  덩굴들에 빛도 보지 못한 피망도 뽑아버리고, 몇 개 열리다 만 옥수수도 뽑아냈다.  작정하고 자리를 만들었다.  미련따위, 이제는 소용없음을 알기에, 내 몸짓은 뙤약볕 아래서 과감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맺고 있는 참외들은 아직 소용이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으나, 뽑아냈다.  노랗게 익은 참외 몇 개와, 커지다 만 수박 하나와, 빨간 채로 덤불에 같이 거두어진 방울 토마토 몇 개가 텃밭 정리의 수확이었다.  질겨진 고추와 가지 몇 개를 더하면 만찬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까?  미련이 습성인 인간은, 습성대로 미련의 꼬리를 자르지 못하고 마음이 잠시 머뭇거린다.  허나, 텃밭의 틀 몇 개는 이미 공허해진 상태다. 

  빈 틀밭 중에 가장 긴 자리에는 무를 파종할 생각이다.  두 번째로 큰 틀밭에는 쪽파를 심고, 나어지 빈 틀밭에는 가을 모종 적당한 것을 심을 생각이다.  정리한 구석 틀밭은 고수를 넉넉히 파종하고, 마당에서 가장 가까운 틀밭에는 아내가 구해다 놓은 샐러드 채소류 씨앗을 파종할 생각이다.  모두 멀칭을 걷어냈다.  고정핀을 잘 걷어모아두었다.  무와 고수와 샐러드 채소를 파종할 자리는 다시 멀칭을 하지 않았다.  가을모종을 심을 자리와 쪽파를 심을 자리에만 다시 멀칭을 했다.  적당한 간격으로 멀칭 구멍을 내었다. 


  무 씨앗을 2열로 파종하고, 쪽파는 구멍마다 하나씩 심었다.  가을모종도 양배추와 양상추 종류로 구멍마다 심어주었다.  고수도 2열로 파종하고, 샐러드 씨앗은 루꼴라 씨앗을 섞어넣어 골고루 파종하였다.  이렇게 가을 텃밭은 정리와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바짝 말린 뒤 태우게 될 덤불과, 멀칭 비닐이 쓰레기가 되었다.  조금은 생각이 많아지는 부산물들이다.  


  무는 생각보다 빠르게 발아한다.  적당한 녀석을 고르고 간격을 고려해 솎아내는 일이 분주할 정도다.  3일이 지나자 발아의 낌새가 보이던 틀밭 안에는 금세 무 싹이 2열로 자라 있었다.  고수는 꽤 느지막하게 발아했다.  그러나, 발아율이 아주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샐러드 채소는 섞어준 루꼴라 싹만 올라오고 있었다.  가을 텃밭은 봄 텃밭보다 조금 여유가 있다는 어떤 선입견이 항상 내 마음에 자리하는데, 역시 선입견은 언제나 선입견일 뿐이라 깨닫게 된다.  출근 전 아침과 출근 후 저녁 또는 밤에, 나는 마당 호스를 들고 열심히 물을 뿌려야 했다.  덥고 비가 잘 오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어쩌다 잠깐이라도 지나가는 소낙비는 이럴때 참 반갑다.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추석 연휴까지 이어지는 폭염, 전례가 없었다는 이 무더위에 발아한 싹들이 걱정스러웠다.  날이 더우니 일찍 발아하며 웃자란다 싶을 정도로 쑥쑥 이파리들을 키웠다.  그러다 한 낮의 폭염에 흙이 마르고 싹들은 살짝 시들어버렸다.  얼른 물을 주지 않으면 이대로 땅에 새순이 닿아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오후 햇볕을 직접적으로 받는 현무암 담장 아래 모종들은 가을 벌레들과 데워진 돌담의 열기에 싹을 갉히고 시들어 말라죽었다.  호스를 들고 물을 주는 마음은 조급함이었다.  어서 이 더위가 지나가길..  더위에 웃자란 녀석들의 결실이 실망스러울 것 같은 걱정..  하지만, 인간은 그저 해 왔던 일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다.  이어지는 더운 날들을 인간이 애써 누그러뜨릴 수도 없다.  손수 키우는 것들이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결실을 맺었을 때, 그 결과를 덤덤히 받아들어야 할 뿐이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일 수 없으니, 처한 환경에 어쩔 수 없이 명을 다한 모종들에겐 미안함을 조금 얹어 거두어주는 것이 전부다.  인간은 그저 그래야만 하는 존재다.  자연을 극복하다는 것은, 태풍과 폭우 속에서도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인간의 노동과 고난을 더욱 가중시키는 일이다.  지구온난화와 폭염이 인간 행위의 결과임을 우리는 당연하게 알아차리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손바닥만한 텃밭에 절절매고 있는 인간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욱,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낸 결과를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무 싹을 솎아주고, 웃거름을 주었다.  루꼴라 역시 싹을 솎아주었다.  고수는 발아하는 정도를 보고 필요하면 10월 고구마를 캐는 시기에 좀 더 파종을 할 생각이다.  쪽파는 한동안 조용하더니, 간간히 쏟아지는 폭우에 초록의 줄기를 살포시 드러내었다.  양배추와 쌈채소는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가지는 껍질이 슬고, 고추는 자라다 말고 색이 짙어지며 매울 것 같이 무서워진다.  그럼에도 아직은 먹을만 하다.  빈 자리에 심을 것들은 아직 많고, 가을이 깊어가는 단계마다 심을 것들을 구상 중이다.  날은 여전히 더워서, 마당에서 웃자란 바랭이들을 예초기로 돌려 정리했다.  물을 담아 발을 담그고 무더위를 식히며 텃밭과 마당일을 짬짬히 해야 했던 추석이었다.  여전히 인간은 버티며 경험을 쌓고, 반복의 걱정을 안아야 하는 존재다.  자연 그 자체가 그러하든,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로서의 환경이든, 어쨌든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