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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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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Nov 10. 2024

2024년의 텃밭일기 : 1110

  올해 고구마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조그만 텃밭에서 가꾼 것으로 흉작이니 풍작이니 할 것도 없어서, 그냥 재미 정도로 표현을 했다.  누군가의 조언대로, 땅에 양분이 너무 많았던 듯 했다.  굼벵이 피해를 방지한다고 고구마 심을 때 약을 조금 뿌렸더니, 굼벵이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올해 많은 비에 땅이 습하고 양분이 많다보니, 고구마는 많이 열리지 않고 몇 개는 썩어 있었다.  고구마는 예년의 3분의 일 수준에 머물렀다.  대신 고구마 순이 먹을만 하게 굵어 고구마 순으로 재미를 보았다.  우리도 먹고, 아내의 지인들이 작업을 해서 가져가고도 순이 많이 남았다.  오래된 텃밭생활이지만, 여전히 배울 것은 많다.  경험으로 배우는 일은 서두르지 않고, 우연이나 필연의 기회가 닿을 때,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구마를 캔 틀밭의 흙을 고르고, 밑거름을 조금 뿌린 후에 멀칭비닐을 깔았다.  양파를 심기 위해서다.  멀칭비닐은 투수성을 살린 비닐 잡초매트를 사용했다.  일반 멀칭비닐보다 두꺼워서 바람에 덜 날리고 안정적이긴 한데, 문제는 구멍을 뚫는게 무척 힘들다는 점이었다.  양파심는 작업 중에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고 물으면, 멀칭 구멍을 내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구멍을 내는 장비도 있었다.  둥근 날이 있어 누르고 돌리면 되는데다가, 가운데 흙이 끼면 쉽게 빼주는 장치고 있는 장비였다.  하지만, 비닐이 두껍고 장비 날은 금방 무디어져 버리니 힘주어 누르고 돌려도 비닐은 반쯤 잘리다 말았다.  결국 구멍내는 장비로는 비닐에 대략 모양만 내거나 잘리다 만 채로 구멍 위치를 만들었고, 가위로 일일이 잘라내는 수고가 필요했다.  


  어쨌든 구멍은 다 냈다.  하나의 틀밭이었으니 망정이지 고구마가 심겨있던 두 틀 모두에 멀칭을 했다면 구멍을 만들다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양파라 간격이 조금 조밀하기도 해서 더욱 힘든 작업이었다.  양파는 조생종으로 구입했다.  조생과 만생의 차이가 수확기의 차이인데, 각각 내년 4월과 6월이란다.  기간차이가 크지 않고, 내년 텃밭 관리를 생각하면 조생종이 나아보였다.  포트에서 모종을 하나하나 꺼내서, 멀칭구멍 아래의 흙을 판 다음 적당한 깊이로 심어주었다. 

  양파 심는 작업을 마치고 남는 모종은 옆의 빈 틀밭에 모아 심었다.  심은 모종이 혹시 죽거나 하면 옮겨심기를 하고, 모봉 남았다고 함부로 버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남은 양파모종을 심은 빈 틀밭은 겨우내 두었다가 2월경 완두를 심을 생각이다.  가을 상추 모종도 같이 구입했는데, 이것들은 다른 틀밭과 대가 꺾이거나 웃자라버린 여름 상추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심었다.  


  날은 여전히 예년보다 따뜻하다.  그러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기온이 요동치고 가을비 같지 않은 많은 비가 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긴 팔 옷이나 점퍼가 필요해진 시기임은 맞는데, 그게 꼭 가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쯤 되면 고추와 가지를 정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고추와 가지는 아직 아니라는 듯, 푸르고 짙은 체색을 잃지 않고 있다.  고추와 가지도 여전히 열리는 중이다.  쌈채소 몇 가지도 풍성하지는 않지만 먹을 만큼 잎을 키워서 넘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게 식탁을 채우고 있다.  마당과 집 주변으로는 아직도 잡초들이 힘을 잃지 않고 키를 키운다.  확실히 뭔가 달라진 풍경은, 지금이 10월 말이나 11월 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사실을 망각하며 무심하게 살 수 있다면, 평범한 한 개인의 삶에서는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땅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며 사는 나에겐 망각에 따라 일에 변화가 생긴다.  아직 늦여름이나 초가을인 양, 예초기를 들고 마당에 비죽 나온 잡초들을 쳐 주거나, 골갱이를 들고 뿌리깊은 잡초들을 캐 내야 했다.  앞서 말했지만, 지금쯤 고추와 가지를 정리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추와 가지는 생생하고, 나는 예초기와 골갱이를 들고 다녀야만 했다.  시간이 늘어지며 일의 순서도 함께 뒤로 밀린 것이다.  

  무의 둥치가 제법 굵어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굵어지지 않았는데, 올해는 너무 잘 자랐다.  해마다 심는 무는 김장용 무였지만, 올해가 남다른 모습을 보면, 품종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거름을 잘 주어서 그런지 알 수 없다.  이제 낚시로 농어를 잡아 텃밭 무를 하나 뽑아 매운탕만 끓이면 되는데, 낚시할 시간도 없고 농어를 잡았던 감각도 다 소실되었다.  아스파라거스는 부담스러울 만큼 무성하다.  내년이나 내후년을 기대해야 한다던데, 이게 날이 추워지면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지 조차 알 수가 없다.  쪽파도 아쉽지 않게 잘 올라오고 있다.  겨울을 잘 나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고수를 넉넉히 파종했는데, 그늘진 자리 나무 아래 자리라 그런지 발아가 너무 적다.  발아를 해도 쑥쑥 자라지를 않는다.  3층 뒷집에 텃밭이 그늘진다는 사실은 조건면에서 많이 불리한 사실이다.  그 외, 양배추나 가을 채소 낱개를 좀 심었는데, 구석자리에서 벌레먹거나 웃자라거나 해서 기대도 관심도 가지 않았다.  다같이 사랑으로 관심을 주어야 하는데, 빠져가는 머리숱에 비례해서 관심도 사라지나 싶어진다.  

  조금은 특별한 마음으로 파종한 채소가 있다.  빨간무 또는 레디쉬 종류의 채소다.  자리가 잘 안 맞아 그런지 아니면 시기가 적절하지 않아 그런지 잘 자라지는 않지만,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이 씨앗을 선물해주신 지인이 지금 많이 아프다.  시간에 맞물려 흐르는 고통을 애써 참아내고 있다.  잘 견디시고 버텨내어 넉넉하고 인자한 웃음을 기어이 되찾으시길..  텃밭에 발을 들일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이 드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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