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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Sep 17. 2019

첫눈에 반했다고 다 믿지 말아요

쉰다섯, 마당이 생겼습니다 #4

부서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저수지와 푸른 산이 굽어 보이는 집. 긴 기다림 끝에 만나 난생처음으로 ‘계약’까지 한 바로 그 집은 용인 어느 산등성이에 들어온다는 타운하우스였다. 처음 땅을 보러 간 순간 집터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에 첫눈에 반해버렸던 게 계약까지 이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동네 메인 도로에선 살짝 거리가 있고, 지대가 높긴 했지만 십여분 나가면 서울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있고 생활기반시설도 멀지는 않았다. 브로슈어로 보여준 집 콘셉트이나 설계도 마음에 들었으며, 원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자유롭게 변경할 수도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풍경을 매일 내려다 보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까지 꿈꿔온 드림하우스의 모습과 딱 맞았다.


눈치가 빠른 분양 사무소에서도 마침 그 땅은 탐내는 사람이 많아 금방 분양이 될 것 같으니 가계약이라도 해서 땅을 잡고 가라며 바람을 넣었다. 약간의 고민과 검증 끝에 엄마와 아빠는 가계약이지만 오백만 원의 돈을 지불하고 처음으로 계약서에 사인까지 마쳤다. 일주일 이내 해약 시 가계약금을 환불해준다는 조건이었기에 부담도 적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부푼 마음이 한참 가라앉지 않았다. 드디어 계약이라니, 근 15년 가까이 품고 있던 집 짓기의 꿈이 이젠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밤새 잠을 뒤척이다, 날이 밝기 무섭게 엄마는 다시 그 땅을 찾았다. 실감이 나지 않기도 했거니와 이제 곧 내 것이 될 이쁜 그 땅을 제대로 찬찬히 뜯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터에 달려갔는데, 웬걸 엄마의 뒷덜미로 싸한 기운이 스쳐갔다. 하늘의 해가 밝게 빛나는 청명한 날씨였는데도 집터에 뒷산의 산그늘이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안 그래도 동네가 동북향으로 앉아있어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뭐 그 향 덕에 그런 풍경을 보고 살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김이 빠진 마음으로 동네를 찬찬히 돌면서 주위도 살펴봤다. 눈이 많이 오면 여기까지 제설차가 올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해가 잘 드는 동네도 아니라 눈이 잘 녹지도 않을 것 같았다. 여전히 어제 본 그 저수지며 산의 풍광은 너무나 아름다웠으나, 그 모든 것이 내려다보일 만큼 아찔하게 높은 지대가 과연 살기에도 좋을지 자꾸만 의문이 피어났다.


그 주에만 몇 번을 더 찾아가 이리저리 뜯어보고 고민을 거듭했으나, 결론은 NO 였다. 엄마, 아빠는 가계약 후 딱 일주일이 되던 날 분양 사무소에 가서 계약을 해지하고 오백만 원을 돌려받았다. 높아서 아름답지만, 그래서 불안한 첫사랑 같은 땅이었다. 마음이 조금 아려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시장 조사를 다니던 엄마는 얼마 후 그때 그 타운하우스 단지 공사가 엎어져있다는 풍문을 들었다. 실제로 찾아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공사가 올스탑 상태였다. 알고 보니 상하수도 허가도 받지 않고 분양 먼저 후다닥 진행을 한 것이었단다. 그런데 지대가 너무 높아 상하수도가 들어올 수 없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반려를 당했고, 물길이 끊겨버리고 나니 전체 사업이 다 엎어질 판이었다.


그때 실계약까지 했더라면 몇 천만 원 계약금이 날아갔을 일이었다.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되뇌었다.




후문.


몇 년간 공사가 엎어져있었지만, 결국 그 타운하우스는 어떻게인지 상하수도 허가를 받아내 현재는 완공된 상태다. 중도 해약자들이 많았던 탓인지 단지 중간중간 빈 땅으로 남겨진 집터들이 있기는 하나, 잘 입주해서 살고 있는 가구들이 더 많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처럼 완공이 되는 케이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처럼 지연된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긴 시간 속앓이 했을 마음은 보상받을 수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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