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23
J와 함께하는 여행의 마지막 날.
어제 도착한 H와 함께 숙소 근처 판다와 비치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한 우리는 각자 그랩을 부르고 셋이서 나란히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판다와로 가는 길, 칼로 잘라낸 듯한 웅장한 절벽 사이를 지나자 넓고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이틀 연속 울루와투만 다녀온 우리의 비효율적인 동선에 어이가 없었지만 마지막 날이라도 가보는 게 어딘가.
해변에 도착한 우리는 괜찮아 보이는 비치클럽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나는 햄버거를 J는 문어 요리, H는 나시고랭을 주문했다. 곧이어 음식이 서빙되고 흰 새우칩과 계란 프라이가 얹힌 나시고랭을 보고 잔뜩 들뜬 H가 기념사진을 찍고 드디어 첫술을 떴다.
하지만 이내 찌푸려지는 미간.
사실 H는 아침 조식으로도 나시고랭을 먹었었다. 레스토랑이 따로 있지 않은 숙소는 전날 조식 주문을 받고 다음 날 아침, 방으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주문한 나시고랭을 맛본 H는 질퍽한 밥과 간장 맛만 나는 나시고랭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점심에는 그 충격을 없애기 위해 다시 나시고랭을 주문한 것이었는데 기대와 달리 충격 2 연타.
여기서는 나시고랭이 너무 짰다.
나시고랭의 본고장이 어째서 멜버른이나 한국보다 맛이 없는가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점심 식사를 마무리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H와 내가 예약한 방으로 짐을 옮겼다. 그런데 이번에도 말도 없이 업그레이드되어 이전보다 훨씬 넓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여기는 방이 남아도나? 어쨌든 감사합니다.
저녁 비행기인 J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뒤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근처 해변을 둘러보기 한 H와 나는 숙소에서 J와 아쉬운 작별의 포옹을 나누었다.
2주간 J와 함께한 이번 여행은 4년간 공백 후 이어진 여행이라 그런지 여러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절대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인연을 이어 나가는 자체도 쉽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친했다 생각했던 이들도 몇몇 이유로 관계가 정리되고 얕게나마 유지했던 사람들도 각자 생활에 치여 1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오래 유지되던 친구들 역시 일과 가정이 각자의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서로 약속 한번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1년에 한 번 먼 곳에서 일정을 물어 봐주고 함께 여행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친구가, 스미냑에서 만난 부부의 말처럼 아주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변하고 각자의 생활로 달라지는 부분도 많겠지만 그럼에도 서로 안부를 묻고 여행을 하며 계속해서 소중한 인연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J와 2주간의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친구야. 다음 여행은 오토바이 여행이야.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