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인스타그램을 열었다가 황급히 닫았다. 차단했으면서 왜 자꾸 확인하려 드는지. 이 어리석음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맥주 한 캔을 따 거실 식탁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살짝 열어둔 창으로 끈적한 밤바람이 스친다. 문득 1년 전 이맘때가 떠오른다. 그녀와 함께 걸었던 이 동네의 가로등들. 그때는 이 후텁지근한 여름 바람도 달콤했었지.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린다.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는데 뒤집어진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친구다.
"여보세요?"
"야, 괜찮은 사람 있는데, 소개 시켜줄게. 나와."
망설여진다. 새로운 관계가 부담스럽다.
지나간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일까, 아니면 또다시 실패할까 봐 두려운 걸까.
"아... 오늘은 좀 그렇다. 다음에 보자."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고등학교 때 문학 선생님이 자주 인용하셨던 괴테의 말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은 그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크다."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래, 만난 적 없었다면 이런 전화에 누구보다 빠르게 나갔겠네.'
빈 맥주 캔이 늘어갈수록, 밤이 깊어질수록 기억은 선명해진다. 좋았던 순간들은 더 예쁘게, 후회되는 순간들은 더 아프게.
문득 출근길에 들었던 노래가 머릿속을 맴돈다. 그녀와 드라이브를 갈 때마다 함께 들었던 노래. 아침에 들었을 때는 황급히 볼륨을 줄였었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그러고 보니 식탁 옆 냉장고에는 그녀와 찍은 네컷 사진이 아직 붙어있다. 쓰레기통에 넣을까 하다가 결국 버리지 못하고 그냥 두었던. 아직은 이르다는 핑계를 대면서.
"......"
하나, 둘, 셋, 넷, 다섯. 비워진 맥주캔과 아직 반이나 남은 맥주를 식탁에 두고 침실로 향한다.
그만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주저하는 나까지 그대로 두고.
눈을 감으며 바란다.
부디 내일은, 조금 다른 내가 되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