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처음 먹은 추어탕은 막냇동생이 태어난 직후다. 셋째딸이 셋째딸을 낳는다는 소식에 외할머니는 시골 산골짜기에서 인천까지 그 먼 길을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올라왔다. 양손에는 배가 남산만해진 딸과 그의 딸을 위한 음식이 잔뜩이었다. 엄마는 출산을 하루이틀 남기고 병원에 들어갔고 외할머니는 남겨진 두 손녀딸을 위해 아침을 챙겨주고 학교를 보냈다.
엄마가 막냇동생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같이 병원에 다녀온 뒤 할머니는 베란다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뭔가 퍼덕퍼덕 거리는 소리도 나고, 우당탕탕하는 소리도 났다. 그때 미꾸라지를 처음 봤다. 소쿠리에 100마리는 족히 담겨있던 것 같다.
굵은소금을 팍팍 치니 진흙뭉텅이 같이 생긴 것들이 미친 듯이 팔딱댔다. 몇 놈은 소쿠리를 탈출했다. 지금의 내 손가락보다 조금 더 긴 미꾸라지는 내가 알던 물고기와 생김새가 너무 달라 보자마자 심장이 벌렁댔다. 가늘고 길쭉했고, 너무 못생겼다. 할머니가 뭘 만드는지도 모르고 놀란 심장을 부여잡고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쯤 정체불명의 국이 상에 올라왔다. 그렇게 생긴 국은 10년 인생에 처음이었다. 무슨 국인지 들었지만 내 귀를 스쳐지나갔다. 그땐 사투리라서 못 알아듣는 거라고 생각했다. 미꾸라지로 만든 국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리고는 밥을 넣곤 한 그릇을 단번에 해치웠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게 맛있어서 야무지게 박박 긁어먹었다.
한참 뒤에야 그게 추어탕이고, 엄마의 산후조리를 위한 할머니의 특식이라는 걸 알았다. 아마 추어탕이 못생긴 그 물고기를 갈아 만든 것이란 걸 미리 알았다면 못 먹었을 거다.
추어탕에는 칼슘이나 단백질이 많아 몸보신으로 좋다고 한다. 산후조리 음식으로는 미역국 외에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영양학적으로 본다면 추어탕도 원기회복에는 꽤 좋을 것 같다.
추어탕과의 아찔했던 첫 만남 이후, 으슬으슬 날씨가 추워지는 늦가을이나 초겨울이면 가끔 집근처 추어탕집에서 외식을 하곤 했다. 아빠와 엄마, 나는 추어탕을 시켰고 동생들은 돈가스를 먹었다. 추어탕이 나오면 엄마와 아빠는 미리 각자의 임무를 분배한 듯 내 뚝배기에 양념장을 조금, 산초가루는 더 조금 넣어주곤 했다. 그렇게 한그릇을 거나하게 먹고나면 뱃속부터 뜨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는 기분이 좋으면 추어튀김도 같이 시켜주셨다. 동생들은 추어튀김엔 관심도 없어서 대부분은 내 차지였다. 그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제 막 튀겨져나온 추어튀김은 이빨이 닿자마자 파사삭, 하고 바스라졌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 같은 통추어탕은 도전하기 무서웠지만 추어튀김은 큰 거부감이 없었다. 역시 뭐든 튀기면 맛있구나!
그렇게 한 끼 배부르게 먹고 나오면 그해 겨울은 큰 감기 없이 잘 버텼던 것 같다. 추어탕은 우리 가족에게 나름의 보양식이었던 셈이다.
요즘에는 아재 입맛이 됐는지 시도때도 없이 추어탕이 생각난다. 한여름에도 조그만 뚝배기를 비집고 나온 닭보다는 붉고 걸쭉한 추어탕이 땡긴다. 순대국이나 감자탕을 먹으면 무조건 '사장님 소주요!'를 외치는데 추어탕은 안 그런 걸 보면 내심 마음속에 '추어탕=건강식'이란 등식이 있나보다.
이번주에는 점심 메뉴로 추어탕을 추천해봐야겠다. 여름에 태어났으면서도 유독 여름에 비실비실대는 몸뚱이를 기력으로 채우려면 7월이 가기 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추어탕 한 그릇 정도는 먹어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