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폭스바겐의 도시, 그리고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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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에서의 즐거운 하루을 뒤로하고, 드디어 분데스리가가 열리는 주말 아침이 밝았다. 우중충한 날씨와 더불어 시내에 자리한 늑대 무리(?) 동상이 시선을 끌었다. 오늘 여행의 컨셉은 '볼프스부르크 A to Z' 말은 거창하지만 워낙에 작은 도시라 하루면 충분하다. 볼프스부르크라는 도시 자체가 폭스바겐으로 인해 발전한, 그야말로 폭스바겐 그 자체인 도시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과 폭스바겐을 빼고 논할 수 없다. 실제로도 볼프스부르크 시민 대부분이 폭스바겐 관련 직장에 종사한다고 하니, 이 도시에서 폭스바겐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 수 있겠다.
그래서 오후 일정에 앞서 폭스바겐의 모든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아우토슈타트(Autostadt)는 쉽게 말하면 '자동차 테마파크' 라고 할 수 있는데, 폭스바겐, 람보르기니, 포르쉐, 아우디 등 세계 굴지의 자동차 브랜드들을 산하에 두고 있는 폭스바겐 그룹이 운영하는 곳이다. '자동차 도시' 라는 뜻의 아우토슈타트는 그 이름답게 브랜드별 자동차 전시 뿐만 아니라 자동차 판매, 탑승 등 폭스바겐 자동차의 모든 것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써는 숙소를 볼프스부르크로 잡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볼프스부르크 시내에서 위 사진과 같이 긴 무빙워크가 있는 다리를 건너면 곧장 아우토슈타트로 연결되는데, 왼쪽에 폭스바겐 공장을 끼고 거대한 자동차 박물관에 들어가는 느낌이 정말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아우토슈타트는 꽤나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폭스바겐이라는 기업에 대해 설명하는 그룹포럼, 폭스바겐과 자동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이트하우스, 각 브랜드별 파빌리온, 폭스바겐 자동차 매장이라고 할 수 있는 쿤덴센터, 그리고 차를 구매한 사람들이 직접 받아가게 될 차를 보관하는 원통형의 카 타워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식당이나 호텔도 있어 자동차를 좋아한다면 하루 종일 아우토슈타트에만 있어도 될 정도로 거대하다.
내부 전시도 아주 알찼다. 처음 들어가면 폭스바겐 그룹이 추구하는 가치와 미래기술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그룹 포럼이 있는데, 특히 'Green Level' 전시실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폭스바겐의 고민과 노력에 대한 전시물들을 잘 만들어 놓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었다.
그리고 폭스바겐과 다른 브랜드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차들을 한데 전시해 놓은 자이트하우스에 가면 그야말로 자동차 천국이 펼쳐진다. 4-5층 높이의 건물에 시대순으로 차로 가득 들어차 있는데, 차도 차일 뿐더러 전시실 디자인이나 관람 동선이 아주 깔끔하게 잘 되어있어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게 차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기념품점 또한 폭스바겐 로고가 붙은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시선과 지갑을 사로잡았다.
각 브랜드별 파빌리온에 가면 영상을 보여주거나 체험형 관람을 할 수 있는데, 아우토슈타트에는 폭스바겐, 포르쉐, 람보르기니, 스코다, 세아트, 아우디의 파빌리온이 있다. 각 브랜드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차를 소개해 놓았기 때문에, 하나씩 하나씩 찾아다니며 구경하다 보면 차에 대한 관심히 절로 생긴다. 재미있고 쉽고 친절하게 소개해 놓아 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에 있는 건물은 포르쉐 파빌리온으로, 태블릿을 주고 전시물을 스캔해 정보를 얻는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또한 건물들도 상당히 특색있는 모습이라 파빌리온들을 찾아다니며 건물 외관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쿤덴센터는 직접 폭스바겐의 차를 보고,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말그대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자동차 매장이었다. 가족들과 차를 보거나, 사러 온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감탄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그리고 독일 사람들에게 폭스바겐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전시관보다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폭스바겐 그룹이 왜 전세계 최고의 자동차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또 왜 Volkswagen (국민의 차) 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차를 산 사람들이 차를 받아가기 전 보관해두는 카 타워로, 이곳 아우토슈타트의 랜드마크 같은 건물이다. 전면이 유리로 된 원통형의 타워 안에 수많은 차가 들어차 있고, 그 차를 나르거나 또는 구경하러 쉴새없이 기계가 움직이는 모습이 압도적이었다. 조금은 차가울 수도 있지만, 이것이 그야말로 독일식 예술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렇게 강렬했던 아우토슈타트 관람을 마치고 이곳 볼프스부르크에, 그리고 독일에 온 진짜 목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내가 그다지 넓지 않아 볼프스부르크에서는 모두 걸어서 이동했는데, 공장과 도시와 강이 어우러진 모습이 우중충한 날씨와 더불어 멋스럽게 느껴졌다. 다음 일정은 바로 분데스리가와의 첫만남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 드디어 분데스리가 Vfl 볼프스부르크의 홈 구장, 폭스바겐 아레나로 향했다. 폭스바겐의 도시이니 축구장도 당연히 폭스바겐 아레나여야 한다. 실제로 본 경기장은 생각보다 크고 현대식이었다. 지난 글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곳 독일은 축구장이 모두들 근사하다. 백년이 넘은 경기장을 조금만 손봐 그대로 사용하곤 하는 잉글랜드의 경기장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많은 경기장들이 리모델링을 했거나 아예 새로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경기장이었고, 지그날 이두나 파크와 같이 오래된 경기장 또한 내부,외부 모두 최신식이나 다름없었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생각의 차이랄까... 그런 부분도 조금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곳 폭스바겐 아레나 역시 2002년에 완공된, 새것 축에 속하는 경기장이다. 볼프스부르크라는 팀 자체가 1945년에 만들어져 1997년에 첫 1부리그 승격을 하고, 2009년 팀의 첫 1부리그 우승을 달성한, 역사가 그리 깊지는 않은 팀이다. 그러나 어릴때부터 폭스바겐의 이미지와 리그 우승의 잔상 때문에 나에게는 계속 지켜보게 되는 팀이다. 게다가 2011년 구자철 선수가 이적하며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팀이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지금도 분데스리가에서 굳이 한팀을 꼽자면 볼프스부르크라고 대답한다.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다가 팬 아닌 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아우토슈타트와 볼프스부르크를 빼면 사실상 볼것이 별로 없는 이 도시에 짐을 풀기로 결정했다. 어릴때부터 보아왔던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한 경기 정도는 보고 싶었으니까.
경기장을 둘러보고 입장하니 역시 팬샵부터 경기장 전체적인 규모 모두 큰 편이었다. 이런 작은 도시에 이렇게나 큰 경기장이 있다니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경기장에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꼭 해보고싶었던 '축구장에서 맥주 한 잔' 이었다. 독일하면 역시 맥주이기 때문에 푸른 잔디를 보면서 맥주 한 잔은 꼭 해보고 싶었다. 온전한 컨디션이 아니라 간단하게 라들러 한 잔을 들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경기장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서 시원하고 달달한 라들러 한잔을 하자니 나에게는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맥주도 마시고 경기장도 열심히 구경하며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오늘의 경기는 볼프스부르크와 슈트트가르트의 경기였다.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확실히 축구 경기를 직접 보러 가기에는 영국보다는 독일이 수월했다. 뮌헨이나 도르트문트같은 인기 팀들의 경기가 아닌 이상 표 구하기도 생각보다 간단하고, 가격도 비싼 편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경기장 자체가 경기를 보기 편하게 되어있기도 해서 직관에는 최적화된 나라가 아닌가 싶다.
중하위권 팀들간의 경기라 주목도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경기 전에도 아우토슈타트나 시내에서 슈트트가르트 원정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원정 팬들도 많은 온 것 같았다. 저 당시에는 볼프스부르크가 침체를 겪고 있을 때라 경기력은 양팀 다 썩 좋지는 않았다. 공격 전개는 답답했지만 그래도 디보크 오리기, 마리오 고메스, 하리스 세페로비치 같이 이름있는 선수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찼다. 경기는 디보크 오리기의 선제골로 볼프스부르크가 기세를 잡았지만 결국 동점골을 실점하며 1:1 무승부로 끝이 났다. 디보크 오리기는 리버풀에 갔을 당시에도 골 넣는 것을 봤는데 이곳에서 다시 보고 골까지 넣다니 괜스레 반가웠다. 지금은 임대에서 복귀해 다시 리버풀에서 뛰고 있는데, 언젠가 안필드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다. 경기는 뭔가 미적지근하고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지만, 옆자리 할아버지와 손짓발짓으로 이야기도 하고 하이파이브도 하며 즐겁게 직관했다. 역시 티비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 수많은 사람들이 선수들 움직임 하나하나에 함께 열광하고 함께 안타까워하는 그 분위기 때문에 직관을 하는게 아닌가 싶다. 이 독일 작은 도시의 사람들과도 오직 축구팀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것이 바로 축구니까.
그렇게 볼프스부르크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피하고 이우토슈타트의 야경을 즐기며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다. 다음 행선지는 북부 독일 최대의 도시이자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였다.
함부르크에 도착을 해서는 호스텔에 짐을 풀고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함부르크에 온 이유는 우선 축구 때문이다. 독일 축구사에 의미가 깊은 두 팀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주말이라 분데스리가 경기도 있고 볼프스부르크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되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겠다 싶었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오니 눈이 많이 내려있었다. 확실히 조금씩 북쪽으로 올라오니 날씨가 쌀쌀해지는 게 느껴졌다. 너무 이르게 나왔던 탓인지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확실히 볼프스부르크보다는 대도시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조금 걸어 내려와 함부르크 시내를 관통하는 운하를 건너니 하펜시티(Hafencity)가 펼쳐졌다. 하펜시티는 엘베강을 따라 함부르크 시내에 펼쳐진 낡은 항만지역들을 재개발한 지구로, 과거의 모습을 살리면서 주택가, 사무실, 관광지로의 변모를 꾀한 곳이다. 지금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강 위쪽과는 다르게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바로 미니어쳐 분더랜드(Miniatur Wunderland)에 가기 위해서였다. 미니어쳐 분더랜드는 엄청난 양의 미니어쳐들로 꾸며놓은 박물관이다. 함부르크에 간다면 꼭 가보라고 했던 곳이기도 하고, 평소 미니어쳐나 피규어에 관심이 많아 찾아보게 되었다.
내부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전 세계가 작게 펼쳐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규모도 엄청났고 미니어쳐 하나하나 디테일도 대단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감탄만 하다 온 것 같은데, 사진에서 보듯이 정말 실제같이 잘 구현해 놓았다. 함부르크 시내부터 시작해서, 독일의 역사와 유명 장소들, 그리고 전 세계의 명소들을 미니어쳐로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게다가 조명을 조절해 밤과 낮도 계속 바뀌어 마치 도시의 야경을 보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특히 이탈리아 로마를 재현해 놓은 곳이 정말 아름다웠다.
가장 유명하면서 인상깊었던 전시물은 위에있는 공항이었다. 실제 공항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고 하는데, 정말 비행기가 이륙과 착륙하는 장면까지 재현해 놓았다. 밤과 낮이 바뀌며 비행이가 착륙하고, 이륙하는 모습이 비록 미니어쳐였지만 장관이었다. 십분정도는 그냥 넋을 놓고 보고 있었을 만큼 진귀한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저녁에 갈 곳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미니어쳐였지만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서인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미니어쳐 분더랜드 관람은 정말 즐거웠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함부르크에 가게 된다면 꼭 시간을 내서 가보길 추천한다.
분더랜드 관람을 마치고는 함부르크 시내 구경을 갔다. 운하를 다시 건너가 함부르크 시청사도 보고, 알스터 호수 주변을 거닐며 여유를 즐겼다. 알스터 호수는 인공 호수라고 하는데, 인공호수 치고는 아주 컸다. 호숫가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한 감성에 젖어들었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알스터 호수를 거닐며 잠시나마 생각에 빠졌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중충하고 추운 날씨와 더불어 조금은 우울하기까지 한 시간이었는데, 그래도 정신없이 달려왔던 여행길에 좋은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나의 다음 행선지는 리퍼반, '세상에서 제일 죄 많은 1마일' 이었다.
리퍼반은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데,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도 유명한 공창(公娼)가라고 한다. 공창가라고 하면 거부감을 갖기 쉽겠지만 리퍼반은 오히려 함부르크 젊은이들의 문화, 예술의 중심지라고 한다. 리퍼반 역에 내려 거리를 내려가니 역시 거의 거리 전체가 성산업 관련 가게들이었다. 날이 추워 사람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지만 괜한 명성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거리가 위험하다거나 기분나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지 않겠는가. 사람이 많고 날씨가 좋은 날 온다면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했다.
그렇게 리퍼반에서 먼저 찾아간 곳은 함부르크 장크트 파울리(Hamburg st.Pauli)의 팬샵이었다. 비록 2부리그를 전전하는 신세이지만 장크트 파울리 역시 엄연한 함부르크의 팀이다. 그리고 이 장크트 파울리가 이곳 리퍼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오게 되었다. 장크트 파울리는 조금은 특별한 클럽이기 때문에 직접 발도장을 찍고 싶었다.
리퍼반에서 주택가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장크트 파울리의 홈 경기장 밀레른토어 슈타디온(Millerntor Stadion)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2부리그 클럽이지만 경기장 규모는 역시 큰 편이었다. 팬샵이 쉬는 날이라 겨기장 내부를 들어가 볼 수도 없었지만 굳이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장크트 파울리라는 클럽의 정체성 때문이다. 장크트 파울리의 목표는 축구장에서 인종차별과 파시즘을 몰아내는 것이다. 이들은 반나치주의, 반파시즘, 반인종주의를 지향하며 축구장에서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열렬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이들의 생각과 컬트, 펑크 문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쿨한'모습에 나도 감정적으로 지지하는 클럽이라 꼭 한번 찾아와보고 싶었다. 현대 축구 시장에서 필수적인 자본과의 결탁을 스스로 거부하고 팀의 성적보다는(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옳다고 밑는 가치를와 약자들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이 멋져서, 밀레른토어 슈타디온에 직접 찾아가 이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렇게 경기장 앞에서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가, 언젠가 경기를 볼 날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돌이켜보면 저 추운 날에 먼 타국 땅에서 지치지도 않고 돌아다녔던 것도 장크트 파울리, 아니 축구가 주는 낭만 덕분이 아닐까 싶다. 축구는 우리가 마음껏 감정을 드러내게 해주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축구는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드러내는 훌륭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물론 잘못된 신념이나 과도한 갈등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축구가 '예전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래도 축구가 아직은 순수하고 이상적이며 낭만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나는 장크트 파울리와의 짧지만 멋진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축구장을 가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