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오카야마는 생소한 도시였다. 나조차도 처음엔 지명을 헷갈리기도 했으니,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오카야마는 일본 주고쿠 지방의 세토 내해 연안에 있는 현이다. 간단히 오사카 왼쪽에 있는 지방이라 말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혼자 있을 시간이 잠들 때뿐이 없던 나에게 인간관계는 하나의 일이었고 미처 끝내지 못한 생각들은 잠자리에서 이어나갔다. 그렇기에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정확히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예의는 잠시 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친절히 한글도 적혀있는 오카야마 공항. 모모타로와 동물친구들이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이곳엔 작은 공항이 하나 있다.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직항으로 연결된 대한항공편도 있다. 나는 오전 7시 30 분행 비행기에 서둘러 탑승하고 1시간 30여분이 지나 오카야마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 계획을 그다지 세부적으로 잡아놓지 않은 터라, 막연하게 하루하루의 간단한 스케줄을 잡아놨다.
첫째 날은 구라시키시.
둘째 날은 오카야마시.
셋째 날은 기비쓰 신사.
마지막 날은 오카야마에서 무작정 돌아다니기.
여행이라는 기분보다는 여유롭게 퇴근하고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
공항버스를 타고 오카야마 역에 도착했다.
거리마다 오카야마 방문을 환영하는 가로등이 펼쳐져있었고 점심시간을 맞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에겐 오카야마의 여유로움이 묻어있었다.
이런 한적함이 좋았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는다는 건 어찌 보면 축복이겠지만 가끔은 끝나지 않는 업무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사람들과 끊임없이 어울리며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어가고 있었다.
내가 항상 웃고만 다니던 사람이었나, 남들이 보는 것처럼 나는 고민 하나 없는 사람일까. 남이 생각하는 나와 혼자만의 나 사이의 이질감은 어디에서부터 온 걸까, 한참을 곱씹으며 구라시키로 향했다.
한산한 전철로 구라시키 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15분쯤을 걷자 하얀 저택들과 내려앉은 구름들이 미관지구의 출발점을 알리고 있었다.
버드나무가 우거진 수로는 서양식 건축물과 하얀 일본식 저택 사이를 가로지른다. 모두가 수로에 이는 잔물결을 바라보며 구라시키를 걷는다. 아이와 나들이 온 단란한 가족과 기모노를 입은 연인들, 거리에 여운을 남기는 나 홀로 여행자들. 각기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일본 최초 사립 서양 미술관 '오하라 미술관'
우리가 몰랐던 오카야마에는 일본 최초의 무엇인가가 많았다. 최초의 서양 미술관이라던가, 일본 최초의 데님 생산지 또는 최초의 공립학교라던지 말이다. 그중에서도 난 전형적인 서양식 건물, 오하라 미술관을 방문했다.
입장료 1300¥을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미술관 내부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어렴풋이 내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미술관의 주인인 오하라의 친구, 코지마 도라지로가 그린 조선 여성의 그림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그녀들이 지었던 표정을 과연 도라지로는 알고 있었을까.
총 3개의 관으로 구성된 오하라 미술관의 뒤편에는 연못과 저택이 보이는 정원이 있다. 물과 기름 같던 두 양식의 건물들 사이로 이곳의 공기가 비눗물처럼 스며든다. 처음 오는 곳임에도 느껴지는 포근함은 여기서부터 오는 걸까.
푹신한 분위기에 젖어 하염없이 걸어 다녔다. 때로는 의자에 앉아 멍하니 수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누군가와 같이 왔더라면 눈치가 보여 발걸음을 재촉했을 테지만, 나 혼자 왔기에 별생각 없이 게으름을 피우며 느지막이 숙소에 도착했다.
100년 전에 세워진 고민가(古民家), 게스트 하우스 Yuurin-an.
이곳에서 각기 다른 환경, 나라에서 온 낯선 이들이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종종 서로 아는 사이가 더 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초반에 보여준 나의 모습이 그 사람에게 도장처럼 찍히게 되는 날이면, 나의 본모습은 뒤 편에 감춰진다.
그렇기에 서로 모르는 사이라서 더 편한, 가볍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그런 밤이 될 것 같다. 포근한 그런 공기도 더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