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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May 14. 2024

설레는 일 아니어도 우리는 성장한다

성장에 힘 이름 붙여보기


* 제 글에서 '일'은 업(業)을 뜻합니다.

 (업(業) :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 가슴뛰는 일은 없다, 마지막 성토


저는 작년에 둘째를 낳으며 퇴사했습니다. 문과생이 의사가 되었기에 저는 이것을 내가 그토록 '꿈꾸던' 일이라 생각했어요. 근무하던 병원도 운명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저에게 퇴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지요. 돌이켜 보면 모두 생각으로 매어두었던 것뿐,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저는 제 일을 가슴 뛰는 것으로 여기면서 치명적인 습관을 갖게 되었더라고요. 그것은 바로 일을 두 개 범주로 자동분류하는 습관이었습니다.


가슴 뛰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로 말이죠.


가슴 뛰는 일은 그렇지 못한 일보다 멋지고 반짝이는 무대 위에 있었습니다. 보통 '좋은' 직업의 범주에 있는 것들이 그런 것이지요. 다수의 고연봉자들이 포진해 있고요.  


가슴 뛰지 않는 일에 속하는 일들이 사실 더 많습니다. 임금을 적게 받거나 시간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일, 공간에 매여 있어야 하는 일, 3D 업종 등이 있지요. 이런 기준으로 보면 본인이 365일 일하겠다 안내문을 붙인 카페 사장님이나 전단지를 돌리는 할머니, 청소부들은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각자 개성을 반영해 직업을 정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묻는 분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그건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처럼, 건강한 개인주의가 뿌리내려있지 않고 집단주의적 성격이 강한 나라들에서 그렇듯*, 좋은 직업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정하지요. 돈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좋은 수단이기에 자주 기준이 됩니다. 저는 초등학생들이 바라는 직업 1순위가 이것에서 저것으로로 바뀌었다는 기사를 보면 눈살이 찌푸려져요. 사회의 시선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투영된 것 같아서 말이에요.



'가슴 뛰는 일'이 따로 있다고 하면 그 반대에 '가슴 뛰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그렇게 이분화하는 순간, 우리는 일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게 되지요. 가슴 뛰지 않는 일들은 그런 방식으로 평가절하됩니다.


불편한 점은 또 있습니다. '가슴 뛰는 일'은 늘 최고의 성과, 최상의 결과와 어울려 다닌다는 것이에요. 그런 일은 미진한 결과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은, 할 수 있는 역할이나 기능에 근거해 그 대상을 규정하는**,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일을 한다면 최고의 기능을 발휘해야 하지 않겠냐는 미명을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는 기능론에 근거한 서양의 사고방식을 답습한 것 같아 마뜩잖습니다. 마치 인간에게 최고의 기능만을 요구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가슴 뛰는 일'은 가슴 뛰지 않는 일을 하는 타인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자신이 현재 하는 일의 성과를 축소시키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괴리시키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는 가슴 떨리진 않지만 자기 일을 성실히 해내는 큰 힘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덕분에 소중한 우리의 삶이 유지되는 거겠지요.


● 김예지 작가가 일을 통해 얻은 힘


그런 사람들 중에 묵묵히 청소일을 하는 김예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저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해요. 얼마 전 그녀가 9인의 작가들과 함께 쓴 <일잘잘:일 잘하고 잘 사는 삶의 기술>***이란 책으로 독서토론을 했습니다.


김예지 작가는 미대를 졸업하고 인턴으로 일하다 프리랜서로 전향했지만, 암울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런 그녀에게 엄마는 결심한 듯 함께 청소일을 해보자고 권하지요.

토론을 하다 한 참여자가 물었어요.


미대를 졸업한 딸에게 청소일을 권하는 김예지 작가의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질문에 딸을 말려야 했다는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진행자는 '엄마의 행동에 공감한다'와 '공감하지 못한다'로 나누어 참여자들에게 손을 들게 했습니다. 표가 비등비등하게 갈렸어요. 저는 공감한다에 손을 들었고 이어 답했습니다.


"김예지 작가가 하는 일은 분명히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피하는 일이지요. 자녀가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말렸다고 하는 사람의 얘기를 듣는다면, 우리는 그 부모에게 잘했다고 할 거예요. 하지만 책에서 김예지 작가는 그런 권유를 한 엄마를 존경한다고 표현해요. 자신과 최고의 듀오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일을 하며 성실함과 꾸준함을 배웠다고 해요. 저는 김예지 작가가 꾸준히 그 일을 하면서, 또 자신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을 마주하며 어떤 힘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동기력과 회복탄력, 의지력 같은 일련의 힘들을 말이지요. 무슨 일을 하든, 일을 통해 그런 힘들이 길러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김예지 작가의 엄마 같은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김예지 작가가 자신의 일을 통해 정말 그런 힘을 갖게 됨으로써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체력이나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을 하고도 즐겁고 재밌다고 말한다면, 저는 그가 다른 어떤 힘을 갖게 되었구나 생각해요. 행동력이나 자기 추동력, 판단력, 공감력, 이해력, 의지력, 포기력 등등 우리가 명명할 수 있는 많은 힘들 말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직업!


그래서 저는 우리에게 좋은 일, 좋은 직업이란 그것을 통해 힘을 배양해 낼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힘입니다. 그런 힘들이 모여서 발현되어 그 사람의 기운을 이룬다고 생각해요. 결정력과 실행력이 섞여있는 사람이 그걸 발휘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용기’를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힘들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배합되는 비율과 발현되는 정도만 다를 뿐, 아이가 놀이를 통해 자기 조절력을 키우듯 어른은 일을 통해 힘을 키워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가슴 떨리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통해 우리가 삶에서 필요한 힘을 기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그 힘들로 우리는 사람 관계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주변을 내가 원하는 사람들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내 주위 환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성하거나 시간을 사용하는 것에도 그런 힘들이 필요합니다.


● 일을 통해 얻은 힘에, 이름 붙이기


관심을 가졌던 일을 시도만 해도 당신에겐 분명 어떤 힘이 길러질 거예요. 그 일을 유지하면 또 다른 힘이 키워지겠지요. 그것에 이름을 붙여 주세요. 당신이 인식한 그 힘을 통해 성장했다 느끼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할 거예요.

어떤 일로든 우리는 고유한 매력을 가진 힘맨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이름으로 불러줄 때 힘은 우리에게 와서 머물거예요.


출처 : pinterest. 그는 히-맨(HE-MAN)이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부르던 그 이름, 힘맨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브런치북 제목이 슬쩍 바뀐 거, 눈치채셨나요?

<없어요, 가슴 뛰는 그런 일>을 하나의 글로 마무리하려 했지만 제 속엔 유감이 많았나 봅니다. <당신 삶의 정반합>은 숙성시켜 다음 연재를 도모하겠습니다!






* <모멸감>, 김찬호, 문학과지성사, 2013

**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 생활>, 김경일, 저녁달, 2022

***<일잘잘:일 잘하고 잘 사는 삶의 기술>, 김명남 외 9인,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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