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업(業)이 되어가는 과정
제가 이전에 적어두었던 글을 발견했습니다.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의 요청으로 '진로'에 관해 고등학생들에게 전하려고 준비했던 (부끄럽지만) 제 이야기입니다. 행사가 진행되진 못했지만 저에겐 글이 남아 다행입니다.
제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이 사람은 이랬군. 정도의 무게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1. 관심분야를 제한하지 않기로 해요
저는 어중간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 채 성적에 맞추어 지방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어요. 대학교 2학년이 되자 진로 걱정이 컸습니다. 부모님은 아빠의 외벌이 수입으로 대학생인 언니와 제 학비를 지원하고 있었어오. 돈이 들어갈 동생도 있었습니다.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했어요. 그런 상황이었지만 제가 과거의 저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관심사를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때 관심 있는 것을 모두 시도해 볼 순 없었지만, 가능한 다양하게 생각해 보았어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것은 저의 관심사 중에 하나였습니다. 당시 의학전문대학원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학부 졸업 후 의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요. 지금보다 들어갈 수 있는 TO가 많았어요. 부모님께 의전원 입시 시험(MEET)을 보고 싶다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은 그 직업이 앞으로 취업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생각에 공부하는 기간 동안 비용을 지원하시기로 했습니다.
제도가 있었고 부모님이 공부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해 주셨다는 환경적인 요소를 무시할 순 없습니다. 다만 그 환경이 어떤지 따져보려면 일단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제한 없이 맘껏 상상해 보고 관심분야를 스스로 제한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00니까 △△는 못하겠지라는 생각 금지. 우리의 포텐이 어느 관심사에서 터질지 모릅니다.
관심사를 제한하는게 처음에는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우리는 보통 사회에서 정해준 기준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해져있고 심지어 그게 편하기 때문이지요.
그럴 땐 내 언어습관부터 살펴보면 도움이 될 거에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저는 최근에 독서모임을 하다 “저는 뼈부터 문과라서 수학 못했어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흠칫 놀랐어요. 그 말을 통해 그 분이 자기를 어떤 방식으로 제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원래부터'나 '뿌리부터', '뼈부터' 라는 구절들은 자신을 제한하는 말들의 대표주자입니다. 관심사를 뻗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생각들이지요. 이 구절들을 삶에서 의식적으로 빼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나는 00지만 △△한 번 해볼까.라고 연습해나가면 좋겠습니다.
2. 일정기간 고립은 필요해요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준비를 결심한 후, 친구들에게 1년 동안 나를 찾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학교도서관이 집에서 가까워 매일 그곳에서 공부했어요. 12시간의 하루분량 공부를 끝내면 의과대학 쪽으로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제가 그때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잘 활용하며 집중력과 의지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이었지요.
부모님은 딸이 갑자기 의사가 되겠다 공부를 시작하긴 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러다 금방 그만두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하셨다고 해요. 다행히 저는 매일 공부하는 생활을 반복했고 그렇게 3개월이 지났습니다. 3개월은 내 의지를 자신과 부모님께 보이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데 익숙한 우리들이므로, '의지'처럼 보이는 않는 것들을 눈으로 보려면 계속 행동하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킥이에요. 내 의지력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부터 뭐랄까, 확 달라지더라고요. 부모님은 이때부터 제 눈빛이 달라졌다고 하시며 그때 얘기를 하실 땐 눈을 희번덕 떠보이기도 하십니다.
요즘에도 많이 느낍니다. 그게 어디든 다음 단계로 가고 싶다면 이 고립기간이 필요한 거구나. 쓸쓸하고 혼자인 기간이. 또 궁금합니다. 이 시기를 유난히 현명하게 보내는 사람들의 비법이 말이지요.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했습니다.
3. 과정과정에 '사람'이 있어요.
이후 대학병원 진료교수가 되었을 때,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대학교 때 이야기가 나왔어요. 동료들은 제가 지방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는 것에 많이들 놀랍니다. '지방대학'과 '영문과' 모두예요. 가만히 뒤돌아보니 저에게는 과정마다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MEET 시험을 볼 때까지 영문과 교수님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해 주셨습니다. 영문과 재학시절 제가 수년간 연구를 돕던 교수님이셨지요. 교수님은 목표한 공부량을 얼만큼 달성했는지 매주 메일을 보내달라 하셨고, 보낸 메일에는 응원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인턴을 마치고 원하는 과는 정했지만 또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이전에 함께 일했던 교수님께 연락이 왔어요. 그는 그때 네가 관심 있어하던 분야가 Z대학병원에 생겼대, 전임의 지원해 보는 게 어때?라면서요. 이 분야가 내 관심사라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다녔었나 봅니다. 그런 저를 기억해 주는 분들이 있었기에 저는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었어요. 나아가는 길목에는 꼭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가 성공해야하니까 주변에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다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애매모호하게 느끼고 있는 것보다는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 내 행동을 조절해나가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글은 여기까지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과거의 나와 만나는 것은 참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또 과거의 내가 회상하고 쓴 그 이전의 나와 만나는 것도 그렇구요. 그들이 지금의 나에게 뭐라고 귀띔을 해주는 것 같기도 해요.
글을 가만히 읽다 보면, 저는 지금과 강조점이 다를 뿐 그때도 생각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꼭 의사가 되고 싶어, 그게 내 가슴 뛰는 일이야'라기보다는 일말의 관심이 있었고 주위 사람과 환경도 크게 한몫을 했다고 말이지요. 의지력같은 자신의 힘을 ’확인‘하는 것이 앞으로 관심을 펼치는데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이 기록은 미래의 내게는 무슨 말을 할까요. 가능한 솔직해야겠습니다. 미래의 내가 헷갈리지 않게요.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멈추고, 매거진들에서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