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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냐냐 Sep 06. 2017

엄마 아빠




엄마 아빠는 내 미래를 원만한 궤도에 올려놓으려 했고, 그래서 우리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상처 많이 받았다. 버거웠다. 

그래도 천성이 어리광쟁이인지라 미운 마음은 안 생기더라.

내 아빠 나인학씨

내 엄마 홍선희씨

역마살을 타고 자의식이 뻗치는 대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딸내미의 예술가 기질이 버거웠을 뿐 그들의 천성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겠지.


그래. 생각해보면 별스럽진 않았다. 내 모든 가능성의 가지를 툭툭 무심하게 끊어다가 불쏘시개로 태우고 아직 가느다란 나의 근원이라던가 뿌리를 독설로 파헤쳐서는 "겨우 이거야?" 비웃는 건 서툰 부모들이 안전한 길로 자식을 끌고 가기 위해 휘두르는 보편적인 잔인함이니 그리 별스럽진 않았다. 그러나 아빠가 물려준 고집과 엄마가 물려준 생존력은 꽤나 별스러운 것이라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컸다. 왼쪽 가슴 언저리엔 언제나 한 덩이 불안함이 씨꺼멓게 웅클거리지만 수요일 아침 9시에 남산 타워에 올라 느긋하게 서너 시간 책을 보다 내려올 수 있는 삶의 뒷켠일 뿐이다. 나는 결국 엄마 아빠가 물려준 것으로 잘 컸다.


작년 이맘때 엄마가 불현듯 미안하다고 하더라. 엄마가 너무 너한테 그렇게 해서 미안하다고.

"응 뭐 괜찮아"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고,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다. 다 나은 거다.




느긋하게 책을 보는데 아빠가 문자를 보낸다. 안경 맞춰야 한다고. 요즘 아빠의 소소한 재미는 막내딸에게 비상금을 가져가는 거고 아빠가 달라는 돈에 몇 푼 더 얹어 보내는 건 내 소소한 재미다. 

그런다. 아빠 흰머리를 뽑아서 하나당 10원씩 용돈을 받던 내가 이제 아빠 에게 용돈을 준다.

하지만 서른넷인 나는 아직도 덜 자라서 엄마 아빠랑 지금처럼 평생 살 것 같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계속 같이 살자. 어디 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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