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력서가 길어질수록 불안해진 이유

학위 3개와 글쓰기가 만든 투자관

by 안상현

1. 세상의 정답을 모으던 시간들

반도체 석사로 차가운 기술과 논리의 세계를 배웠고, 평화학 박사를 수료하며 세상의 거시적인 평화를 연구했다. 게다가 40대라는 늦은 나이에 심리상담 석사에 도전해 양파 껍질처럼 복잡한 인간의 마음까지 들여다봤다. 남들이 보기엔 지적으로 완벽하게 무장한 삶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세상의 불확실성을 '지식'이라는 방패로 통제하고 싶었던 나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정답을 수집하면 내 삶도 정답에 가까워질 줄 알았다.


2. 아파트를 매수하며 현실과 마주하다

아파트를 매수하던 날의 서늘한 감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매매 계약서에 도장 하나를 찍으며 짊어지게 된 현실의 거대한 무게 앞에서, 세 장의 학위증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학위증은 내 대출 이자를 대신 갚아주지도, 노후의 안전마진을 보장해 주지도 않았다.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동안, 실질적인 경제적 짐은 결국 아내의 어깨로 고스란히 넘어가고 있었다.


3. 통장이 평화롭지 않으면 일상도 없다

아무리 내면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연구해도, 당장 내 통장이 평화롭지 않으면 일상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었다. 수백 명의 내담자를 상담하며 내가 목격한 진실은 뼈아팠다. 그들이 털어놓는 수많은 인간관계와 심리적 고민의 뿌리는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 스스로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상담자인 나조차 그 현실적인 한계를 직설적으로 짚어줄 수 없었다. 내 이력서에 적힌 화려한 스펙은 '시험장 안에서의 정답'일뿐, 자본주의라는 야생에서는 철저히 무력했다.


4. 멈춰버린 현실 앞, 주식 공부를 시작하다

코로나19가 덮치며 모든 대면 활동이 멈춰 섰다. 강의와 상담, 코칭을 업으로 삼았던 내 삶의 톱니바퀴도 그대로 정지했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이 멈추고 나서야 나의 진짜 현실을 뼈저리게 직시할 수 있었다. 수입이 끊긴 채 마주한 미래는 아득하게 불안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불확실성이 다시 찾아온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며칠 밤낮으로 쥐고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였다. 바로 '주식'의 세계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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