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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크랜디아 Oct 29. 2022

숨통이 트이는 캠핑카 생활

Part3. 슬기로운 집 없는 생활 - 4

굳이 따지자면 나는 경제문맹에 가까운 사람이다. 

한국에 살 때는 나중에 연금이나 받아 쓸 안이한 생각으로 쥐꼬리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어가는 돈이 투자이자 저축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2년마다 이 집 저 집 옮겨가며 살다 보니 부동산 아주머니랑 친분이 생겨 20대 후반에 오피스텔 투자를 두 번 정도 했지만, 부동산 큰손이 되겠다는 거창한 포부도, 부동산에 대한 지식도 미비던 시절이었다.

첫 번째 투자는 초심자의 행운 덕인지 아니면 부동산 아주머니가 알짜배기 정보를 준 덕인지 약간의 수익을 냈지만, 겁 없이 단독으로 시작한 두 번째 투기에 가까운 투자는 첫 번째 투자에서 번 돈을 다 털어 넣고서야 간신히 손을 털었다. 그나마 잘한 것이라고는 돈 벌기 시작하자마자, 남들보다 일찍 건강보험을 잘 세팅해서 들어놓은 것인데 그것 또한 미국에 살게 되면서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돈을 헤프게 쓰며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짠내가 날 정도로 아끼며 살아본 적도 없었다.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 엄마가 늘 하시는 얘기가 있다. 세뱃돈을 받으면 너희 오빠는 항상 엄마한테 휙 던져주곤 했는데 , 너는 그 돈을 어딘가에 꽁꽁 숨겨놓고는 얼마 받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고. 

나는 그렇게 돈을 모아서는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부모님께 손 벌리는 대신 쌈짓돈을 꺼내 사는 어린이였다. 무언가에 꽂히면 엄마가 질릴 때까지 조르기를 시전해 원하는 것을 늘 얻어내던 오빠와는 다르게, 뭔가가 당장 너무 갖고 싶어서 꿈에 나올 정도로 안달복달하는 일은 나라는 사람에게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보통 나는 내가 가진 돈에서 살 수 있는 정도의 물건 중에 갖고 싶은 걸 고르거나, 내 수중에 가진 돈보다 비싼 특정 물건이 꼭 갖고 싶다면 돈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타고난 성향은 바뀌지 않는 것인지,  성인이 돼서도 나는 그렇게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당시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은행이었던 농협에 가서 6개월짜리 적금을 들었다. 6개월인 이유는 간단했다. 그 돈이 6개월 뒤에 써야 할 목적자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방학이 되면 여행을 떠났다. 

인도, 태국, 이집트 같은 물가가 싼 나라에 가서 젊으니까 할 수 있는 고생을 자처하며 즐겁게 한 달씩 지내다가 왔다. 유럽이나 미국, 호주 같은 곳은 나중으로 미뤘다. 

그렇게 비행기표도, 생활비도 비싼 곳에 가려면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엄마 찬스를 쓰거나, 시간과 노동력을 갈아 넣어 돈을 좀 더 열심히 벌거나. 굳이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고, 여행이라는 미래의 일을 위해 현재의 내 삶을 희생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럽이나 미국이란 나라에  지금, 꼭, 반드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며 동아리 활동도 하고, 연애도 하고, 친구도 만나면서 설렁설렁 6개월 동안 저축할 수 돈이 300만 원이라면 300만 원에 맞춰 갈 수 있는 곳에 가도 괜찮았다. 500만 원이 드는 곳은 나중에, 천만 원이 드는 곳은 더 나중에 현재를 담보 잡지 않고도 갈 수 있는 때가 오겠지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도, 학생인 남편 덕에 한참을 그렇게 살았다. 여유로운 살림살이인 적은 없었지만 우리 둘 다 세뱃돈 꼬깃꼬깃 숨겨놓고 쓰던 동일한 어린이 시절을 가진 유사한 소비패턴 덕분인지, 가용한 생활비 안에서 큰 불만 없이 살 수 있었다. 초특가 비행기 티켓이 나올 때 가보고 싶었던 곳을 여행했고, 픽업트럭을 타보고 싶었던 남편은 차를 바꿀 수 있을 정도 여유가 생길 때까지 꼬박 3년을 기다렸다.


모아놓은 돈도 없지만, 빚도 없었던 나름 행복한 경제문맹의 삶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코로나와 함께였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당시 비행교관으로 일하던 남편의 일이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항공시장은 최고의 불황을 맞았고, 그 여파는 우리의 가계사정에도 직격탄으로 날아왔다. 나중에 아이를 좀 키우고 나서 내가 공부할 때 쓰겠다며 한국 통장에 고이 모아놨던 돈들을 환전해서 생활비로 태우기 시작했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보다 적어진 월소득 앞에서 우리는 생애 처음으로 가계부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첫 달에는 지출을 체크하면서 다음 달에는 외식비를 좀 줄이자, 쇼핑을 얼마로 제한하자, 각자 개인 용돈을 얼마씩 쓰자 등등 개선사항을 점검했다. 두어 달 뒤에는 나도 모르게 '이 정도면 숨만 쉬고 사는 건데 대체 뭘 더 줄일 수 있어?'라는 냉소가 고개를 삐쭉 내밀었다. 돈을 더 벌어야만 했다.

더 이상 줄이기 어려운 지출보다 소득에 포커스가 맞춰지자, 나는 어느새 남들처럼 나가서 우버나 아마존 딜리버리 일을 해서 부수입을 벌어야지 않겠냐고 남편에서 얘기하고 있었고, 남편 역시 나에게 일하는 시간을 늘리든지 해서 한 달에 얼마 이상은 벌어야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었다. 가계부 월말 정산을 하던 매월 1일이면 날 선 말들이 차가운 공기가 집 안에 가득했다. 


지금은 다행히 그 시절을 지나왔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가정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랑은 창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그 당시 우리는 창문 앞에서 들어올 틈을 노리며 기웃기웃하는 불행의 그림자 때문에 종종 불안하고 예민했었다. 


월세를 꼬박꼬박 내면 집에 살던 시절에는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인 '고정지출'은 말 그대로 더 이상 줄이기 어려운 고정값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줄여가며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결국 가정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기괴한 논리에 설득당했다. 

하지만 캠핑카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알게 되었다. 난공불락의 상수인 것만 같던 '고정지출'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로 결정하냐에 따라 꽤나 드라마틱하게 줄일 수 있는 변수였다.


캠핑카 생활을 시작하기 전 고정지출을 살펴보면 월세만 2천 불에 매달 물세가 40불 정도 추가되었고, 전기세는 150불 정도, 인터넷비로 50불, 핸드폰비는 80불 정도가 들었다. 미국에서는 만 5세 이전은 무상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일하는 동안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데 800불이 추가로 들었다. 차가 없으면 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미국 특성상 차 두 대를 몰았고 그중 한 대에 매달 할부금이 350불씩 들어갔다. 식비, 기름값 등을 제외하고도 벌써 3470불, 한화로 1200원으로만 계산해도 약 417만 원이었다. 

숨만 쉬는데도 드는 돈이 416만 원이었다.


캠핑카 생활을 시작한 뒤 이 고정지출은 어떻게 변했을까?  

예전 캠핑카를 끌고 여행으로 캠핑장을 다닌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Full-Hookup이 가능한 RV Park에 머무려면 최소한 40불에서 70불 정도 지불해야 한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에 50불 정도를 잡는다면 한 달에는 1500불 정도의 캠핑장 사용료가 든다. 이게 우리가 처음 캠핑카 생활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계산한 주거비였다. 하지만 캠핑장 시설을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을 반 이상 줄이는 방법이 있었다.


Passport America를 통해 반값 할인받아 머문 바다 바로 앞 캠핑장. 


먼저 길을 떠나기 전, Passport America Membership card를 발급받았다. 캠핑장 10% 할인을 받을 수 있는 AAA나 Good Sams Membership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Passport America는 자그마치 50% 할인 혜택이 있다. 1년 멤버십 fee로 44불을 내었고, 단 두 번의 숙박만에 이 비용은 회수가 되었다. 

가입된 캠핑장이 지역마다 한정적이란 것, 캠핑장에 따라 이용 횟수를 제한할 수도 있다는 것, 대부분 전화예약만 받는다는 것 등의 단점이 있었지만 이동 중 비교적 짧은 기간을 머무르는 곳에서 정말 유용하게 사용했다. 

또한, 한 곳에 일주일 이상, 한 달 이상 장기로 머무를 예정일 때는 거의 모든 RV Park에서 제공하는 자체적인 장기고객 특별 할인가 혜택을 볼 수 있었다. 길어봤자 한 곳에 3박 4일 정도 머물던 캠핑 여행자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처음으로 한 달을 보낸 캠핑장 @ the Woodlands, Texas

캠핑장마다 다르겠지만, 지난달 우리가 머물렀던 캠핑장에서는 한 달 이상 장기로 머물 시 할인된 Monthly rate을 적용해서 Campsite fee로 575불을 지불했다. 여기에 물세는 포함이고, 전기세는 쓴 만큼 월말에 청구된다. 공간이 작아진 만큼 전기세도 줄어 지난달에는 40불이 나왔다. 인터넷은 캠핑장 wifi를 쓰고 여행 중에는 hotspot을 연결해서 이용한다. 이동하는 캠핑카 생활 특성상 유치원을 다니기는 어렵기에, 만 4세가 된 아이는 유치원에 가는 대신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이동할 때 차가 2대이면 상당히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차가 2대일 필요도 없기에 집을 정리하며 차도 한 대 팔았다. 그 돈으로 남은 차 할부금을 정산하자 약간의 여유자금이 통장에 남았다. 핸드폰비는 변함없는 80불, 새로이 추가된 고정지출은 이삿짐을 보관해놓은 창고 대여비 200불이다. 

식비, 기름값 등을 제외한 이 고정지출을 더해보자 895불이란 숫자가 찍혔다. 한국돈으로 107만원다. 

숨만 쉬어도 417만 원이 드는 현실에 숨이 막히던 시절은 과거가 되었다.


새로운 거주의 형태를 시작하며 대체 생활비가 얼마나 아껴지는가가 궁금한 마음에 지출내역을 뽑아서 들여다보고, 계산기를 두드려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고정지출이 많이 어느 정도는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큰 차이였다. 

417만 원과 107만 원의 간극, 310만 원이면 가족과의 시간,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을 희생해가며 추가로 일을 해서 돈을 더 벌 필요가 없을 만큼의 여유돈이었다. 

막상 정리하다 보니 또 하나 재미있는 발견은 돈 소비의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물건을 담을 공간도, 비교할 대상도 없다 보니 눈에 보이는 물건에 쓰는 돈이 현저하게 줄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스트레스를 온라인 쇼핑으로 풀고, 가득 쌓이는 택배 상자를 며칠 째 풀어보지도 않는 그다지 필요도 없고, 설렘조차 없는 물건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곤 했다. 

하지만 길 위의 생활 동안 받아 든 카드고지서에는 지나고 나면 후회와 예쁜 쓰레기만 남는 물질 지향적 소비 대신 지나고 나면 추억과 사진이 남는 경험 지향적 지출들로 가득했다. 국립공원 입장료, 카약 대여, 식물원 관람료, 박물관 입장료, 박쥐 투어 등 머무르는 동네마다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에 우리는 과감하게 소비했다.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뿌리내리지는 않는 캠핑카 생활 특성상 이곳을 떠나면 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음에 하지 뭐'라는 말로 미래를 기약하지도 않았고, 캠핑카 생활은 별다른데 들어갈 돈도 없기에 '이번 달은 빠듯하니까 다음에 해야지'라는 말로 씁쓸함을 삼키지도 않았다.


캠핑카에 살며 좀 더 자연과 가까이하고, 좀 더 몸을 많이 움직이고 , 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무언가 늘 촉박하게 하는 대신 멍 때릴 자유를 나에게 허하자 숨통이 트인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우리의 숨통을 탁! 트이게 해 준 것은  숨만 쉬어도 증발하는 고정지출이 줄어들었단 사실이었다.  310만 원 만치 넓어진 숨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가 오늘따라 유달리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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