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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크랜디아 Oct 30. 2022

"지금, 캠핑카에 삽니다."

당당히 이 말을 뱉어내기까지

드라마 전체를 통으로 본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아무리 인기있는 드라마라도 유투브에 올라오는 짧은 영상으로 등장인물과 대강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정도에서 그치곤 했다. 그조차도 그 드라마가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화제성이 높은 드라마 영상 아래 달린 댓글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어서인 경우가 많다. 

익명성의 비호 아래 투명하게 드러낸 사람들의 생각을 댓글을 통해 엿보다 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온라인 난상토론이 드라마보다 훨씬 더 재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날도 유투브를 배회하다 최근 인기있는 드라마의 짧은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극 중에서 부자고모로 나오는 우아한 매력의 중년배우가 돈에 찌들어사는 가난한 딸부잣집의 K장녀에게 이야기한다. 


"좋은 집에 살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져."


좋은 집에 살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별 것도 아닌 얘기를 거창하게도 하는 1분도 채 안되는 이 영상 때문이 아니라, 그 아래 달린 수 백개의 댓글 안에 담긴 보통 사람들이 쏟아 놓은 각자의 '집'에 대한 경험과 신념들을 읽다가 한동안 잠잠히 지내왔던 내 마음에 작은 울렁거림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새아파트에 사니 삶의 질이 다르다", "집 한채가 서민의 든든한 무기이다." 등의 내 집을 갖고 있는 것은 단순히 성공 뿐 아니라 삶의 모든 태도에 영향을 주는 부동산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는 댓글들을 곱씹어 읽을 수록 내 작은 마음에 울렁거림은 얕은 파도가 된다.


'내가 아무리 캠핑카에서 사는 삶의 장점을 혼자 외쳐본들, 이 사람들 눈에는 그냥 집 없는 사람의 정신승리이겠구나.'

이 작은 미동을 그대로 방치하면 눈깜짝할 사이에 집채만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되어 이성을 집어삼키고 감정에 생채기 낼 것이란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아직은 찰랑거리는 정도일 뿐인 마음 속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내 감정을 객관화해본다. 


'내가 또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고 , 다른 사람 생각 속으로 들어왔구나.'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다시금 내 안으로 돌리려고 노력해본다. 다시 고요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 주변의 어른들은 나에게 안정된 직장을 골라야 한다고 했다. 

안정된 직장을 잡자 이제는 좋은 남자를 만나 안정된 결혼생활을 해야한다고 했다.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하자 이제는 집을 하나 사서 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했다.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흡사 한 사람의 인생은 '안정'이라는 보물을 모으기 위한 끝없는 도전 같이 느껴졌다. 하나의 안정을 찾으면 다음 퀘스트에는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또 다른 안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변화를 거부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물로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른이 넘어서까지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나보다. 


어른들이 말하는 '집을 사야하는 때'에 '집에 사는 것'조차 그만둬 버렸다. 

안정을 획득하기 위한 게임판에서 잠시 빠져나와 살아보니 인생은 각 시기별로 가져야할 안정을 하나씩 모아가는 퀘스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과 가져야 할 것을 찾아가는 여행에 가까웠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우리의 모습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걸어가야만 그 길 끝에서 '진짜 어른'이 된 나를 만나는 여행 말이다. 그런 것이 어른이라면, 나는 전심으로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집 없는 길 위의 삶의 다음 단계가 있다면 그것은 '내 집이 있는 안정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일 것이다. 그게 내가 지금의 삶을 통해 가장 얻어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제까지 이 집 없는 생활을 이어갈까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좀 더 내 자신이 될 수 있을 때까지'가 될 것 같다. 


사실 드라마 속 부자고모의  '좋은 집에 살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져.'라는 말 뒤에는 주목받지 못한 한문장이 더 붙어 있었다. 


"좋은 집에 살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져. 웬만한 일은 집에 돌아오면 다 극복이 되니까."


나는 앞의 문장보다 뒷문장을 기억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 되야지 좋은 집이라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좋은집에 살아서 성공할 확률 같은 건 더더욱 잘 모르겠다. 

그저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면 웬만한 일들이 극복되는 그런 편안한 공간을 가꾸고, 그 곳을 좋은 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 의미라면, 나는 지금 좋은 집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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