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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Jun 25. 2024

상가 전문 부동산 소속 공인중개사 3개월 차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당찬 포부를 안고 상가 전문 부동산 소속공인중개사로 일한 지 이제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월급은 없고 5:5 인센티브제, 광고비 3개월 지원, 식대, 교통비 등등은 자비로 충당. 열악한 조건이지만 임대료 안 내고 일 배울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어 앞 뒤 잴 것 없이 시작했다. 돈 못 벌어도 좋으니 한 일 년만이라도 일 배우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만둘까를 고민하고 있다. 


상가 전문 부동산에서 일을 시작할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대단지 아파트 단지 내 부동산에서 시작하고 싶었으나 그런 곳은 주로 소장님 한분이 하시거나 부부가 한다. 실장을 뽑더라도 경력이 없으면 면접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했으나 결국엔 이런저런 이유들로 불합격을 했더랬다. 그래서 갈 수 있었던 곳은 신입, 경력 가릴 것 없이 직원을 많이 뽑는 상가 전문 부동산 밖에 없었다. 


상가 전문 부동산은 직원을 많이 뽑는데 그 이유는 지역을 한정해서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수록 할 수 있는 지역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언급하겠지만 이 점은 소속 공인중개사에게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어쨌든 상가나 아파트나 매물을 중개하는 일이니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시작했는데 상가 중개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3개월 간 계약이 한 건도 없었던 것은 물론 계약할 뻔 한 적조차도 없다. 경기가 좋지 않은 탓인지 손님 문의도 뜸한데 뜸 한 손님마저 초보인 나는 끌어당기질 못했다. 


그만둘까를 고민하는 이유를 한번 가만히 생각해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아무리 돈을 못 벌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3개월째 계약이 안 나오니 초조해진다. 밥값이며 차비며 비용은 계속 쓰는데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계속하는 게 맞을까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든다. 또 일 나간다고 옷 사입은 돈만 해도 수십만 원이다. 적자만 계속 나는 상황이지만 계약이 날 것이란 보장이 없다. 특히나 최근 경기가 안 좋아 손님 문의도 가뭄에 콩 나듯 온다. 계약은 영영 못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니 일을 하고 싶은 의욕이 없다. 


둘째, 이건 사무실 특성과 관련이 있는데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은 상가 전문 부동산으로 지역을 아주 넓게 잡아 업무를 한다. 그 말은 사무실 근처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미 기존에 계시던 분이 사무실 주변은 다 담당을 하고 있어서 나를 포함한 다른 실장님들은 사무실과 멀리 떨어진 지역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무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을 담당하는 것이 왜 불리하냐 하면 각 지역에는 그 지역의 로컬 부동산이 있다. 내가 만약 상가를 얻는다면 사무실이 멀리 있는 다른 지역의 부동산에서 계약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얻을 상가 가까이에 있는 부동산에서 할 것인가? 임차인 입장에서는 내가 얻을 상가 가까이에 있는 부동산이 좀 더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가까이 있는 부동산에서 계약을 해야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사후처리가 원만하게 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해당 지역의 로컬 부동산이 그 지역의 터줏대감이라면 나는 보따리상에 불과하다. 


셋째, 계약이 안 나오니 자괴감이 들고 슬슬 눈치가 보인다. 아무리 월급을 받지 않더라도 한 자리 차지해서 일하고 있는데 계약이 안 나오니 사장님 보기가 미안해진다. 동료 직원들 보기에도 부끄럽고 자존감도 한없이 낮아진다. 그럴수록 더 움츠러들게 되고 일은 더더욱 잘 안된다. 


넷째, 내향적인 내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인 것 같다. 우선 매물 따는 일도 쉽지가 않다. 매물 나온 가게에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서 매물 내놓으셨는지 물어보고 손님 계시면 중개해 보겠다고 말하며 접수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 일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처음엔 정말 많이 힘들었다. 명함작업을 하는 일 또한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다. 영업을 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결코 쉽지 않다. 


접수받은 매물 광고를 올리면 손님 전화를 받게 되는데 전화를 받기도 무섭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이 쿵쾅 거린다. 손님 전화를 받아야 계약도 하게 되는데 솔직히 전화를 받기가 싫어서 피한 적도 있었다. 전화를 받더라도 빨리 전화를 끊고 싶은 마음만 한 가득이다. 그래서 빨리 끊고 또 통화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부동산 하기엔 최악의 성격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이유들로 그만두려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그만두려니 약간의 오기가 생겼다. 그래도 3개월이나 버텼는데 나올 때 나오더라도 계약은 한 건 쓰고 나와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 두면 또 뭘 할 건데?라고 생각하니 막상 할 것은 없었다. 예전처럼 집에서 '뭘 해야 하나..'  생각만 하고 시간을 보내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다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에 있으나 사무실에 있으나 어차피 돈은 못 번다 쳐도 사무실에 나가면 뭐라도 하긴 할 것이니 집에 있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다. 식사비나 교통비 등이 들겠지만 집에 있다고 돈을 안 쓰는 것도 아니니 그게 그거인 것 같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접수받은 매물들을 그대로 놔두고 나오기엔 또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중에는 잘 관리해서 권리금도 많이 낮추어 놓은 매물들도 몇 개 있다. 이 매물들은 꼭 계약을 시키고 싶다. 


무엇보다 이제는 도망치고 싶지 않다. 조금 힘들다고, 조금 뭐가 맞지 않다고,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동안 많은 것들에서 중도 포기해 왔다. 회사도 통역대학원도 그렇게 그냥 포기했었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실패를 하더라도 끝장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또 그만두고 싶을 때 이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며 마음을 다잡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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