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mtl hannam 보난자 커피와 베를린 이야기
The art of travel.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 라고
외치고 싶어 진다.
알랭 드 보통
어디를 가야 할지 행선지를 모르는 게 좋고,
또 그러면서도
한참 멀리 길을 떠나 있다는
느낌이 좋죠.
Susan Sontag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베를린에 도착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할 때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mtl 플랫폼을 만들기 이전에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음악도 듣고, 공간에서 큐레이션 할 음악을 위한 LP도 고르고, 로드숍도 돌아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느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모어댄레스와 현지에서 친구들과 있는 그대로 함께 생활하고 즐기는 것, 그 안에서 자유롭게 일상을 경험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 가이드가 되어줄 친구가 부탁한 라면 한 박스를 씩씩하게 들고 다녔습니다.
드디어 도착!
25 hours. BiKini Berlin.
베를린의 하루는 정말 길게 느껴집니다. 여행을 떠나면 잠을 거의 안 자고 돌아다니기가 주특기지만(낮엔 거리로 ~! 밤엔 음악을 ~!) 여름에는 해가 아주아주 늦게 지기 때문입니다.
저녁시간. 대낮같이 환한 분위기.
루프탑 라운지에 서둘러 올라가니 벌써부터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로 꽉 차 있더군요. 베를리너가 섹시한 이유를 들자면 이런 바이브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친구와의 만남을 기뻐하며 일단 샴페인을 주문했고요 ㅎㅎ 라운지 음악을 즐기며 요즘은 어디가 재미있는지 클럽은 어디로 갈지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잊게 하는 그곳.
다음날. 일찍 자전거를 타고 인근 공원을 거쳐 동네 한 바퀴를 돕니다. 베를린의 도로는 거의 평지여서 자전거 타기가 좋습니다. 공원 근처에 철물점이 있어 가봤더니 불이 꺼져 있습니다. 너무 일찍 나왔나 봅니다.
다시 와야지.
벌써 버킷 리스트가 생깁니다. 상쾌해진 마음으로 전시를 볼까 생각하며 길을 걷다가 매장 앞 차트에 시선이 이끌렸습니다. 바로 베를린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이네요.
여행을 다니면서 빼놓지 않는 것은 맛집, 시장, 플리마켓 그리고 클럽>. <!인데요. 여기에 한 가지 더.
어딜 다니던지 매장이나 부동산 시세를 꼭 확인해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성준 씨는 항상 현지 물가나 부동산 가치가 궁금하다고 하네요. 반면 디자이너인 저는 철물점이나 문구점은 어딜 가나 꼭 들러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베를린의 상징적인 컬쳐 플랫폼 쿤스트할레에 도착했습니다. 도시 느낌 물씬 나는 컨테이너!!!!
와 반갑다~ 그런데..
쿤스트할레의 유지가 쉽지 않았나 봅니다. 대안공간은 참 유지가 문제군요. 만감이 교차하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다시 거리를 거닐었습니다. 마침 거리에 플리마켓이 열려 열심히 LP를 살펴봅니다. 너무나 클래식한 판들만 있어 얼른 레코드숍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가게 이름도 없는 특이한 숍을 발견했어요.
오호 러그 숍이네요. 멋집니다. 마음 같아선 몇 장씩 들고 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행 첫날부터 길고 돌돌 말린 러그를 들고 다닐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져 마음을 접었습니다. 한적한 카페에서 잠깐 쉬었다 다시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mtl 공간에서의 음악 컨텐츠들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를린에 가서 음악을 좀 많이 디깅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둘다 음악을 좋아 하기에, 커피와 차를 마시고 여유를 즐기다가도 참새가 방앗간을 쫒듯 자연히 발걸음은 레코드 샵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베를린에 자전거가 주차 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는 듯 합니다.
OYE 레코드점은 판들을 하나하나 들어 볼 수 있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다 들어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모어댄레스 일행과의 스케줄도 있고 전체 일정이 빠듯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의 실험적이고 특이한 음반들이 다양하게 많았지만, mtl에 비치하고 싶었던 컬렉션이 없어 친구에게 따로 구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레코드 샵을 나와 로드숍을 둘러보다가 문이 닫혀 있었던 철물점에 들렀습니다. 외국 여행에서 철물점은 반드시 들리는 이유는 순수하게 공구나 철물 구경이 재미있거든요. 공간에 쓸 부속이 아니더라도 그냥 이것저것 구입하다 보면 저절로 용도가 정해지게 됩니다. 가족들이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고 있어 정기적으로 이것저것 보내주시는데, 독일에서 만든 물건들은 평균적으로 내구성이 좋은 것 같습니다. 여튼 여기서 오래 머물렀던 기억이 나네요. 깔끔만 매장 외부에 그냥 공구가게인가 했는데 안쪽에 들어가 보니..
철물점이 생각보다 꽤 컸는데요. 우앗 @.@ 이게 뭘까요. 한쪽 벽 코너에서 신세계를 발견합니다. 벽면 전체 천장 끝까지 나무로 만든 서랍으로 되어있어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잘 열리지 않는 서랍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금속 공예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신주 소재의 부속품을 좋아합니다. 이것저것 고르기 위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서랍을 쏙쏙 빼내면서 뚜껑을 열 때마다 무언가... 두근두근
소소한 연장이나 철물들도 튼튼하고 디테일들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주 오래된 서랍들을 이 서랍 저 서랍 열어 달라는 요청도 잘 들어주시고, 전구 색깔도 꼼꼼히 체크해주시고, 엄격해 보이는 어르신이 의외로 ^^ 다정하십니다. 맘 편히 조명, 전구, 철물, 부자재들을 이것저것 골라 봅니다.
베를린 거리를 거닐면 나이도 생김새도 다른 건물들과 거리의 낙서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길을 거닐 때마다 발견하는 개성 있는 문짝들. 아무렇게나 붙어 있는 포스터나 스티커들. 거기에 겹겹이 그려진 낙서들의 층위를 바라보면 베를린의 자유로운 영혼들이 느껴집니다. 거리에 스며든 펑크한 감성들을 나도 모르게 기록하게 됩니다.
커피가 아니라면?
요즘 젊은 층 사이에 비거니즘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2019년 트렌드 코리아가 선정한 키워드에 비거니즘(VEGANISM)이 채택되었고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민텔은 올해의 트렌드로 비건과 비거니즘(채식주의)의 확대를 꼽았는데요. 이에 따라 국내 비건과 채식 인구도 150만 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동물 윤리, 생태계 보호, 윤리적 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먹는 것뿐 아니라 옷, 가방, 신발을 살 때에도 동물 가죽이 사용됐는지를 철저히 따지면서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비건(완전 채식주의자)과 채식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어, 이제는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독일은 비거니즘 트렌드의 중심지이자 비건 산업의 선두 국가로 꼽힙니다. 저희가 베를린에 방문했던 당시에도 독일 채식주의자 협회에 따르면 독일 채식주의 인구는 800만 명(2016년)을 넘어섰고 , 유럽 전체의 비건 푸드 시장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36%로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장 구경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아양에게 현지인들이 가는 곳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침 출출하기도 하고 마르크트 할레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대림창고보다 더 큰 오래된 창고 안에서 마치 페스티벌이라도 열린 것처럼 사람들이 북적 북적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장시장 같은 분위기라고 봐야 할까요, 맛있는 음식 냄새로 가득한 시장 안에서 저마다 줄을 서고 음악을 즐기며 시식을 합니다. 우리네 풍류도 만만치는 않다고 봅니다만, 어딜 가나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는 베를리너의 흥겨움은 낯선 땅에서 찾아온 이방인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모어댄레스 비즈니스 컨설팅 단계에서 입지를 한남동으로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객을 위한 장치로 커피 또는 비건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베지푸드를 좋아해서 베를린에 가면 비건 레스토랑이나 숍을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만약 mtl 에서 보난자 커피가 픽업이 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비건 코드를 브랜드 출구 전략으로 클라이언트에게 권유 했을 것입니다.
마르크트 할레에서 파스타와 버거를 섭취한 후 비건 마켓과 티(TEA) 숍에 들렸습니다. 일행들이 건너편 패션 스토어에서 옷을 보는 동안, 평소 차를 즐겨 마시기 때문에 티 컬렉션, 다기 등을 수집하는 즐거움을 최대한 만끽했습니다. 매장에 들어가면 베를린의 스텝분들은 어찌나 밝고 명랑한지 생각보다 다들 친절해서 긴장을 풀게 됩니다. 일본에서 수입한 다기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독특한 하이브리드 블랜딩 차와 설레이게 하는 아름다운 오브제가 많아 무장 해지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녁시간이 되어 음악을 찾아 라운지에 들렀습니다. 정말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호텔로 사용하고 있는 이곳은 편하기도 하고 무드가 참 좋아요. 원래는 이곳에 머물려했지만 예약이 쉽지가 않더군요. 음악과 함께 중정 가든에 흐드러지게 핀 무궁화를 감상하면서 수다를 떨었지요.
편안하게 흐르는 음악이 참 좋습니다. 역시 음악은 사람을 쉴 수 있게 합니다. 코코넛 워터 귀엽지 않나요? 시그니쳐 코코넛 워터 하나로 오래된 호텔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펑키해집니다. 이런 매력으로 하루의 피로와 갈증을 해소하며 칠 아웃을 즐깁니다.
Visual. Art. Fashion. Berlin LIFE .
오늘은 베를린의 패션 중심가 미테 근처를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모어댄레스의 자체 패션 브랜드 스티키쉬(STEEKISH)의 리브랜딩 컨설팅도 겸했기 때문입니다. 마켓 리서치를 파이팅 넘치게 다니기로 했죠. 베를린 시내 전체가 세일 기간인가 봅니다. 곳곳에 세일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매장마다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다양한 로드숍과 브랜드가 곳곳에 어우러져 있는 베를린은 쇼핑하기도 편합니다. 로드에 오래된 건물을 개조하거나 그대로 사용하는 개성 있는 편집샵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부스토어도 들렸습니다. 인더스트리얼 한 공간에 저마다의 Look & Feel을 어필하는 트렌디한 제품들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고, 빈티지한 가구들과 미니멀한 오브제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펑키함을 표출하는 것 같습니다.
패션 경향을 보러 나왔지만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매장을 돌아보며 이 곳에서 조차도 형식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는 거리의 생기와 잠재된 에너지를 느끼게 됩니다. 공간안에 자리잡은 거침 없이 다양하고 유니크한 패션 콜라주들을 살펴보며, “어디나 예술을 위한 공간이고 누구나 베를린에선 아티스트다” 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또 한번베를린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안경점을 지나치다 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저절로 눈길이 가는 정말 거대한 트레일러를 설치했네요. 윤 랩. 연구실이라는 아이덴티티에 부합하는 POWER VMD라고 생각했습니다. 조형물을 보고 있자니 안경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다는 브랜드 철학이 느껴집니다. 쇼윈도 앞에 서니 낮에 들렸던 러프한 로드숍의 잔상과 액티브한 설치물이 겹쳐지며 머릿속이 꽉차는 느낌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녁시간이 되어 라운지에 다시 들렀습니다. 낡은 피아노와 DJing. 음악. 술.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가구들. 아티스틱하지만 캐주얼한 공간. 그루비한 음악.
라운지에서는 로우파이 힙합이 플레이되었습니다. 간간히 기차 지나가는 소리도 납니다. 테크노가 나오기도 하고 엠비언트도 흐르네요. 장르의 구분이 없는 것도 사람을 지루하지 않으면서 편하게 하는군요.
역시 음악이 있으니 분위기가 좋고 대화도 길어집니다. 이 모든 것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무드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또 한 번 칠 아웃으로 베를린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다음날.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을 중점으로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차분한 멋이 넘치는 문구점에 들렀습니다. 주로 일본 문구류와 잡화가 많았습니다. 신주로 만든 조그만 연필깎이와 몇 가지 마음에 드는 것들을 구매하고, mtl에서 판매할 만한 브랜드도 살펴보았습니다. 디자이너로서 흥미로운 시간이었던 거 같습니다.
mtl 한남 내에서 판매할 문구류 샘플 구입 합니다.
와 여기 멋진 곳을 발견 했습니다. 운좋게도 호텔 라운지에서 마음에 들었던 오브제를 판매하는 곳을 우연히 찾아 냈습니다. 매장 운영자 분께 식물을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설명을 자세히 듣고 멋진 프로덕트를 구매 하는 기쁨을 만끽 했습니다.
바우하우스 디자인 가구들이 모여 있는 매장도 방문합니다. 구매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디자이너 가구들이 대부분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더군요.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골목을 걷다 발견한 유니크한 인쇄소, 그리고 다양한 연식의 타자기를 수집하고 판매하는 매장, 타이포를 주제로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는 귀여운 편집숍을 둘러보았습니다.
DO YOU READ ME?
책과 매거진을 통해서 새로운 디자인의 흐름과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외국 여행에서 책방에 들리는 것도 필수 코스 중 하나입니다. 베를린에는 독립 출판물이나 매거진을 판매하는 크고 작은 서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내의 출판물들을 모아 판매하는 이곳은 특히, 책을 구매하면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인 에코백에 넣어주는 서비스가 유명합니다. 풍문으로는 중국 관광객들이 자국에서 고가로 리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획자의 입장에선 씁쓸하긴 하지만 브랜드의 철학이나 가치와 상반하는 이미지 소비에 대한 소비심리의 단면을 베를린에서도 느끼게 되는군요.
어둠이 오고 음악을 들으러 어디론가 향합니다. 오늘은 주말이라 베를린 장벽이 헐리고 고가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는 클럽으로 움직입니다. 입구부터 대기줄이 깁니다. 카터 블라우라는 클럽이에요. 허물어진 장벽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야외데크를 중심으로 스테이지가 다양하게 있고 하우스/ 디스코/ 테크등 장르가 다 달라 지겹지가 않습니다. 마치 어른들을 위한 테마파크에 온 기분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자연히 서브컬처를 즐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저희 만큼이나 에너지 넘치는 베를리너 친구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지칠 줄을 모릅니다. 정제되지 않고 표출하는 언더 그라운드한 바이브가 잠재된 영혼의 에너지를 자극합니다. 음악과 소울. 스테이지를 모어댄레스와 한껏 즐겼습니다.
Sunday. FLEA MARKET.
아침에 일어나 해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베를린은 먹을 것이 특별히 없지만 (과일이 저렴한 편이고 그래서 주로 마트에 들러 과일이나 요거트, 베지푸드를 사 먹었습니다.) 베트남 또는 타이 음식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베트남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면류를 참 애정 하기 때문에 새우 완당면으로 해장을 합니다..
일요일이니 만큼. 로드샵도 문을 거의 닫았을 테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공원과 창고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을 가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홍대 놀이터 시절부터 플리마켓 리얼 덕후로서 기대가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지역의 역사나 전통 개성들이 묻어나는 물건들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플리마켓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놀이터로 느껴집니다. 뭔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고향집에 방문하는 느낌이 듭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랄까요.
사람들이 공원에서 OPEN AIR를 즐깁니다. 아침부터 춤을 추는 이들, 공연을 하는 히피와 아티스트들이 모여 이미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오픈에어를 즐기면서 야외 플리마켓에서 괜찮은 소품이나 가구가 있는지 디깅을 시작했습니다. 풀밭에 휴식을 취하려 누워있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들, 일광욕하는 사람들, 음악을 듣는 이들로 공원의 풍경은 느리고도 빠르게 흘러갑니다.
앗 여기는 큰 창고에서 플리마켓이 열리네요. 몇군데 부스가 눈에 들어 옵니다. 발걸음과 목소리의 피치가 올라갑니다. 필요한 가구와 조명을 구입하며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습니다. 베를린 일정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Bonnaza Coffee. Berlin to Seoul.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확인하고 창 밖의 풍경을 즐기며 조식을 먹습니다. 아쉬만큼 여유를 즐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호텔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갔습니다. 역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 보기로 합니다.
산책 시간은 우리의 무거운 고민과 누적된 생각들을 가볍게 풀어줍니다. 공원 깊숙히 들어가 여유를 즐기며 산뜻한 공기도 마시고 의논도 하면서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아쉬운 만큼 벽화단에 피어있는 작은 식물들이나 건물과 간판 그 옆에 나무들, 도로벽의 그래피티와 거리의 풍경들을 구석구석 더 느끼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에 가볼까 했지만, 그냥 오늘은 좀 쉬기로 했습니다. 이번 베를린 여행에서 전시일정이 없어 가장 아쉬웠습니다. 마켓 리서치를 하다보니 바우하우스 뮤지엄이랑 전시를 계속 뒤로 미루게 되었는데, 벌써 마지막 날이 되었군요.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했지만, 디자인이 하나의 개념에만 국한되는 것을 경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mtl 의 디자인은 다양한 뷰에서 신선하게 접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 더^^ 열린 마인드로 여유를 가지고 다시 거리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더반에 들렸습니다. 바리스타분께 맛있는 원두를 추천해달라고 하니 과일향이 나는 원두를 고르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이미 커피를 마신 느낌이에요. 커피는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두 계산을 하는 동안 베이커리를 좋아 하기에 찬찬히 눈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음료를 주문했더니 찻잔이 심플하고 예쁩니다. 역시 백차를 마시니 정신이 맑아집니다.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 흐르는 BGM 이 좋아 체크해봅니다.
길이 보이는 데로 걷다가 보난자 커피에 발길이 닿았습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말쑥하게 단장한 커피 영웅이 말을 겁니다. 마시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손짓합니다. 바리스타에게 커피와 루이보스티를 주문했습니다. 독특한 커피의 향과 과일향이 나는 티를 음미합니다. 짧은 시간에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피로감이 녹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신선한 커피 향을 맡으니 차분하면서도 밝은 에너지로 시간과 공간의 방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나도 모르게 원두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디카페인을 좋아하는 저조차도, 처음으로 커피의 맛에 깊게 빠져드는 기분이었습니다.
Don't Die Before Trying.
Shwarze Cafe에 들렀습니다. 역시 분위기가 좋습니다. 브런치를 나누며 마지막 날이니 만큼 깊게 고민에 잠깁니다. 항상 여행을 다니면 읽을 꺼리를 에코백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데, 먼 땅을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해 보라고 했던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글귀가 머릿속에 맴돕니다. 기획을 하는 입장에선 항상 전혀 새롭고 신선한 또 다른 무언가를 생각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도 하지만, 다행히 음악 콘텐츠 외에는 사실 아직까지도 무얼 해야 할지 정해진 건 없었습니다. mtl 의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도와 무한한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를린은 누구에게나 영감을 주는 도시 같습니다. 때로는 펑크하게 어떤 구분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오래된 것을 존중하면서 새로움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자유롭게 느껴집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면서 생겨나는 차이들을 존중하는 문화와 정제되지 않은 도시의 매력들이 자연스레 녹아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베를린스러움을 만들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커피를 마시니 문득 베를린이 그리워집니다. 개성있는 사람들. 골목마다 다른 거리의 재미와 펑크함. 매력적인 커피. 서브컬쳐의 자유로움을 서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중한 경험의 순간들을 함께 해준 모어댄레스(mtl)와 여행의 안내자로서 이번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어준 베를리너 친구(단아)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낯선 장소의 아름다움을 찾으러 떠나는
여행에서 정작 찾아낸 것은 나조차도 몰랐던 나일 때
그럴 때 우리는 장소의 수집 욕구를 뛰어넘는
더 깊은 욕망의 차원과 만날 수 있다.
3편, 보난자 커피 컨설팅 이야기가 곧 이어집니다. (아래 링크 박스를 클릭하시면 바로 연결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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