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와 직녀」- 역할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꾼 이들

사회학적 역할, 역할거리, 일탈 개념에 근거하여

by 황보현

https://www.youtube.com/watch?v=ABXTbgo-iTE

참고문헌: 「견우와 직녀」

http://18children.president.pa.go.kr/our_space/fairy_tales.php?srh%5Bcategory%5D=07&srh%5Bpage%5D=17&srh%5Bview_mode%5D=detail&srh%5Bseq%5D=301

1. 일만 하는 일과


일만 했을 뿐인데 하루 일과가 다 지나갑니다. 그것이 돈 버는 일이든 집안일이든 말입니다.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는 똑같은 일이 있을 뿐이네요. 때로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들이 무겁고 벅차게 느껴집니다. 그 무거움을 벗어던지고 좀 더 자유로워지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역할은 무엇인가요?


견우와 직녀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흔히 떠올리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견우와 직녀」는 역할과 일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처럼 그들도 삶의 무거운 역할의 굴레를 견뎌야 했으며, 그 속에서 벗어나 일탈을 지향했습니다. 견우와 직녀의 행동을 사회학적 개념인 역할(Role), 역할 거리(Role distance), 일탈(Deviance)이란 틀에서 바라보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면 일만 하는 일과 속에서 일말의 일탈을 쫓아갈 용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 역할에 충실한 견우와 직녀


남자 주인공 견우와 여자 주인공 직녀는 각자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역할이 있었습니다.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역할이란 '사회구조 속에서의 위치에 수반되는 권리'를 뜻합니다. 견우와 직녀에게는 그들의 역할에 따라 외부로부터 역할기대가 주어졌지요. 역할기대란 '역할에 알맞은 행동과 태도에 대하여 기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역할기대에 부합하여 역할수행을 아주 성실히 하고 있었습니다. 역할수행이란 '기대된 역할을 일정한 상황에서 사람이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견우와 직녀의 역할(Role), 역할기대(Role expectation), 역할수행(Role performance)은 무엇이었을까요?


남자 주인공 '견우(牽牛)'란 이름의 의미는 '소를 끌다'입니다. '끌 견(牽)'과 '소 우(牛)'의 조합입니다. 그의 이름에는 그가 사회로부터 받은 역할이 담겨 있습니다. 견우의 역할은 소를 끌며 밭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견우에게는 그 역할에 부합하는 행동을 매일 성실하게 할 것이 기대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의 개성이나 독특성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단지 그의 역할을 규정할 뿐이지요. 동화 전체를 걸쳐 보더라도, 견우의 성격에 대한 직접적인 진술은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사회는 견우의 개인성에는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소를 끄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만을 기대할 뿐이었지요. 실제로 견우는 무엇을 하다가 우연히 직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을까요? 그는 소를 몰고 지나가다가 그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역할수행을 하던 중 직녀를 처음 본 것이죠. 견우는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소명에 온전히 매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 주인공 '직녀(織女)'란 이름의 의미는 '짜는 여인'입니다. '짤 직(織)'과 '여자 녀(女)'의 조합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곧 그가 사회로부터 받은 역할을 의미합니다. 그녀의 개성을 드러내는 이름이 아닙니다. 직녀의 역할은 베를 짜는 것이었습니다. 직녀에게는 그 역할과 일치하는 행동을 성실하게 할 것이 기대되었습니다. 직녀는 아름답고 착한 공주였다는 진술이 있기는 하지만, 동화 서술에서 초점이 되는 바는 그녀의 베를 짜는 솜씨가 아주 훌륭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의 성격보다는 그녀의 역할이 유의미하지요. 옥황상제가 직녀를 몹시 예뻐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녀의 개인적 성품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역할 수행이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베를 짜는 일을 훌륭하게 잘했지요.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그 부분이 중요했습니다. 직녀는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소명에 매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화 속 견우와 직녀는 공통적으로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들은 독특한 개인성으로 두드러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회는 그들에게 개별성의 발현이 아니라 단지 역할수행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의 이름, 그들에 대한 서술자의 평가, 그들의 행동을 보면 명확하지요. 그저 역할에 충실해야 했을 뿐이며, 실제로 그들은 성인이 된 이후로도 그저 그렇게 역할행동을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혹시 세상 속 우리는 견우나 직녀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아닐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독특한 개인성을 충분히 뽐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개별성의 발현이 아니라 단지 역할수행을 강조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직장에서의 맡은 역할,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에 오로지 매진해야 하지 않나요? 주변의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기대합니다. 혹시 우리는 그렇게 사회적으로 기대받는 역할을 수행하며 긴 세월을 살아왔을까요? 당신도 견우 같은 남성이거나 직녀 같은 여성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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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견우와 직녀의 역할거리


그런데 견우와 직녀는 평생 자신의 역할에만 매진하면서 주어진 이름대로 사는 삶에 반기를 듭니다. 견우와 직녀는 역할거리를 시도합니다. 사회학적 개념인 역할거리란 '사람이 가식적인 역할 수행을 통해서는 얻어질 수 없는 개인의 독특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어진 역할로부터 거리를 두는 시도이지요. 견우와 직녀의 역할 거리는 두 사람이 만난 이후에 시작됩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역할 수행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서,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만나며 사랑을 꽃피웁니다. 견우는 직녀에게 고백한 이후 직녀를 떠올리며 밭일을 소홀히 한 것 같습니다. 직녀는 매일 견우 생각에 빠져 베를 짜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견우와 직녀의 행동은 단지 사랑만을 의미할까요? 둘은 사랑을 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역할거리를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소를 끌고 베를 짜는 것과 같은 반복적이고 가식적인 역할 수행으로는 그들 개인의 독특성을 표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일과는 거리를 두고서, 둘만의 사랑을 쫓으며 각자의 개별성을 처음으로 찾습니다. 그들이 변한 겁니다!


물론 이러한 역할거리 시도는 인물 간의 갈등을 야기합니다. 직녀는 견우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옥황상제에게 요청합니다. 이 순간 직녀는 단지 견우와의 결혼뿐만 아니라 개인의 독특성 실현을 요청한 것이기도 합니다. 결혼 생활을 한다는 것은 베를 짜는 사회적 역할을 덜 수행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지향하는 건 자아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반면 옥황상제는 일을 소홀히 하는 직녀를 괘씸히 여겨 그녀에게 크게 호통을 칩니다. 소명에 충실하지 않는 직녀에게 매우 화가 납니다. 이처럼 옥황상제는 직녀에게 역할수행을 강조했다면, 직녀는 옥황상제에게 자신의 역할거리를 요구한 것이지요. 결국 둘은 갈등을 빚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여태껏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동적으로 수행할 뿐이었을까요? 무거운 역할의 굴레에서 적절히 벗어나기 위해 역할거리를 시도해볼 수 있을까 합니다. 견우와 직녀가 역할거리를 처음으로 시도한 순간에 그들의 개별성이 동화 속에서 꽃 피우기 시작했답니다. 그 순간부터 그들의 직업과 이름보다도 그들이 나누는 관계와 소망이 더 중요해졌지요. 그 순간부터 '견우'와 '직녀'라는 이름에 담긴 직업적 의미는 눈에 띄지 않게 됩니다. 견우와 직녀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에 초점이 가지요. 견우와 직녀를 닮아 너무나 순종적으로 일만 하던 우리가 역할거리를 시도하는 순간, 우리의 개별성이 세상 속에서 꽃 피우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순간에 우리의 직업보다도 우리가 나누는 관계, 소망, 취미, 개성이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역할거리를 시도하는 한 가지 방식은 누군가와 사랑하는 관계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견우와 직녀가 택한 역할거리 방식이지요. 당신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름의 역할거리를 시도해볼 수 있을까요? 다만 그러한 역할거리 시도는 사회와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옥황상제를 닮은 사회는 흔히 우리에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만을 기대하니까요. 우리는 갈등이 완전히 겁이 나서 역할에 순종할 것입니까? 아니면 갈등을 조금은 감수하고 역할에 거리를 둘 것입니까?


4. 견우와 직녀의 일탈 행위


견우와 직녀의 역할거리 시도는 곧 일탈 행위로 이어집니다. 사회학적 개념으로서의 일탈이란, '사회적 규범을 위반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제정된 규칙에 대한 위반을 뜻하는 '범죄'와는 차이가 있지요. 일탈은 범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깐요. 때로 개인이 일탈을 범하면 법적 제재가 잇따를 수 있습니다. 견우와 직녀의 첫 번째 일탈 행위는 그들이 사랑에 빠져서 역할수행을 소홀히 한 것이었습니다. 직녀의 경우 옥황상제로부터 역할을 임명받았을 것입니다. 그런 역할과 거리를 둔 것은 곧 일탈 행위를 의미했습니다. 결국 옥황상제는 일탈을 범한 견우와 직녀에게 법적 제재를 가합니다. 동화 속에서 옥황상제는 사법적 권한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는 일탈을 범한 견우와 직녀를 아주 멀리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일종의 유배형입니다. 법적 권한을 지닌 그는 이 시점에서 추가적인 규범을 제안합니다. 그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 7월 7일에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은하수 때문에 그들은 그마저도 서로 가까이 갈 수 없었지요.


이에 따라 견우와 직녀는 두 번째 일탈 행위를 범합니다. 옥황상제의 규범 의도와는 달리, 다리 역할을 해준 까치와 까마귀의 도움을 받아 은하수를 건너 결국 서로 만난 것입니다. 이 까치와 까마귀들도 견우와 직녀의 일탈 행위에 가담한 셈입니다. 견우와 직녀도 추가적인 일탈을 범하면서까지 그들의 사랑과 만남을 택했지요. 견우와 직녀 및 까치와 까마귀들의 이러한 위법 행위에 대해서 법적 제재가 잇따랐을까요? 다행스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일 년에 한 번 그들만의 소중한 만남을 계속할 수 있었지요. 이 사실을 옥황상제가 몰랐을까요? 아마도 알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도 결국에는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관계와 개별성에 대한 지향을 인정해주고 넘어간 것이 아닐까요?


안타깝지만 역할에 거리를 두는 시도는 때때로 사회의 시선에서 일탈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제재가 가해질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우와 직녀가 택한 길은 우리에게 귀감이 됩니다. 우리도 수동적 역할 수행에서 벗어나 진실한 개별성 추구를 지향할 수 있을까요? 유해한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되지만, 내 삶에 유익한 일탈을 저질러볼 수 있을까요? 사회도 결국 우리의 애틋한 자아 추구를 인정하고 넘어가 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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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할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기


「견우와 직녀」는 가슴 답답한 역할에서 벗어나 가슴 뛰는 일탈을 꿈꾼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단지 흔한 로맨스 이야기가 아닙니다. 견우와 직녀는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역할기대에 따라 역할수행만을 하는 삶을 살았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만나며 역할거리를 시도했고 두 번의 일탈을 저지릅니다. 그렇게 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자신이 아니라 개별성이 있는 자아를 찾아가지요.


오늘날 사회도 동화 속 배경이 되는 세상과 마찬가지로, 우리로 하여금 수동적인 역할수행을 강조합니다. 그런 역할수행 속에서 개인의 개성은 발현되기 어렵습니다. 사회와 가정이 원활히 작동하기 위하여 개인의 성실한 역할수행이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개인의 개성과 자아정체성을 억압하는 면이 있지는 않을까요?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때로 요구됩니다. 내가 속한 가정과 사회는 어떤 곳인 것 같습니까?


역할에 매진하는 일상과 역할에서 벗어나는 일탈 ─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요? 때로는 가슴 답답한 역할에서 벗어나 가슴 뛰는 일탈을 꿈꿀 수 있을까요? 현실과의 조화 속에서, 사회가 원하는 자신이 아니라 개성이 있는 자아를 찾아보는 편은 어떤가요? 바쁜 직업 일과 속에서도 건전한 취미 생활을 즐기거나 유익을 주는 사람과의 교제를 해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꿈꿀 수도 있지요. 우리는 단지 직업인으로서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의 장래희망도 단지 직업을 의미해서는 안 됩니다. 삶에는 일 그 이상의 독특성이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역할과 적절히 거리를 두고서 아름다운 일탈을 꿈꾼 견우와 직녀처럼 말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얼마만큼의 '역할 거리두기'를 준수하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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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고영복, 『사회학사전』, 사회문화연구소, 2000.

- 김춘경 외, 『상담학사전』, 학지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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