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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영 May 15. 2021

하루치의 사랑과 믿음

성실함이라는 무기로


“그 사람 능력 있지”라고 말할 때 성실함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능력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찮은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성실함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실함의 중요성을 유달리 크게 느낀 인생의 영역이 있으니 바로 사랑과 믿음이다. 노력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또는 그렇게 얻어야 더 귀하게 느껴진다는 편견이나 환상이 있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빠져야’하고, 믿음은 저절로 ‘생겨야’하는 어떤 것 아니던가.


노력이 필요한 사랑은 어쩐지 로맨틱하지 않거나 자기 위안에 가깝지 않나 하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믿음도 그렇다. “믿기로 결심하면 믿음이 생긴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걸 믿음이라고 할 수 있나?’, ‘말장난하는 건가’ 싶었다. 사랑과 믿음은 찾아나서거나 결심하는 게 아닌 갑자기 찾아오거나 강렬한 경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 여기던 시절. 이제는 안다. 아니, 지금 내가 아는 사랑과 믿음은 이렇다. 매일 결심하고, 그 결심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성실함이 가장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 나서고 날마다 이뤄내는 게 전부일 수 있다는 생각.  


정지우 작가의 신간 <너는 나의 시절이다>를 읽으며 비슷한 이야기를 발견했다. 사랑 에세이답게 책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사랑과 다정함인데 그가 정의하고 받아들이는 다정함과 사랑의 핵심은 ‘성실함’이다. 작가는 다정함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데에서 나아가 날 때부터 다정한 사람은 없고, 어쩌면 우리는 모든 다정함을 연기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사랑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다. 때때로 느끼는 불쾌한 감정, 답답한 마음, 싫증, 피로감에 대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인가 봐'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정말 사랑이 아니게 되어버린다고 말한다. 달리기가 달리는 동안에만 '달리기'이고, 달리기를 멈춘 상태에서는 달리기가 아니라 그저 멈춤인 것처럼, 애초에 사랑이라는 것이 굉장히 단단하여 훼손할 수 없게 존재하는 실체 따위가 아니라 부단히 말해가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 사랑을 생성하는 주체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달렸다고, 어쩌면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사랑의 전부일지 모른다고 말하는 듯했다.


최근에 쓴 ‘사랑을 결심하는 일’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브런치에 두 개의 짧은 글을 쓰고 얼마 뒤 정지우 작가의 <너는 나의 시절이다>를 보면서 다시 한번 성실함의 중요성을 생각했다. 특별한 일을 찾은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처럼, 어딘가에 있는 완성되고 흠 없는 사랑이 아닌 매일 결심함으로써 되어가는 것.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 받아들였고, 성실함을 무기로 하루치의 사랑, 믿음, 다정함을 구하는 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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