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라 믿었던, 어린 나의 임신 준비 과정
결혼엔 여러 목적이 있다. 나에겐 그중 하나가 바로 임신과 출산이었다. 큰 확신은 없었지만 결혼을 하면 아이가 있기를 소망하는 남편의 가정관에 감화되며, 나 역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결혼 당시 내 나이는 '윤석열 나이' 이전 기준이었기에 33살이었다. 스스로 몸이 노화되고 있음을, 체력이 현저히 떨어져가고 있음을 느끼던 터였다.
신혼을 즐기고 싶다는 남편과 달리, 나는 목적을 빠르게 이루고 싶었다. 해서 결혼과 동시에 임신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출퇴근 왕복 4시간이 넘는 신혼집에서 직장을 다니며 임신 시도를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7년을 다닌 회사고, 나름대로 회사에서의 내 위치와 역할에 자부심이 있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주변에 임신 후 출산휴가를 쓴 동료가 온갖 눈치를 보며 그 시간을 견디는 걸 곁에서 지켜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임신 자체도 힘든데 눈칫밥을 먹으며 마음 쓰면서, 동시에 몸을 혹사하며 임신 준비를 하는 건 내 체력에 맞지 않았다. 물론 할 수만 있다면 일과 임신 둘 다 쟁취하고 싶었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옆자리 임산부 동료가 보여준 현실의 벽은 녹록치 않았다. 온몸으로 부딪혀도 벽은 견고하고 생채기가 나는 것은 나뿐일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며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과감히 일을 그만뒀고, 신혼 3개월쯤 임신 준비를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는 곧바로 우리를 찾아와 주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아주 어린 나이도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소중한 아이가 행여나 잘못될까 나는 걸음 하나도 조심했다. 이처럼 모든 임신 과정은 계획된 것이었다.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에게 전념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일까. 우울이 찾아왔다.
모든 행복엔 대가가 따른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우리는 둘에서 셋이 되었고, 동시에 월급은 반토막이 났다. 매일 바쁘게 움직이며 일을 하던 나는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아는 이도 하나 없는 후미진 동네에서 멍하니 있었다.
"아이를 원한 건 분명 나였는데"
"이 선택에 희생이 따른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나는 힘든 것일까. 인지부조화가 올만큼 상황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 상황을 알고 있는데, 가슴이 따라오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그 후로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임신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뱃속의 아이가 아직 목소리를 듣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아이를 가지고 싶은 확신이 들어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시작해도 힘든게 임신이야. 부디 현명하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