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용기

뜻하지 않던 길이 나의 길

by 하람

모아나 2에서 모아나는 다시 떠나기를 주저한다. 1편에서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호기로웠던 그녀가 오히려 2편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이 이상했다. 사실 그녀는 다시 떠나기가 무서웠던 거다. 그냥 시작은 할 수 있다.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그 고생과 역경을 알기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거다.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사실 내 앞에 '다시'라는 키워드를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제대로 시작해 본 적은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터 준비 땡! 하고 달린 지 모르겠지만 걷다 뛰다 하며 다리가 퉁퉁 붓고 오금이 저려오는 순간에도 주저앉지 못하고 나아간다.

삶은 늘 지치고 버거운 순간이 온다. 그 순간 다시 한번 해볼 수 있는 용기, 그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아닐까?


모아나 2에는 'get lost'라는 노래가 나온다. 길을 헤매야 진정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모순같이 들리는 이 가사가 유독 내 마음에 와 박혔다. 나는 늘 정도를 찾고 길을 똑바로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내 의지와 다른 일이 나를 흔들어 놓을 때 그 상황에 압도돼 더 힘들어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삶이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왜 이리 힘들까? 생각해 보면 살면서 내 뜻대로 됐던 적이 없다. 예체능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원하는 꿈을 이루지도 못했다. 그 모든 뜻밖의 길 위해 내가 서있다. 지금의 내가 완성됐다. 무수한 실패와 삶의 흐름 속에 탄생한 내 모습이다.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워 내가 그리 미웠을까?


비교하는 못난 마음이 자라고 욕심 껏 삶이 흘러가지 않아 화가 솟고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침 이번 달 내 생일을 앞두고 나 역시 하나도 기쁘지 않았는데 소정쌤 글처럼 내가 '잘' 하고 있던 것이 아닌

그냥 하고 있는 걸 떠올려봐야겠다.


1.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

2. 끊임없이 배우면서 성장하고자 한다.

3. 다양한 독서 모임을 하며 생각의 크기를 키우고 있다.

4. 지치고 힘들어도 일할 때만큼은 좋은 에너지를 쏟으려고 노력한다.

5. 집안을 정리 정돈하고 내 주변을 잘 가꾸고 있다.

6. 내가 좋아하는 문화생활을 틈틈이 즐겨준다.

7.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8. 가족의 일을 신경 쓰며 장녀 노릇을 한다.

9. 먹는 걸 좋아해서 마음껏 먹는다.

10. 자연을 느끼려고 한다.


주변에서 보면 참 이상할 정도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상담 선생님이 '본인을 사랑하기는 해요?'라고 물어볼 정도다. 왜 그럴까? 사실 그렇게 못난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다른 사람의 강점이 잘 보이는 것만큼

내 안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게 잘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주변에서 아무리 인정해 줘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면 보잘것없어 보이고 위축되게 된다. 내가 만들어놓은 이상을 걷어내고 그 안에 존재 자체로 빛나는 나를

마주 봐줘야지. 눈부시고 낯설 수 있지만 자연은 자연인 것처럼. 나는 나인 상태로 그렇게 존재하고 싶다.

삶에 폭풍우가 치고 가만히 있는 땅이 흔들려도 '되어야 할 때로 될 거야' 믿는 것처럼 그냥 좋고 싫음 없이 사는 것. 나로 만족하며 감사하고 사는 그 삶을 향해 나는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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