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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Aug 12. 2024

마라닉 페이스



 


이틀에 한번씩 3마일씩 뛴다. 달리기가 취미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나에게는 이정도가 적당하다. 지치지 않고 일정한 호흡으로 즐겁게 달릴 수 있는 나만의 거리와 시간을 찾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는 매일 수십 마일을 달려야 러너답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대회 메달 몇 개쯤은 갖고 있어야 진정한 러너라고 말한다. 하지만 달려본 사람은 안다. 기록과 상관없이 일상에서 숨 쉬듯이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진정 해피 러너이다. 


바야흐로 달리기 전성시대이다. 연예인들이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는 영상이 나온 이후로 유행처럼 번졌다.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에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정작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막막해한다. 무작정 해봤다가 괜히 잘못된 자세가 굳어져 다칠까 두렵기도 하다. 달리기 길라잡이 <마라닉 페이스>를 참고해보자.     


2013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이재진 작가로 마라톤 전도사이다. 매일 10km를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고 있는 그는 러닝 유튜브 채널 '마라닉 TV'를 운영하며 행복한 달리기를 전파하고 있다. 속도보다는 명확한 방향을 우선시하는 달리기, 내 몸에 맞춘 달리기 방법인인 ‘마라닉 페이스’로 달려볼 것을 권한다. 마라닉은 마라톤과 피크닉을 합친 말이다. 


진짜 나답게 살 수 있게 된 여정을 풀어놓은 이 책은 단순히 달리기 그 자체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달리기로써 달라진 삶에 대한 증언이자 제안이다. 그는 초보시절 마라톤을 소풍처럼 하면서 멈춰서 사진도 찍고 힘들면 걷기도 했다고 한다. 가방에 김밥과 음료, 맥주 같은 걸 사서 들고 뛰다가 경치 좋은 곳에 앉아서 먹으면서 운동도, 힐링도, 친목 도모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 달리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놀라웠다. '달렸다'라고는 하지만, 중간 중간 시시덕거리는 시간이 더 많았기에 초보인 그도 부담 없이 함께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달린 시간을 다 합쳐도 30분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유튜브를 운영하기 전에는 17년 동안 방송사 PD로 근무했다. 영상 콘텐츠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픈 바람에서였다. 일은 재미있었지만 PD시절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다. 만들고 싶은 콘텐츠와 영향력 있는 콘텐츠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다. 성과에 대한 압박, 다른 유능한 PD들에게 느끼는 열등감에 괴로웠다. 스스로 PD로서의 자질을 의심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풀었다. 그러다 퇴근길에 버스를 탄 순간 갑자기 쓰러져 기억을 잃었다. 급성 위경련이었다. 이미 여러 번 응급실에 실려온 전적이 있기에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이대로는 죽겠다는 생각이 들자 회사를 박차고 나갈 용기가 생겼다. 
 

달리기? 그건 얼마든지 내 힘으로 해볼 수 있는 거잖아? 매일 직장에서 침대에서 쿵쾅대는 심장 소리에 가슴 조이며 살아갈 바에는 내가 스스로 심장을 뛰어보게 해보자. 그렇게 나의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p. - 19 


달리는 첫날은 어색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어정쩡한 폼에, 걷는 건지 달리는 건지 모를 속도를 보고 비웃는 것 같았다. 저 멀리서 멋진 자세로 달려오는 러너가 보이면 자기도 모르게 발이 멈춰졌다. 그러곤 산책 나온 사람처럼 어기적거리며 걷다가 그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그때 남을 신경 쓰지 않는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PD 생활을 청산하고 콘텐츠 외주 제작 사업을 거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러닝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잘 달리는 기술 보다는 잘 달리기 위한 마인드 셋을 전하고 있다. 꾸준히 달리는 삶을 지키며 지난 4월에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다. 


속도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면 놀랍게도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뀐다. 아주 천천히 원하는 것을 이루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당장 배에 식스 팩이 생기지는 않는다. 모든 일이 그렇듯 달리기에도 왕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몸은 정직해서 꾸준히 하면 반드시 응답을 한다. 적어도 한 달 안에 출렁이는 뱃살 정도는 없어질 것이다.  


달리면서 인생을 배운 이재진 작가는 말한다. 지금 내가 하는 결심들이 10년 후의 나를 결정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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