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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모양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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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갈 일이 더 잦은 나이가 됐다. 주변에서 친구 부모님 부고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내 부모의 마지막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지난 주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석원 작가의 <슬픔의 모양>은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시작한다. 평범하게 흘러가던 가족의 일상은 병간호를 거치며 점차 변한다. 40대 중반의 작가는 더함 덜함의 감상 없이, 중년의 자식이라면 대부분 느낄 수밖에 없는 부모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내 속을 꺼내어 대신 말해준 것 같아 시원하기도 하다.


석원은 매일 밤 부모님이 살았던 아파트를 찾아가 불 꺼진 빈방을 올려다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끼곤 했었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된다. 석원뿐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두 누나까지, 온 가족의 시간이 각자 다르게 흐르기 시작한다.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는 긴 병간호와 조금씩 예민해지는 가족들 그리고 언젠가 홀로 남겨질 자신의 시간을 이석원 작가 특유의 솔직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다정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없던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정한 방식으로 가족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아픈 아버지 대신 누나가 가족의 리더가 됐다.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든 병원에서의 비참한 모습이 아닌 평범한 일상 안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했던 석원은 갈등의 중심이 된다.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가자', '집으로 모셔오자'는 대립이다. 그 와중에도 가족은 항상 곁에 있었다.


석원에게 가족이란 늘 행복한 지옥이거나 지옥 같은 천국 둘 중 하나였다. 그가 아는 한 한 번도 중간은 없었다. 석원은 힘들고 버겁지만 절대 미워할 수만은 없는 존재가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별이라는 슬픔의 순간 대신, 그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사이에 존재하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병환은 석원의 가족들 각자 깊은 내면의 상처와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됐다. 엄격했던 아버지와의 관계, 어머니와의 시간, 그리고 혼자가 될 미래의 공허함까지, 병상 앞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마치 탐사 보도 기사를 쓰는 기자처럼 가족 곁에서 관찰하고, 대화하며 글을 썼다.


슬픔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다. 가족의 복잡한 사랑과 일상의 의미를 재조명하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먼 곳에서는 슬픈 것 같지만, 가까이서는 희극처럼 보이는 일상의 조각들이 모여 슬픔의 모양을 이루는 여정이다. 저마다 슬픔의 모양은 다를 테다. 그것을 확인할 때는 아마도 사랑하는 존재를 완전히 잃고 난 뒤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래서 더욱 모른 척하고 싶었던 슬픔의 모양을 덤덤하게 곱씹게 된다.

부모는 언제나 우리에게 두 가지 방식으로 교훈을 준다. 나는 저렇게 살아야지.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 p.188


이석원 작가는 밴드 언니네 이발관으로 활동한 음악가이자 에세이 작가다. 처음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노래보다 책이 먼저였다. <보통의 존재>가 주는 날것의 매력을 아직도 기억한다. 경계성 인격 장애와 우울증으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었고, 결혼 6년 만에 이혼했다. 온 가족이 정신 병력을 갖고 있고, 그의 형제 넷 중 셋이 자살시도를 했다. 게다가 궤양성 대장염을 앓고 있어 고기는커녕 김치조차 먹을 수 없게 된 남자다. 그의 인생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지만 그가 쓴 일기는 묘하게도 구석구석 공감 투성이었다. 서른여덟이 되던 해, 사랑과 건강을 한꺼번에 잃고 비로소 삶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다.


다음 책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는 서툴렀던 사랑 이야기가, <2인조>에선 일상이 무너져버린 그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 보낸 1년간의 기록이 있다. 그래서 마치 내가 작가와 오랜 친구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번 책도 내 부모를 잃은 것처럼 가슴 아팠다.


<슬픔의 모양>은 그동안의 책과 결이 다르다. 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던 작가가 40대 중반이 되어 들려주는 가족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은 슬픔을 거대한 사건의 결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틈, 가족을 돌보는 손의 떨림, 병실에 스며든 냄새와 같은 아주 구체적이고도 사소한 감각들을 통해 슬픔이 어떻게 형태를 얻는지 보여준다.


슬픔은 극복해야 할 무언가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슬픔을 들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생활 속에서 그 모양을 알아보고, 다루고, 인정하면서 익숙해진다. 이 책은 아픈 책이지만 동시에 다정한 책이다. 아픔을 없애주는 대신, 아픔과 함께 좀 더 덜 고통스럽게 서 있을 수 있는 자세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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