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Gun Monkeys>. 짧고 강렬한 단어가 어쩐지 우스꽝스럽다. '총을 든 원숭이들'이라니. 사방에 총을 쏘며 뛰쳐다니는 원숭이 무리를 상상하니 한 편의 통쾌한 액션활극이 떠올랐다. 그렇게 홀린 듯이 책장을 넘기다가 이 표현이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범죄 세계의 냉혹한 은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gun monkey는 남의 지시를 수행하는 행동대원, 졸개를 비하하는 영어 농담이었다. 훈련된 동물처럼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냉소적 표현이다. 총을 쥐고 있지만 총알의 방향과 시점은 자기 뜻이 아니라 윗선이 정해준다. 결국 제목 속 monkey는 주인공 찰리 스위프트의 자기 비하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빅터 기슐러의 데뷔 소설 <gun monkeys> 서사의 뼈대는 단순하다. 충성심 강한 킬러 찰리 스위프트는 올랜도 지역 조직의 오른팔, 즉 무자비한 집행자이자 해결사 역할을 하는 건 몽키이다. 조직 내 배신자를 처리한 후, 찰리는 경쟁 조직 무리들이 몰려든 상황 속에서 돈 가방을 회수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고, 그는 엉뚱한 사람들을 쏴버리며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FBI가 모습을 드러내고, 조직원들이 하나둘 사라지거나 죽으며 찰리는 생존과 충성을 동시에 지키며 혼란 속에서 싸움을 이어간다. 마치 타란티노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속도감과 과장된 현실감이 매력적이다.
조직 내부의 암투, 잘못된 표적, FBI의 개입, 그리고 급속도로 무너져 가는 질서. 그러나 이 직선적인 플롯 속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이다. 기슐러 작가는 살인과 폭력을 단순히 비장하게 그리지 않는다. 대신 찰리의 내면 독백을 통해 독자에게 ‘웃어도 되는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장르문학, 특히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틀을 교란시키는 유머와 자기 패러디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주인공 찰리의 내면 독백이다. 죽음과 폭력이 일상인 세계에서도 그는 씁쓸한 농담을 잃지 않는다. 총성과 피가 튀는 장면들 속에 찰리는 "오늘은 이렇게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투의 농담을 태연히 흘린다. 살인을 하면서도 덕트 테이프의 만능성에 대해 설파한다. “You can do abso-f***ing-lutely anything with duct tape.” 덕트 테이프 한 줄로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 그의 발언은 생존의 도구와 살인의 도구가 동일한 생활 감각 속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살한 뒤에도 커피 맛을 평가하고, 코트 안에 총을 쑤셔 넣으며 “My coat was full of guns.”라고 무심하게 중얼거린다. 총으로 가득 찬 코트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는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폭력이 일상화된 세계의 공포와 웃음이 동시에 담겨 있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개 과묵하거나 냉정하다. 그러나 찰리는 피와 살점, 파괴된 도시를 배경으로 장황하게 농담을 던진다. 그의 농담은 웃기지만, 웃음이 끝나면 씁쓸함이 밀려온다. 찰리는 자신이 속한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 부조리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농담의 화자가 된다. 그의 유머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자신이 ‘원숭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비참함을 웃음으로 견디는 방어기제였다. 결국 세상은 정의로운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부패했고, 아름다운 듯 보여도 얼룩져있다는 모순을 꼬집는 듯하다.
작품의 대사와 상황은 자주 아이러니하게 배치된다. 사람을 죽인 직후의 가벼운 식사, 무너진 건물 앞에서의 하찮은 연애 잡담,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떨어지지 않는 유머. 이는 폭력의 비극성을 희화화함으로써, 오히려 현실 속 폭력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소설이 단순히 범죄 액션에 머무르지 않고, ‘충성심’이라는 고전적인 가치가 끊임없이 시험받는 구조도 흥미롭다. 조직과 동료에 대한 의리, 자기 생존을 위한 냉정한 선택 사이에서 찰리는 끝없이 줄타기를 한다. 이 딜레마가 작품에 무게를 더해주며, 독자가 단순한 총격전 이상의 의미를 찾게 만든다.
<Gun Monkeys>는 범죄소설의 서사적 쾌감을 제공하면서 웃음과 잔혹함이 뒤섞인 인간사 민낯을 탐구한다. 매 장면마다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그 웃음이 나 자기 자신을 향한 조롱일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자각에 빠진다. 웃기지만 웃을 수 없고, 피비린내가 나지만 이상하게도 생기 넘치는 이 감각이야말로 빅터 기슐러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치명적인 농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