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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걸크업 Jun 02. 2021

지친 나를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없더라도

산티아고 순례길 Day 12 (나헤라➝씨루에냐)

아침 7시.

오렌지 주스와 티, 토스트가 조식으로 나왔다.

알베르게에 사는 고양이 :)
내 허벅지 위에 올라와 그르릉 거리더니 내려가라니까 또 말 잘 듣고 내려가심
ㅋㅋㅋㅋ귀여워라

오늘도 8시에 느지막이 출발했다.

오늘은 걷는 길에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킬레스건이 아파서 혼자 절뚝이며 지금 나는 여기에 왜 있는 것인가. 외롭다.
이런저런 마이너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데 손을 잡고 걸어가는 커플이 너무 예뻐 보였다.

서로 같은 길을 걸어가면서 응원해주는 상대가 있다는 것에 부러움이 올라왔다.

이제는 며칠째 계속 같은 풍경을 보며 그저 평지만 내리 걷고 있으려니 지겹다는 감정마저 올라왔다.
생각마저 귀찮아진 기분이랄까.

숫자도 이런 것만 보이기 시작 ㅋㅋㅋㅋ

내 마음인가.

날씨도 우중충하고 사진을 찍어도 안 예쁘고 마음이 계속해서 마이너한 감정에 빠져서는 잘 올라오지를 않네.

힘들고 지치고. 

아직도 이 여정길이 한 달이나 남았다니. 지져쓰.

그렇게 걷고 있는데, 어느 노부부가 보인다.

할아버지께서 노래를 부르시면서 경쾌한 발걸음으로 랄랄라~ 하고는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격려해주신다. 할머니가 깔깔 거리며 웃으셨고, 그 뒷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미소가 지어진다.


손을 잡고 걸어가던 청춘 커플.

춤을 추며 격려해주던 노부부.

서로만의 방법으로 이 여정길을 응원하며 함께 걸어가고 있구나.


커플이 부러웠다기보다 지친 나를 위해 응원해주는 것이 부러웠던 거다. 누군가 응원해준다면 나도 좀 더 힘이 날 텐데 싶어서.


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 내가 나를 위해 응원을 해주면 되잖아. 왜 타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워만 하고 있대.


이렇게 꿋꿋하고 씩씩하게 내딛고 있는 너를 응원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오늘도 응원해. 힘내자.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에 도착했다. 발목이 아픈 관계로 오늘도 조금만 걷기로 했다.

이제는 마을도 정말 다 비슷비슷해서, 왜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을까. 차라리 들쭉날쭉 다 다르게 생겼다면 훨씬 더 예쁘고 개성 있을 텐데. 괜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알베르게 도착.

빅토리아 알베르게.


오늘 하루도 쉬어가는 타임으로, 저녁이랑 조식까지 다 시버렸다. 총 24유로. 

오늘은 알베르게에서 나오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정말 하루 종일 숙소에만 있었다.

오늘도 설마 숙소에 나 혼자인가 싶었는데 독일인 2명이 오후 늦게 들어왔다. 며칠 전에도 몇 번 만났던 사이였고, 서로 반가워함.


7시에 저녁을 먹으러 내려가니 2인실에 따로 묵고 있는 미국인 2분도 만다. 총 넷이서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독일인들은 아나와 엘리자베스였고, 미국인들은 제니퍼와 르네. 네 분 다 중년 여성들이었는데, 솔직히 말은 하나도 안 통지만 꽤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다시 저녁을 마치고 침대방으로 올라오니
밖에 천둥번개 치면서 비가 마구 옴ㅋㅋㅋㅋ 내일은 비를 맞고 다니려나 싶은 생각에 마음을 좀 비본다.


2~3일 동안 괜히 지치는 마음에 힘이 안 났음.
걸으면서 내면 탐구하는 것도 의욕이 안 생기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서 어서 숙소 도착해서 쉬고 싶고,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40일 여정 동안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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