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은 말이 통하는 이민
화엄사 IC가 다가오면 멀리 지리산이 보이고, 막힌 곳 하나 없는 분지 구례가 눈에 들어온다. 답답했던 속이 뚫리듯 가슴이 시원해지는 풍경에 저절로 설렌다. ‘매일 이런 곳에서 살면 자연을 닮아가며 살 수 있을까?’
본격적인 귀촌준비로 2주에 한번 구례 지리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멀게 느껴졌지만 반복해서 다니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고, 다닐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시에서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양하지 않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비슷한 일을 하고, 같은 아파트 주민들이나 성당 교인들도 대부분 비슷한 연봉을 가진 비슷한 생활수준으로 사는 사람들이 다. 도시는 사회생활 속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선을 넘지 않는 생활패턴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서로의 바닥을 보는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지역에서의 만남은 달랐다. 사는 장소도, 하는 일도, 지리산 학교를 찾아 모이는 이유도 다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 단 하나 언젠가는 지리산 아래에서 살고 싶다는 목적만 같았다.
지리산 학교 구례 곡성
지리산 학교를 이끌고 가는 분들은 5-10년 정도 먼저 내려와 자리를 잡고 있는 귀촌 선배들이었다. 그들 역시 지리산 아래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만 같았지만 각자 살아온 방식도, 정착해서 살고 있는 방법도 모두 달랐다.
“왜 내려오려고?”
도사같이 생긴 국선도 도장을 운영하고 계셨던 대은 형님의 첫 질문이었다.
“도시를 떠나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에서 살고 싶어서요.”
“사람들은 경치 좋은 곳에서 느긋하게 살고 싶다고 내려오지만, 경치는 매일 보다 보면 나중에 쳐다보지도 않아. 펜대 굴리다 내려오는 사람들은 할 일이 별로 없고!”
“대신 몸으로 살겠다고 생각하면 할 일은 많지!”
호기롭게 내려와 집 하나 짓고, 뭘 할까 기웃거리다가 가진 돈 다 쓰고 버티지 못해 다시 도시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때도 지금도 적지 않아하신 염려의 말씀이었다.
“그럼 내려올만하겠어요. 저희는 딱 몸으로 사는 사람들이라!”
“흐흐흐, 그러냐! 자주 보겠네!”
그렇게 구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첫 인연을 만들어 구례 정착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자리를 잡고 있는 귀촌 선배들이었다. 그들 역시 지리산 아래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만 같았지만 각자 살아온 방식도, 정착해서 살고 있는 방법도 모두 달랐다.
그렇게 구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첫 인연을 만들어 구례 정착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귀촌은 말이 통하는 이민
처음 맞닥뜨린 난관은 살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구례읍이나 면에도 부동산중개소가 있지만 2013년에는 부동산중개소보다는 마을 이장님이나 지인들에게 소개를 통해 집이 거래되던 시기라 구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중요했다. 3-4개월을 다녀도 집을 구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우리처럼 빈집을 찾으러 다니는 도시 사람들이 지리산 주변에 많았고, 섣불리 집을 내주었다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도시사람들’에 대한 반감도 꽤 있어서 집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손님 같은 도시사람들에 대한 거북함을 들어내기도 했었다.
“2주에 한 번씩 손님처럼 다녀가면 집을 찾기가 쉽지가 않아요! 가을, 겨울에는 펜션에 빈방을 월방으로 내놓는 집들이 있으니 월방을 빌려서 내려와서 집을 찾는 게 나을 거야!”
아!......... 귀촌은 말 통하는 이민이구나…..
남편은 화개에 있는 펜션에 한 달 월방을 구해서 본격적으로 방을 구하기 시작했다. 살고 있던 아파트는 매매보다는 임대가 쉬워 전세로 내놓았는데, 살 집을 미처 구하지도 못한 채 살고 있는 아파트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선택을 했던 거 같다.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지 정착하지 못했다면 참 곤란한 상황이 됐을 거 같다.
시골에 살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저 시골집이면 어디든 좋았지만 남편은 구체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겨울철 가장 늦게 해가 지는 동네, 마을과는 많이 떨어져 있지 않은 집, 바람골이 아닌 집…….
도시에서는 전철역과 버스 정류장이 가깝고, 주변에 대형 마트가 있는 곳이 좋은 곳이지만 시골은 달랐다. 모든 조건이 나무와 꽃이 잘 자라는 장소가 사람이 살기 좋은 장소였다.
임시거처
그렇게 한 달…..
겨우 얻은 집은 구례읍에 작은 방 한 칸. 주인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 남은 방 하나에 부엌과 화장실은 증축해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에 내놓은 셋방이었다. 이 방에 장점이라면 문을 열면 지리산 노고단이 보인다는 점!
누렇게 변하고 시골집의 쾌쾌한 냄새도 남아있는 방을 그냥 들어와 살기는 자신이 없었다. 얼마나 살지 알 수 없는 집이라 도배장판 대신 페인트칠과 겨울 시골집에 까는 얇은 매트로 어설픈 이사준비를 했다.
어두운 형광등 아래에서 남편과 말없이 페인트칠을 하다 눈이 마주치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히히히 이거 맞는 거지?”
하지만 혼자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망해서 내려오는 거였다면 정말 비참하고 막막했겠다. 내려와서 정책 못하면 올라가게 되면 어쩌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이길 만큼의 절실함이 무엇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하기 어려운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의 선택과 도전이 없었다면 아쉬움이 가득한 도시의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TIP) 요즘엔 각 지자체마다 체류형 귀농귀촌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해 12월~1,2월 모집해서 선발하고 3월부터 입주 12월까지 저렴하게 체류형 센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귀농귀촌을 경험하고 정착가능성을 찾아보기 좋은 기회죠!
지자체마다 운영시기가 다르니 연말쯤에 알아보시면 좋습니다. 청년들에게 따로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는 지자체도 있어요.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집들은 농촌유학도 좋은 기회입니다. 체류비를 지원받으며 머물수도 있고
정착을 위해 미리 경험 차 아이들과 함께 내려와 가족이 정착가능한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실패 확률을 줄이는 방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