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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 여기면 살 수 있을 거 같아!

본격적인 귀촌준비

“여기면 살 수 있을 거 같아!”

섬진강을 따라 걷고 머무는 동안 귀촌에 부정적이었던 남편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귀촌을 시작한 순간이다. 하지만 삶의 자리를 바꾸는 일을 여행지를 선택하듯 할 수는 없었다. 지역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마침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소속의 수사님이 수도원을 짓기 위해 악양에 머무르고 계셔서 주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농사를 지으려면 자리를 잡는 데는 10년 정도 걸린다는 생각을 해야 해요!”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아는 농부의 아들인 남편은 처음부터 농사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촌 귀농이 막연한 낭만으로 시작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 좀 더 진지하게 돌아볼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시를 떠나고 싶다고, 여행을 다니다 맘에 들었다고 마냥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전라도 사람이랑 경상도 사람이랑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요. 어차피 분쟁이 생기면 모두 들어온 사람은 ‘외짓것’이 되지만 그런 소소한 것까지 고민해야 할 거예요.”

하시면서 여행 겸 여기저기 돌아보며 어디가 좋을지 살펴보라는 제안을 하셨다. 출근을 할 것도 아니니 이번 기회에 여행 겸 귀촌을 위한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여기서 산다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마을을 돌아보는 것은 확실히 보는 방법이 달랐다.

어디서 살아야 할까?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은 늘 나이가 들면 바닷가에서 살면서 낚시 관련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남편이 선택한 장소는 여수, 순천, 남해, 고흥, 수사님이 추천하신 부안이었다.

순천은 이미 도시화가 되어 도시에서 도시로 움직이기는 싫었다. 아파트가 많고 차가 많은 곳은 너무 오랫동안 살아 매력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순천이 도농지역이라 시내는 복잡해도 농촌지역은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여행자에게는 그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없었다.


여수는 바다와 인접해서인지 여름철의 습도가 너무 높았다. 특히 습도에 약해 여름 나기가 쉽지 않은 나에게 바다에서 밀려오는 습도는 여행자로도 힘이 들었다.


남해는 2010년 이후 TV에 유명인이 귀촌해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개발이 시작되고 있었다. 바닷가는 습도가 높아 섬 안쪽 금산 쪽을 돌았다. 보통 큰 섬들은 바닷가와 산이 있는 안쪽의 환경이 다르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제주도 중산간에 올라도 습도에 힘이 들었던 것처럼 남해도 다르지 않았다.


고흥도 바닷가라 습도는 높았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전통장이나 느긋한 마을의 모습이 계절마다 찾아와 가능성을 보고 싶은 곳이었다. 지금까지도 고흥은 땅값도 예전의 모습도 그대로인 곳이다.


바닷가를 제외하면서 부안은 하루 머물러 채석강과 변산반도를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습에 약한 나와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이 만족할 수 있는 장소는 여전히 섬진강과 지리산이 있는 하동과 구례였다. 산이 있어 습도는 낮고, 1시간에서 1시간 반이면 남해, 고흥, 진주까지 남해안 바다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장소가 하동과 구례였다.

평소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지는 않아도 남편과 나는 진보적인 정치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도시는 특별히 정치색으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시골은 달랐다. 공동체 전부가 비슷한 정치색을 가지고 있어서 선거철이면 구례는 파란색, 화개와 하동은 빨간색 플래카드가 도배를 하고 있었던 시기 었다. 하동에 살던 어느 지인이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속이 상하고 동네 사람들이 답답해 일주일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얘기를 술자리 안주거리로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여행자가 아니라면 정치색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은 도시보다 사고가 유연하지 않다. 좋게 말하면 공동체의식이 강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직된 조직이다. 그 부분은 개인이 맞닥뜨려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귀농, 귀촌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쉽게 텃세가 심해 정착을 못했다고 하는 말들의 내면은 지역의 공동체 안에 들어가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돌아봐도 우리에게는 구례와 하동이 최종 선택지였고, 우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지금은 귀농귀촌센터에서 1년 정도 저렴하게 숙소도 제공해 주고, 교육도 진행을 하지만 2013년에는 개인이 찾아야만 했다. 마침 구례에 지리산 학교가 진행되고 있어서 우리 부부는 산약초반에 등록을 하고 2주에 1번씩 정기적으로 구례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구례라는 곳에서, 여기면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막연한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첫발을 내딛뎠다.

다음은 지리산 학교를 다니며 귀촌을 준비하던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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