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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 도시를 떠나고 싶어

나의 속도로 살고 싶어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나 사표를 쓰고 싶어, 내가 일 그만두는 거 어떻게 생각해?”

밥을 먹다 남편이 불쑥 물었다.

결혼 전부터 남편이 전업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나는 큰 고민 없이 답을 했다.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 우리 두 사람 먹고사는데 문제가 있겠어? 뭐라도 하면서 살면 되지!”

결혼하고 10여 년 동안 전업을 꿈꾸면서도 큰 변화 없이 성실하게 직장을 다녔던 남편, 게다가 큰 현장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그냥 지나가는 말이려니 했다.

“이번 달까지 근무하기로 했어!”

십수 년을 고민하면서도 퇴사를 못하던 남편은 그렇게 별다른 퇴직 준비도 없이 퇴사를 했다. 마지막 출근을 하던 날 저녁 소소하게 둘만의 축하파티를 하며 거나하게 취한 남편이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몇 년 더 이 일을 한다고 해도 내 인생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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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주변에서 인정하는 성실한 사람이다. 아침 5시 반이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6시 전에 출근을 해서 7시면 돌아오는 정해진 패턴을 가지고 사는 사람. 건설현장의 전기 파트 소장으로 다른 Part와 조율을 하고 일정에 맞춰 인력을 배치하고 회사와 현장 사이의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하는 스트레스 많은 일을 오랫동안 묵묵히 해왔다. 쉬는 날에는 성당에서 봉사를 하고, 주로 성당 형님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나지 않은 40대 후반의 직장인이었다.

열대어 키우기. 수족관 안에 수초와 물고기를 키우고 관리하는 것이 취미인 정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결혼을 하고 몸이 아파 수술을 하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 공방을 하고 있었다. 늘 손으로 하는 작업을 좋아하던 터에 직장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작업도 하면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전업주부일 때조차 출근하는 사람 못지않게 루틴을 가지고 생활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간과 정성으로 작업을 하는 핸드메이더에게 도시의 시간은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큰 변화를 선택하게 되는 순간은 순하게 지나가던 일상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된다. 남편에게는 건축주의 무례함이 무던한 그의 마음에 돌을 던졌던 것 같았다. 어느 대학 법인의 꽤 높으신 분이 회의 때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육두문자와 무뢰한 말투를 2,3년의 현장 진행시간 동안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는 건 몇 년이 지나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노가다 판이라고 하는 건축현장에서 거친 사람들과도 그럭저럭 잘 버텨내던 사람이 버텨내지 못하고 손을 들 정도면 그 회의 시간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이 갔다.


사표를 내고 남편은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밀린 잠을 자고, 심심하면 TV를 보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더니

“허리 아파서 더는 못 누워 있겠다!”

우리 부부의 귀촌은 이렇게 시작됐다. 각자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하고 정리했다. 생존비용이 높은 도시를 떠나 적게 벌고 남은 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 싶다는 결론을 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시를 떠나기로 결정했으니 어디로 갈지를 결정해야 했다.

첫 번째 장소는 마음에 꿈꿨던 섬진강이 있는 하동 악양을 시작으로 남해, 사천, 여수, 고흥, 부안까지.

다시 출발할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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