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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 생존형 집 고치기

로망은 접어주고 생존형 시골집으로 수리했습니다

귀촌 첫해를 보내고 봄이 왔을 때, 우리 부부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집을 고치는 일이었다. 시골집에서의 첫겨울은 상상 이상이었고, 혹독한 추위를 온몸으로 겪고 나니 더 이상 ‘시골집의 로망’은 무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망과 생존의 기로에서, 우리는 단호하게 생존을 선택했다.


꿈꾸던 시골집과 현실 사이


귀촌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시골집에 대한 꿈은 선명했다.


석가래가 훤히 드러난 천장, 볕 좋은 대청마루에 누워 마당을 즐기는 여유. 마당은 푸른 잔디를 깔고, 작은 텃밭에는 상추와 고추, 가지를 심고, 식사 준비를 할 때면 마당에서 그때그때 신선한 텃밭 채소를 채취하는 꿈.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에는 따뜻한 구들을 놓아 아랫목에서 등을 지지는 안온함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찬 기운이 스며드는 시멘트 블록 벽, 낡은 문틈에서 들어오는 찬 바람, 그리고 밤새

틀어도 따뜻해지지 않는 바닥이었다. 꿈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혹독한 계절을 보내고 나니 우리의 집수리 방향은 완전히 생존형 주택 개조로 선회했다. 낭만 대신 ‘어떻게 하면 따뜻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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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형 집 고치기, 첫 준비: 지원금과 파트너 선정


귀촌 1년 차, 아직 집수리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지자체의 귀촌 지원금을 받기 위한 준비는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귀촌 5년 이내 주어지는 혜택을 놓칠 수 없었다. 가점이 부여되는 귀촌 교육과 봉사 시간을 채우며 서류를 준비했고, 이 과정에서 구례에 먼저 자리 잡은 이웃들과 귀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보통 연초에 지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서류를 준비했고, 군청에 지원하여 무사히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관문인 업체 선정은 지원금 문제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다. 구례에서 지원해 주는 500만 원을 사용하려면 정식 등록되어 세금계산서 발급이 가능한 업체를 선정해야 했다.

인근 도시에서는 구례까지 와서 수리해 줄 업체를 찾기 어려웠고, 비용은 출장비가 포함되어 비쌌다. 불필요한 수리를 제외하고 꼭 필요한 수리만을 해줄 업체를 찾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돈은 내가 내는데, 왜 내 맘대로 집을 못 고치고, 업자 맘대로 집을 고쳐야 하는 거야?”



몇 군데 업체와 상담하는 내내 이런 갈등이 반복되었다. 시골집수리가 처음인 집주인에게 업자들이 자신들이 고치기 쉬운 방식을 최선이라 주장하거나, 심지어 이견 때문에 중간에 업체를 바꾸는 마음고생을 하는 경우를 1년 동안 너무 많이 지켜보았다.


우리 부부의 업체 선정 기준은 단 하나였다.


우리가 원하는 집으로 고쳐 줄 업체를 선정하자’는 것이다.


결국 '시골집은 이렇게 고쳐야 한다'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우리의 요구사항을 꼼꼼하게 들어줄 파트너를 찾았다.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는 귀촌하여 목수 일을 하는 동생들이었지만, 이들은 사업자등록 없이 일당 목수로 자유롭게 일하는 전문가들이었기에 지원금 사용 문제로 아쉽게 협력하지 못했다. 결국, 먼저 집을 신축한 선배들의 추천을 받아 구례에서 활동하는 업체를 선정하게 되었다. 수리 후 AS를 받기 쉽게 지역 업체를 선정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시골집수리 파트너 선정 TIP


마무리 확인 필수: 우리는 아쉽게도 업체 선정에 실패했다는 것을 집을 고치고 나서야 알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업체였고, 집수리의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한동안 고생을 했다.

시골 스타일이 마무리가 깔끔하게 끝나지 않고, 흐지부지되며, AS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지역 업체를 선정할 때는 마무리까지 일하는 모습과 AS 처리 방식을 꼼꼼히 확인하고 계약해야 한다. 구두로 확인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 인력의 부재: 시골에서는 전문적인 집수리 경험이 있는 업체를 만나기 쉽지 않다. 신축이나 증축을 ‘감’으로 대충 하며 살았던 인부들이 많은 탓에, 집수리나 신축에 대한 정보를 집주인이 직접 수집하고 공부해야 한다. 직접 해야 하는 부분이 어렵다면 돈을 들여 도시의 전문 업체를 잘 선정해야 한다. 그래도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집을 만드는 것은 자신 외에는 실현해 내기 어렵다.


전문 목수와의 협업: 만약 다시 처음 집수리를 하는 선택을 한다면, 지원금 한도 내에서만 세금계산서 발행이 가능한 업체를 이용하고, 나머지 공사는 전문 목수와 직접 협력해서 진행하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설비나 욕실 타일처럼 업체 선정을 해야 하는 곳에 세금계산서 발행이 필요한 지원금을 이용하고 나머지는 솜씨 좋은 목수를 찾는 것이 만족도 높은 집수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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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과의 최종 결별 : 석가래 VS 단열



집수리를 위해 도배장판을 뜯어내고 보니, 지난겨울 왜 그렇게 추웠는지 이유를 알았다. 집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졌는데 단열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겉모습만 보기 좋은 기와집이었다. 이 집에서 계속 살기 위해서는 단열이 최대 과제였다.

외부 단열이 효과가 좋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오래된 시골집의 외관을 망치고 싶지 않아 내부 단열을 선택했다. 그리고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순간은 천장 단열이었다.

<석가래가 보이는 천장>은 시골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 1순위다. 하지만 석가래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은 단열을 포기하거나 기와를 뜯어내고 석가래 위 지붕에 단열을 하고 기와를 다시 얹는 작업을 하는 방법이었다. 후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오래된 기와를 들어내는 과정에서 기와가 깨져 오래된 기와집의 풍경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깊은 고민 끝에 우리는 살아본 사람들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처음 몇 년은 석가래가 예쁘지만, 시간이 지나면 천장을 가로지르는 여러 개의 선이 정신 사납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깔끔하게 대들보만 남기는 것도 좋아!”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1945년 지어진 이 집은 천장이 낮아 아파트에서 사용했던 가구들을 쓸 수가 없었다. 구들 위에 보일러를 설치하느라 더 낮아진 천장. 보일러를 다시 설치하려면 천장이 더 낮아질 수 있어서 구들장을 들어내기로 했다.

망가진 구들돌을 들어내고 바닥을 낮춰 천장 높이도 올라가는 1석 2조의 선택이었다.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로망보다는 효율과 생존이 중요했다.


구들 VS 보일러 현실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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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방을 가지고 싶은 나와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남편은 의견이 달랐다.


“우리처럼 외출이 많은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불 때는 일이 쉽지 않아! 여행 갔다 늦은 시간에 돌아와 불을 때면 따뜻해질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


게다가 나무 구하는 일! 아궁이에 쌓인 재를 처리하는 일!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이 할 수 있겠어?”


“나는 불 때는 일은 좀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이 들어서는 힘들어….. 나중에 또 바닥 공사 해야 하는데 그냥 보일러 놓자!”


결국 편리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구들은 포기하고 보일러를 놓기로 했다.


우리 집은 화대종주 출발지인 화엄사 아래 민박이 활성화되었던 마을에 있다. 그래서 집집이 민박용 건물이 많았고, 우리 집 또한 건물만 다섯 채, 마당 한가운데 화단까지 있는 민박집 구조였다.


처음 집수리는 주 거처인 본채와 마당 정리. 불필요한 건물은 정리하고 텃밭을 만드는 작업.

이렇게 수리할 영역을 정리하고, 예산으로 3,000만 원 예산으로 집수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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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건축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


집수리를 진행하고 마무리하면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집주인이 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엔지니어인 남편은 건축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었지만, 대부분 아파트 건축에 대한 지식이었기에 시골집을 고치는 데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많았다. 1차 집수리가 끝난 후 남편은 아예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다음 수리 때는 그 지식과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귀촌 후에 집을 구입했다면 수리를 시작하기 전, 잠시 시간을 가지고 집과 관련된 기술을 배워보는 것이 좋다. 단독주택에 살다 보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귀촌 1년의 시간은 로망을 현실로 바꾸는 과정이 아니라, 현실에 맞춰 로망을 재조정하는 과정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구례에서 오래도록 따뜻하고 튼튼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집을 수리하는 과정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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