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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나를 닮은 집 고치기

흙먼지 덮인 시간, 그 집을 다시 숨 쉬게 하다

시골집을 고친다는 것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수리하는 행위만은 아니다. 그곳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존중하고, 흙먼지 속에 묻힌 본래의 멋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어쩌면 그건, 낡은 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깃든 시간과 화해하고, 우리의 시간을 새롭게 덧입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리산 아래, 사계절의 색이 고스란히 내려앉는 고즈넉한 풍경에 반해 덜컥 집을 구입했지만 현실의 집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수십 년의 세월이 내려앉은 지붕, 70년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낡은 싱크대가 덩그러니 놓인 부엌, 그리고 축축한 장판 밑에서 속절없이 썩어가던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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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지나가며 집을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처음부터 거창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도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집!"


그땐 몰랐다. 이 한 문장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 그리고 타협을 요구하게 될지.


설렘으로 시작했지만, 곧 거대한 현실의 벽과 마주해야 하는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마당, 잔디의 꿈과 자갈의 현실

핸폰 사진 971.jpg 집수리 이전


가장 먼저 손을 댄 곳은 집의 얼굴인 마당이었다. 집을 고치기도 전에 마당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선 낡은 화단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우사를 정리하기로 했다. 포클레인이 흙을 퍼낼 때마다 묵은 흙먼지가 회색 구름처럼 공중으로 솟구쳤고, 그 먼지 속에서 '우리가 정말 잘하는 짓일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IMG_0435.jpeg 집수리 이후


건물을 헐어낸 자리는 텃밭이 되었다. 지리산 아래라 그런지 땅에서는 유난히 크고 못생긴 돌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엔 원망스럽던 그 돌들은, 이내 텃밭의 경계를 꾸미는 둘도 없는 재료가 되어주었다.


나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로망이 있었다. 텃밭에서 살아본 적 없는 도시인에게 '잔디 마당'은 귀촌의 상징 그 자체였다. "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파란 잔디 마당."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그 꿈은 남편의 현실적인 한마디에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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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풀이 무섭게 올라올 텐데! 매일 풀 뽑을 수 있겠어?"


"나... 잘 못하는데... 햇빛 알레르기도 있고..."


"그럼 마당에 자갈 깔아!!"


서운했다. 내 유일한 로망을 그렇게 단칼에 베어내다니. 며칠을 툴툴거렸다. 하지만 남편의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풀은 내 키를 넘기기 일쑤라 할머니의 마당이 시멘트로 덮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도 관리가 어려운데 마당의 잔디는 언감생심이던 한두 해가 지나자 바로 마음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 집 마당은 현실과 타협한 자갈 마당이 되었다. 처음엔 아쉬움에 자갈만 쳐다봤지만, 비 오는 날 흙이 튀지 않아 좋았고, 풀 뽑는 노동에서 해방되어 좋았다. 시간이 지나며 텃밭의 크기도 줄어들고 꽃밭이 되어갔다. 시골 마당의 푸른 꿈은 자유로운 영혼, 자기 주관이 강한 정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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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덜어내고 채우며 삶을 맞추다


오래된 시골집은 모든 것이 현대의 삶과 어긋나 있었다. 좁고 낮게 구획된 공간들은 30평대 아파트 규격에 맞춰 나오는 가구와 가전제품들을 쓸모없는 쓰레기로 만들 뿐이었다.


최소한의 짐으로 살았던 옛사람들의 삶과 가진 것이 많은 현대인의 삶은 같은 공간을 살아갈 수 없었다.


민박으로 사용했던 한 채를 벽을 헐고 본채와 합쳐 부엌과 화장실을 만들었다. 미로처럼 붙어 있는 공간을 연결해서 다용도실과 부엌으로 연결하고, 단열 공사와 지붕 공사를 다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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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70년대의 부엌은 요리하고 대화할 수 있는 부엌으로 다시 태어났다.


가장 큰 걱정이자 도전은 '마루'였다. 예전 할머니는 마루로 스미는 겨울바람을 감당하기 힘드셨는지, 밖을 시멘트 블록으로 막고 마루는 비닐장판을 깔아 사용하셨다. 숨 쉴 구멍이 없던 나무 마루는 예상대로 처참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장판을 걷어낸 순간, 코를 찌르는 곰팡내와 축축하게 뭉개지는 나무의 잔해를 보며 마루를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하는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썩은 마루를 전부 걷어냈다. 집의 속살이 훤히 드러났다. 방바닥의 구들돌도 걷어내고 맨땅이 드러날 때까지 흙을 파냈다. 이때 나온 구들돌은 차마 버릴 수 없어 마당 디딤돌로 하나하나 옮겨두었다. 그렇게 폐허 같던 공간은, 며칠 뒤 윤이 나는 나무 바닥과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이 집에서 가장 멋진 복도로 다시 태어났다. 무너진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 탄생하는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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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대들보, 석가래에서 집의 민낯을 찾다


시골집의 매력은 천장의 높이가 다른 공간들이 겹겹이 붙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들보'가 있다. 집의 역사를 버텨온 영혼 그 자체다. 하지만 우리 집의 대들보와 석가래는 7, 80년대에 유행했던 촌스러운 황토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집을 고치는 업자는 페인트를 거둬낼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라인더로 갈아내야 하는 작업은 지루하고, 오래 걸리며, 조금만 방심하면 그라인더 날이 날아가는 위험한 작업이라 목수들도 가장 기피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집의 영혼을 되찾기 위해선 그 페인트를 벗겨내야만 했다. 방법은 오직 그라인더로 갈아내는 것뿐이었다.


남편이 그라인더를 잡았다.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혼자 며칠을 천장에 매달렸다. 온 집안은 분진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다. 작업을 하다 그라인더를 놓쳐 다리와 얼굴에 상처가 났다. 피가 흐르는 상처를 보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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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사람 잡겠다! 그만할까?”


하지만 남편은 붕대를 감고 다시 그라인더를 잡았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과 정성을 들인 노력 끝에 얻어낸 결과물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황토색 페인트 밑에서 수줍게 드러난 검붉은 나뭇결이 드러나는 순간, 비로소 집이 본래의 얼굴을 되찾고 깊은숨을 내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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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혹독한 추위와 맞바꾼 깨달음


시골집수리에서 '단열'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 과정은 우리에게 가장 뼈아픈 배움의 시간이었다. 시골은 도시가스가 아닌 기름보일러나 LPG를 사용하기에, 단열은 곧 난방비와 직결된다.


단열이 안 된 첫겨울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집수리 업체에 단열에 대한 요구를 강하게 했지만, 우리가 집수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1차 집수리는 단열이 충분하지 못했다.


업자가 추천한 ‘열반사 필름 단열재’는 시공자는 편하지만 내부 단열 자재로는 좋은 자재가 아니었다. 외부 단열재로 사용할 때 효과가 있는 단열재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우리가 원하는 집으로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업자가 이 정도면 됐다, 이렇게 하는 게 좋다 하는 말에 내 의견을 주장하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했다는 것이다. 마루와 화장실 바닥에 보일러를 넣지 않은 건 사는 내내 후회스러웠다. 끊임없이 조율과 요구를 하기 위해서는 집주인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집을 고치며 배우게 됐다.


TIP: 지금 집수리를 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단열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할 것이다. 시골집은 단열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바닥 난방을 할 때도 온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2차로 집수리를 했던 별채 공사는 보일러 코일을 돌릴 때 자갈을 함께 넣어 시공하여 자갈돌이 온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화장실 바닥도 보일러를 넣어 겨울에도 춥지 않고 습하지 않게 관리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좌식 생활은 힘이 든다. 시골집의 운치와 입식 생활의 편리함을 누리려면 바닥 공사를 해서 바닥과 천장의 높이를 아파트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입식 가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직접 수리하기 어렵다면 최대한 많은 업자를 만나 나의 의견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업자를 찾겠다. 돈을 충분히 지불하면 좋은 업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고, 돈을 낮추면 말만 앞서는 업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지불하는 돈에 비해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업자를 만나고, 집수리를 한 선배 귀촌인들을 방문해서 조언을 듣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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