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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3년 만 오천 평 고사리 농사, 2년 만에 접은

농사는 접었지만 구례의 콘텐츠를 기획합니다.

좌충우돌 고사리 농사


농부의 아들이었던 남편은 귀촌을 준비할 때부터 농사는 짓고 싶어 하지 않았다. 천주교 성지가 있는 용인의 산골마을, 숨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의 은이마을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 모습은 농사는 고단함 그 자체의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귀촌을 했던 2010년 즈음에는 발효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기였다. 각종 약재의 발효, 식초,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이 많았고, 남편인 공 선생도 식초와 발효에 대한 공부를 하며 귀촌준비를 했었다.

구례에 귀촌을 해서도 남편은 농촌기술센터의 교육을 듣고, 농업대학을 다니면서 추가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천천히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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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논농사나 밭농사가 아니 특수 작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남편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고사리 농사’였다. 3개월 정도만 채취하면 되는 단기간 농사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지리산과 백운산이 섬진강을 마주 보고 웅장하게 자리 잡은 구례는 고사리 맛도 좋고, 농사를 짓기에 좋은 장소이기도 해서 산에서 고사리 농사를 짓는 곳이 많이 있다.

처음부터 임야를 구입하기는 망설여졌는데, 마침 임대로 나온 1만 5천 평 정도의 고사리밭이 있었다. 우리는 우선 2년간 해보고 장기 임대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때만 해도 일당으로 일하는 동네 할머님들과 함께 웃으며 고사리를 채취 될 거라고, 참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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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뿔싸……

인생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방향을 튼다. 4월 고사리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시기가 녹차 채취시기와

정확히 겹치면서 고사리보다는 편한 녹차밭으로 할머니들이 가시면서 일손을 도와줄 분을 단 한분도 구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오랜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로 움직이는 시골에서 처음 농사를 짓는 외지인 농사를 도와줄 사람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우리 부부 둘이서 1만 5천 평의 고사리 농사를 감당해야 했다. ‘귀촌’으로

내려왔다 얼떨결에 ‘귀농’의 한복판에 뚝 떨어진 순간이었다.


농부의 시간으로 걷다.


고사리 채취가 시작되는 4월부터 6월 초는 농부에게 가장 바쁜 시기, 곧 ‘농번기’다. 밀 농사를 마무리하고

논에 모를 심어야 하는 시기이고, 밭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다. 농번기는 장날에도 사람이 없다는 말을 귀동냥으로 들었지만, 농부들이 실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그 치열한 시간의 밀도를 우리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농사를 짓기 시작하니, 비로소 보이지 않던 농부의 시간과 동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이 트기 시작해 사물이 식별 가능해지는 새벽 5시 반쯤이면 일어나 ‘출근’을 했다. 농사는 주말이 없다.


자연은 태양과 바람, 물로 생명을 키우는 거라 비가 와 고사리 채취가 어려운 날이 아니면 매일 산으로 가야 했다. 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그 시간, 길 위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경운기와 트럭이 지나다녀 깜짝 놀랐다. 같은 공간, 같은 구례 땅에 살면서도 우리는 농부와 완전히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농부들의 시간은 땅의 시간, 해의 사간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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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기 시작할 때 산에 도착을 해 6시쯤 고사리를 채취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산나물 채취용 작은 가방을 몸 앞에 매고, 빈 큰 포대를 짊어진 채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는 산을 오른다. 우리 부부가 3-4시간쯤 산을

거슬러 올라가며 고사리를 채취하면 낮은 언덕 한 면을 겨우 마무리하고 내려올 수 있었다.

오전 10시쯤 농막에 도착해 채취한 고사리는 그늘에 두고 아침 준비를 한다. 메뉴는 삶아 놓은 고사리, 김치, 양파를 넣어 삼겹살을 프라이팬에 굽고, 갖지은 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아침밥이지만 땀 흘린 노동 뒤의 ‘노동주’로 막걸리도 한잔!! 도시에서 해보지 못한 일상의 일탈로 잠시의 충전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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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나는 카페로 출근해 ‘카페 주인장’이 되고 남편은 다시 언덕 2-3개를 더 채취했다. 5시쯤 이른

퇴근을 해서 산으로 가면 그때부터 남편과 하루 종일 채취한 고사리를 삶았다. 그날 채취한 고사리를 삶아

널면 비로소 고시리 정리가 마무리되는데, 그때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저녁 9시였다.

피아가 식별되는 새벽부터 앞이 안 보여 불을 환하게 켜는 9시까지 고사리 농사는 하루도 쉼 없이 이어졌다.

시골은 저녁 7시가 넘으면 웬만한 식당은 문을 닫기 시작한다. 8시 이후는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한 농부들은 어디 들어가 뜨끈한 밥 한 끼 해결하기가 난감한 시간이다. 이 시각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가면, 우리처럼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다 늦은 끼니를 준비하는 농부들을 만날 수 있다. 평상시에는 사람이 거의 없을 그 시간이, 농번기가 되면 사람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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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서 처음으로,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았다는 걸 알았다. 문득,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오랜 시간을 살아온 농부들과 우리처럼 어딘가에서 흘러와 지나가는 바람처럼 살아가는 이주자들이, 어쩌면 같은 공간에서 다른 세상,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질문이 마음속에 조용히 떠올랐다.


수확이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일


농사를 지으면 수확으로 모든 것이 끝인 줄 알았다. 고사리 농사는 3 달이면 끝나지만, 만들어진 고사리를

파는 일은 1년 내내 해야 하는 또 다른 ‘일’이었다.

‘농산’(농산물을 도마로 구매해 판매하는 도매업자)에 넘기는 고사리는 가격이 너무 낮아, 겨우 인건비를 건지는 정도였다. 게다가 무게로 가격을 매기는 도매상에 원물을 넘길 때 조금이라도 더 돈을 받기 위해서는,

사실상 먹지 못하는 질긴 줄기 부분까지 채취해야 한다.

“아…. 그래서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던 고사리는 늘 한 번 더 다듬어야 했구나…..”

충분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니 농부들이 무게를 늘리는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늘 고사리 다듬는 걸 귀찮아하는 나는 삶아 그대로 음식을 해도 될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해서 팔았던 우리 고사리는 농산에 넘기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농협도 농산물을 저렴하게 납품받기는 마찬가지였고, 농업 경영체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임대 소농들은 그마저도 납품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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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우리가 스스로 판매하는 방법이었다. 고사리를 100g씩 정성껏 소포장해서 SNS를 통해서 팔고, 플리마켓에 나갈 기회가 되면 마켓에서 판매하기도 하고, 운영하던 카페에서 팔기도 하며 1년 내내 고사리를 팔았다.

결국 3년간 고사리 농사를 하고 남편은 농사를 접었다.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짓는 농부는 파종부터 수확, 가공, 판매에 이르는 모든 농사일을 오롯이 자신의 ‘몸’으로 지어야 한다. 농사를 ‘업’으로 삼으려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추어야만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2년의 고된 노동으로,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귀농과 귀촌, 장소 선택의 다른 기준

귀농과 귀촌을 나누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나의 의견은 다르다.

귀농을 하려는 사람과 귀촌을 하려는 사람은, 애초에 ‘장소’를 선택할 때부터 다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귀농에 성공한 내 친구는 귀농 아이템을 ‘딸기’로 선택하고, 딸기 농사의 메카라고 하는 논산을 귀농 장소로 선택했다. 딸기 농사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때 안내를 했던 멘토의 제안에 따라 그분이 농사를 짓고 있는 논산으로 장소를 정했다. 논산은 딸기 작목반 운영이 잘 되고 있는 곳이라, 딸기 농사의 A부터 까지 작목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농사로 정착을 잘하고 있다.


이것이 ‘귀농’의 성공적인 접근법일 것이다.


반면 귀농이 아닌 ‘귀촌’을 목표로 장소를 선택한 우리는 콘탠츠가 많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흐르는 ‘구례’로 장소를 정했다. 전기 기술자인 남편은 도시보다는 낮은 수입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병행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핸드메이더로 능력을 발휘해 카페, 에어비앤비 등 공간 기획자로, 시간이 지나며 로컬 여행작가, 로컬 기획자로 지역의 사람들과 협업하며 구례의 이야기를 담을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막연히 귀농 귀촌을 선택하기보다는 로컬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실패를 하지 않는 방법일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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