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새소리에 눈을 뜨고, 텃밭에서 딴 싱싱한 채소로 식탁을 차리며, 저녁이면 붉게 물드는 노을을 보며 차 한잔 마시는 삶.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귀촌은 윤기가 흐르는 잡지 속 한 페이지와 닮아 있다. '낭만'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도시의 피로를 잊게 해 줄 달콤하고 안락한 도피처로서의 시골 말이다.
그들의 낭만적인 동경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되뇐다.
나의 귀촌은 낭만이 아니었다고. 그것은 벼랑 끝에 서 있듯 위태로웠던 나를 살려내기 위해 감행한,
생의 가장 치열하고 절박한 선택이었다고.
나는 '도망'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단어에 담긴 패배의 뉘앙스를 거부한다.
도시의 속도를 견디지 못해 밀려난 사람, 경쟁애서 뒤쳐져 낙향한 사람일 거라는 짐작, 세상모르는
철부지 같다는 시선은 나를 오랫동안 불편하게 했다. 그 시선은 반대로 시골에 내려와서도 평상시와 같이
열심히 살고 있는 나에게 "편안하게 살려고 내려간 거 아니야? 왜 그렇게 살아?"라는 말의 다른 말이었다.
사람들은 몰랐을 것이다. 내가 액셀을 밟으며 떠나온 길은 안락한 휴양지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숨조차 쉴 수 없게 옥죄어오는 도시의 압력 속에서 뛰쳐나와, 스스로 숨을 쉴 구멍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어 나온 생존의 길이었다는 것을.
나에게 여행은 화려한 관광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 낡고 오래된 골목과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길을 떠났을 때 언제난 나를 사로잡는 건 웅장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마을 어귀에 묵묵히 서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나, 칠이 다 벗겨진 채 마을회관 앞을 지키는 낡은 평이었다. 그것들은 세월의 풍파를 피해 도망친
존재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비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갈라지고 터진 자신의 몸으로 그 자리를 지켜낸
전사(戰士)들이었다.
시골에서의 삶은 그 전사들의 삶과 닮아 있다. 이곳의 시간은 도시보다 느리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맞춰 더 정직하고 가혹하게 흐른다. 낭만을 기대하며 심은 텃밭의 작물들은 잠시만 한눈을 팔면
잡초라는 거대한 생명력에 순식간에 잠식당한다.
그림 같던 오래된 시골집은 겨울이면 뼈마디가 시리도록 냉기를 뿜어내고, 여름이면 온갖 벌레들이
주인행세를 하려 든다. 도시에서는 돈으로 해결되던 수많은 편리함이 사라진 자리,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건
오롯이 나의 노동과 땀이다.
도시의 소음에 묻혀 둘리지 않던 내면의 소리를 마주하고, 편리함 뒤에 숨어 퇴화해 버린 나의 생활 근육을
다시 깨우는 과정이다. 나는 이곳에서 매일 아침, 자연이라는 거대한 질서와 나태해지려는 나 자신과
정직하게 싸운다.
시간을 쌓아서 만들어지는 모든 일들은 자연의 사이클을 닮았다.
로컬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도 그렇다. 그 지역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결'을 읽어내는 일이다.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모습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이다.
귀촌 또한 마찬가지다. 시골이라는 공간의 낭만적인 겉모습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이 가진 거칠고
단단한 결 속으로 내 삶을 밀어 넣는 일이다.
밤이 되면 사방은 어두워지고 고요해진다.
도시의 소음과 불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적막하지만 고요함 속에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소리가 있다.
도시에서는 인공의 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별들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빛을 낸다.
타인의 시선, 사회적 지위, 통장 잔고 같은 세상의 조건이 희미해지는 자연 앞에서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아지는 지금.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구례에서의 12년
때로는 동굴 속에 머무르는 것처럼 세상과 담을 쌓고 내 안에서 살기도 하고,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꽃이 되고 열매가 될 수 있기를 꿈궈본다.
그 이야기를 찾아 사람들과 나누고, 기록해서 남기는 일.
구례에서의 2막,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