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에서 로컬기획자로 변신



1. 뷰파인더 뒤, 안전한 거리감을 사랑했던 관찰자


지난 글에서 나는 도시의 속도전에서 벗어나 구례라는 낯선 중력 안으로 들어온 과정을 이야기했다. 귀촌이 물리적인 이동이었다면, 오늘 할 이야기는 시선의 이동에 관한 것이다. 짐을 풀고 집을 고치고, 한해 한해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내 안에서는 미묘하지만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나는 본질적으로 아웃사이더였다. 무리의 중심에서 주인공이 되기보다, 한 발짝 떨어진 가장자리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위치를 좋아한다. 사진을 찍어 본 사람을 알 것이다. 피사체와 나 사이에 뷰파인더라는 물리적 거리를 확보해야만 비로소 온전한 사진이 찍힌다는 것을. 나는 그 '안전한 거리감'을 사랑했고, 타인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되 안전한 거리밖에서 살고 싶은 관찰자였다. 여행을 하며 알게 된 구례, 아무런 연고 없는 이곳에 정착을 하면서 더더욱 여행자처럼 낯선 여행자로 구례살이를 하고 싶었다.



2. 낭만이 증발한 자리에 남은 '생활자'의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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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활은 낭만을 가차 없이 증발시킨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낯선 여행자의 삶과 먹고사는 삶의 터전의 차이는 명확하다. 오래된 시골집을 고치고, 텃밭농사를 시작하는 일, 매일 아침 마을 입구에서 마주치는 얼굴들,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면서 나의 구례 생활은 관찰자에서 프레임 안의 생존자로 변해갔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을 흘리는 '생활자'의 데이터가 내 몸에 축적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변화는 바로 그 지점, 이방인의 껍질이 벗겨지고 원주민의 살갗이 돋아나는 그 모호한 경계에서 일어났다. 나는 여전히 뷰파인더 너머의 관찰자였지만, 내가 포착하는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완벽한 타인이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맥락이 읽히기 시작했고, 완전한 원주민들은 간과하는 ‘가치’가 눈에 들어왔다.


3. 낭만이라는 오해와 생존이라는 현실, 그 엇갈리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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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라는 장소에는 서로 섞이지 않는 두 개의 시선이 평행선처럼 달린다.


하나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외부인의 시선이다. 이들의 눈은 낭만이라는 필터를 거친다. 담쟁이가 덮인 돌담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그 시선은 표피에 머물 뿐이다. 반대로 칠이 벗겨지고 녹슨 살림살이를 마주하면, 그들은 반사적으로 ‘촌스러움’과 ‘불편’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 그 낡음 속에 깃든 주인의 손때와 시간의 맥락을 읽지 못하기에, 그들은 너무 쉽게 연민하거나 고개를 돌려보리는 오류를 범한다.


다른 하나는 이곳에 뿌리내린 원주민의 시선이다. 이들은 생존의 최전선에 서 있다. 아름다움이나 미학 따위는 사치다. 오직 "이것이 당장 농사에 쓸모가 있는가?"만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된다. 너무 익숙해서 풍경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렸거나, 치열한 실용주의 끝에 외부인이 보기에는 낯설고 기이한 풍경을 덤덤하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4. 낡은 유모차에서 읽어낸 시골 노인의 '최적화된 모빌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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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엇갈리는 두 시선이 충돌하는 지점, 그 좁은 틈새에서 경계인만이 발견할 수 있는 가치를 찾는다. 마을 어귀마다 어김없이 주차된 할머니들의 낡은 유모차가 바로 그 증거다.



명절날 도시에서 내려온 자녀들이나, 낯선 여행자들의 눈에 그 유모차는 아낄 줄만 아는 할머니의 궁색함'처럼 보인다. 마당 한쪽에는 자식들이 큰맘 먹고 사다 준 반질반질한 최신식 전동 스쿠터가 먼지를 쓰고 서 있다. 그럼에도 굳이 칠이 다 벗겨진 유모차 손잡이에 몸을 구겨 넣는 노모를 보며, 자식들은 답답함과 안쓰러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타박을 놓는다. "아이고 어머니, 저 편하고 좋은 새 차 놔두고 왜 청승맞게 다 떨어진 고물을 끌고 다니세요? 남 부끄럽게."


하지만 생활자의 데이터로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좁고 비탈진 밭두렁 길에서는 육중한 전동 스쿠터보다는 유모차는 편리하다. 보행을 보조하는 든든한 '지팡이'이자, 흙 묻은 쪽파와 마늘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다. 손잡이에 칭칭 감긴 청테이프는 가난의 상징이 아니라, 사용자의 신체와 지형에 맞춰 끊임없이 개조된 **'최적화(Optimization)'**의 흔적이다. 할머니의 유모차는 낡은 고물이 아니라, 이 척박한 산간 지형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된 가장 가볍고 효율적인 **'초경량 모빌리티'**인 것이다. TOP에 맞춰 사용하는 유모차를 1,2대 가지고 있는 나름 부자다. 맥락을 모르는 외부인은 겉모습만 보고 '궁상'이라 폄하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시골 노인의 생존 전략과 도구의 진화를 읽는다. 내게 그 유모차는 한 개인의 생애와 노동의 역사가 압축된 '이동형 아카이브'다.


5. "지겨워 죽겠다"는 당신의 일상이 내겐 인류학적 텍스트


오래된 대장간의 그을린 벽, 다방의 낡은 소파, 마을 정자에서 오가는 투박한 농담들도 마찬가지다. 여행자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고, 주민들에게는 그저 사는 이야기지만, 내게는 지역의 기후와 산업, 커뮤니티의 결속 방식을 보여주는 인류학적 텍스트다.


종종 마을 어르신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곤 한다. "서울서 온 양반이 뭐 볼 게 있다고 이런 시골 구석을 그리 좋아해? 우리는 지겨워 죽겠는데."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며 답한다. ‘그러게요~ 저는 왜 이런 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속으로 조용히, 그러나 확신을 담아 답한다. '어르신, 당신들이 무심코 사용하는 그 도구가, 당신들이 나누는 그 사소한 대화가 제 눈에는 무엇보다 빛나는 보석입니다.'


6. 관찰자에서 번역가로, 카메라를 놓고 노트를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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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쌓이며 나는 깨달았다. 로컬의 진짜 가치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익숙함이라는 먼지 속에 가려진 일상의 디테일에 숨어 있음을 말이다. 이제 나는 뷰파인더 뒤에 숨어 기록만 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그 숨겨진 맥락을 세상의 언어로 바꾸는 **'번역가'**가 되려 한다. 원주민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잊힌 가치를 수집하고, 여행자는 겉모습만 보고 오해하는 것들의 진짜 의미를 통역해 내는 일. 그것이 경계 위에 선 내가 이곳에 머무는 이유이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몫일 테니까.


하지만 발견만으로는 부족하다. 흙 속에 묻힌 원석을 가리키며 "이것이 보석이다"라고 혼자 외치는 것만으로는 세상에 닿지 않는다. 발견된 가치를 닦고 다듬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게 할 **'설계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내 몸과 같은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빈 노트를 펼쳤다. 이 산발적인 일상의 조각들을 어떻게 엮어야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가 될지, 그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이것은 나의 치열한 생존 기록이자,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세상에 던지는 작지만 단단한 출사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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