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12년 이제
'이방인이 아니라 기획자입니다'

도피와 정착의 사이, 12년의 데이터가 증명하는 것

달력을 넘기다 문득 손끝이 멈춘다.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향하던 그날의 날씨와 지금 창밖의 풍경이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막연한 동경과 도시로부터의 탈출, 그 불분명한 경계에서 시작된 나의 이주 생활이 어느덧 12년이라는 나이테를 돌렸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넘긴 시간이다.


지난 글에서 나는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살기 위해 귀촌을 선택했던 용기와 낯선 땅에서 겪었던 좌충우돌 적응기를 기록했다. 은둔의 7년, 도시에서 태어난 도시에서 살았던 습을 가지고 시골에서 시작하는 삶은 쉽지 않았다. 리틀 포레스트의 낭만은 자연과 가까이 살아가는 도시인에게는 낯선 공간이었다. 익명성아래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도시의 인간관계는 조상 대대로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다 아는 내밀한 시골의 인간관계 속에서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이라는 꼬리표는 생각보다 질기게 나를 따라다녔고, '그저 좋아서' 시작한 시골 살이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 사이에서 깊은 괴리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 12년의 불확실성을 뚫고 나는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버팀'이 아니다. 지난 12년의 시간은 내가 이곳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검증하는 긴 임상 시험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남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단순히 이곳에 거주지(Address)를 둔 사람이 아니라, 이곳의 가치를 세상에 제안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로컬기획자(Local Planner)**라는 직함으로, 12년 전의 나와 같은 이들에게, 혹은 이곳의 잠재력을 모르는 시장(Market)에 말을 거는 일을 하고 있다.


2. 풍경의 소비자가 아닌, 맥락의 생산자로 포지셔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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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 나의 포지션은 철저한 '관찰자'이자 '소비자'였다. 도시와는 다른 느린 풍경, 투박하지만 원형이 살아있는 사투리, 계절마다 바뀌는 땅의 채도를 그저 시각적으로 소비했다 카메라는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지만, 그 이면에 담긴 구조적인 문제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생활자'로서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풍경 뒤에 숨겨진 '맥락(Context)'이 읽히기 시작했다. 마을 어귀의 낡고 허름한 창고가 사실은 수십 년간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던 정치적 공간(사랑방)이었다는 사실, 무심히 자라난 잡풀처럼 보이는 식물이 실은 지역 특화 상품이 될 수 있는 귀한 약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생 흙을 만지며 살아온 어르신들의 주름진 손 안에는 농업 기술서 한 권보다 더 정교한 경험칙이 담겨 있었다.


로컬 기획자로서 커리어는 그 '재해석'에서 시작되었다. 기획이란 단순히 예분 카페를 차려 관광객을 모객 하는 일이 아니다. 지역이 가진 고유한 유산(Local Heritage)을 해채하여, 현대적인 언어와 비즈니스 모델로 다시 조립(Translate)하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정의한 나의 업(業)이다


12년 전의 나는 관찰자로, 여행자로 이곳에 머물기 시작한 "수동적인 수혜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의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능동적인 생산자'로 포지셔닝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관행적으로 짓던 농산물에 스토리를 입혀 브랜딩을 하고, 방치된 유휴 공간을 청년들이 모이는 코워킹 스페이스로 전환하며, 소명해 가는 마을의 구전 설화를 기록해 축제 콘텐츠로 기획한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철저한 기획과 실행의 영역이다.


3. 낭만은 제거하고 '설득'을 남긴다. 로컬 기획의 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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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종종 시골의 기획자를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혁신가'로 포장한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소멸 위기 지역의 현실은 그런 교과서적인 정의가 통하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로컬 기획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생존 본능과 결합된 **'배타성(Exclusivity)과의 투쟁'**에 가깝다.

자원이 한정된 소멸 지역에서 외부인의 진입은 환영받을 일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리스크'로 인식된다. 내가 12년을 살았건, 4년을 활동했건 상관없다. 그들에게 나는 여전히 '굴러온 돌'이며, 잠재적인 경쟁자다. 내가 외부인의 시선으로 원주민들이 미처 보지 못한 가치를 발견하고 변화를 제안할 때, 돌아오는 반응은 감탄이 아니라 **"네가 뭔데 우리를 가르치려 드느냐"**는 날 선 거부감일 때가 많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바로 '밥그릇'의 논리다. 정체된 지역 사회에서 누군가의 새로운 시도는 파이를 키우는 기회가 아니라, **'내 몫을 빼앗아가는 침입'**으로 해석되기 십상이다. 자신들이 수십 년간 곁에 두고도 보지 못했던 가치를 외부인이 찾아내어 비즈니스로 연결시킬 때, 그 감정은 응원이 아니라 미묘한 질투와 원색적인 비난으로 표출된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돈 다 벌어간다", "지역 정서도 모르면서 설친다"는 뒷말은 기획자가 감당해야 할 일상적인 배경음이다.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주도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솔직히 말해 우리는 아직도 이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서로 웃으며 내일을 이야기해도, 다음 날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제로섬(Zero-sum) 게임의 반복.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기 이전에,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패배주의적 질투와 싸우는 것이 내 업무의 8할이다. 이것이 화려한 로컬 브랜딩 뒤에 숨겨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기획의 민낯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지루한 참호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척박한 땅에서도 변화를 갈망하는 아주 소수의 '진짜'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를 경계할 때, 조용히 다가와 "우리 마을도 변해야 산다"며 손을 잡아주는 이장님, 내가 기획한 마을 여행에서 위로를 받고 돌아가는 도시의 여행자들, 그리고 질투와 텃세에 지쳐 떠나야 하는 고민을 하면서도 로컬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는 이들.


나는 그 좁쌀만 한 가능성의 데이터(Data)를 믿는다. 비난과 견제 속에서도 기어이 싹을 틔워낸 그 작은 성과들이야말로, 도시의 네온사인 아래서는 결코 측정할 수 없는 묵직한 삶의 효능감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싸우고 있고,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증명해 나가고 있다.


4. "거기서 뭐 먹고살아?"에 대한 비즈니스적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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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년을 돌아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단연 "거기서 뭐 해 먹고살아?"였다. 초반의 나는 이 질문 앞에 위축되었고, 내 선택이 도피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웃으며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이곳의 가치를 팝니다. 그리고 이곳의 지속 가능성을 기획합니다."

로컬 기획자로 살아가면서 나는 '성공'의 정의를 다시 썼다. 높은 연봉, 서울의 브랜드 아파트, 그럴듯한 명함이 성공의 척도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성공이란,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해 나가는 '문제 해결 능력(Problem Solving)', 그리고 내 이웃의 삶이 나의 기획으로 인해 조금 더 풍요로워지는 것을 목격하는 **'연대감'**이다.


12년 전의 내가 짐 가방 하나에 불안을 꽉 채워 내려왔던 그 길을, 이제는 수많은 예비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걷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역은 도피처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이 잠든 기회의 시장(Blue Ocean)이라고. 다만 그 기회는 흙 속에 묻힌 진주와 같아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관점'과 흙을 털어내는 '실행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이다.


5. 로컬을 기획하며 비로소 완성된 '나'라는 포트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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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2년 기록은 여기서 1막을 내리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서문이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 동안 나는 이곳의 흙과 바람, 그리고 사람들과 섞이며 비로소 온전한 '나'를 만났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12년 동안 단순히 로컬 프로젝트만을 기획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기획해 왔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맞춰 재단되었던 나를 해체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거대한 리브랜딩(Re-branding) 프로젝트였다.

이제 나는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맨다. 내일은 마을 어귀의 오래된 정미소를 개조해 만든 갤러리 오픈식이 있는 날이다. 그곳에서 또 어떤 이해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싹트게 될지 기대된다. 12년 차 로컬 기획자. 이것이 12년 전 길을 잃고 헤매던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가장 자랑스럽고 전문적인 직함이다.

도시의 빌딩 숲이 아닌, 사람과 자연, 그리고 일상이 어우러진 이 현장에서 나는 계속해서 길을 만들 것이다. 감상에 젖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단단하게. 나의 로컬 라이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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