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나와 너에 충실한 것. Sully, 2016
이륙한 지 불과 2분 만에 새떼와 충돌한 비행기가 동력을 잃는다. 155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탄 비행기는 그렇게 땅으로 추락한다. 40년 비행 경력의 베테랑 기장도 처음 겪는 비상상황. 비상운행장치도 말을 듣지 않고, 관제탑에서 지시하는 근처 공항으로의 회항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 순간 기장은 기지를 발휘하여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하는 판단을 내린다. 비행 역사상 가장 낮은 고도에서 비상 착수하는 결정을 내린 기장은 결국 비행기를 안전하게 강 위로 착수시키고, 결국 155명의 승객과 승무원은 전원 안전하게 구조된다.
영화 같은, 기적적인 이 사건은 2009년 1월 15일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그 영화 같은 실화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 역으로는 톰 행크스가 분했다. 감독과 배우만으로 왠지 기대되는 영화이지만, 결과를 뻔히 아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 영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형적인 인간 승리 감동 스토리 스멜이 강하게 풍기는 영화라는 점 때문에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특유의 휴머니즘적인 모습과 극적인 감동 스토리로 뽑아낼 수 있었던 소재를 무척이나 담담히 담아냈다는 점, 무엇보다 사건 자체와 제목처럼 '기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기적'을 만들어낸 한 인간에 집중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208초 간의 유례없는 비상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고, 비상착수 후 끝까지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장 '설리'의 모습과 '왜 근처 공항으로 회항하지 않았는지' 기술적 책임을 묻는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의 추궁으로 인해 순간의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설리'의 모습 속에서 '기적'이란 것은 무엇이고, '기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기시감과 동시에 슬픔이 느껴졌다. 그것은 기장 '설리'가 비행기의 내비게이션이라 할 수 있는 관제탑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비상상황에서 스스로를 믿고 비상착수를 결정하는 장면과 155명이 모두 안전하게 구조됐다는 말을 듣기까지 승객들의 안전을 챙기는 모습, 강 위에 처량히 떠 있는 비행기와 아슬하게 서 있는 승객들의 모습 속에서 더 강해졌다.
US항공 1549편과 155명의 승객, 승무원은 모두 안전하게 구조됐지만, 왜 세월호 승객 304명은 구출되지 못했는지. 기장 '설리'와 세월호 선장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것이 하나는 기적으로, 또 다른 하나는 처참한 비극으로 이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이건 '그냥 영화야'라고 생각하고 영화에 집중하려도 해도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 난 후에도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기적이라 불리는 US항공 1549편의 허드슨강 비상착수 사건은 한 사람의 두 가지 요소로부터 비롯되었다.
첫째는 기장 '설리'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40년 비행 경력과 오랜 시간 쌓인 동물적 감각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설리'는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하고 스스로 판단했다. 그것은 비상상황에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결국 기장 본인임을 알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판단했다. 관제탑의 지시를 따름으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었다. (물론 책임 전가의 결과는 모두의 죽음이지만)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믿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자신의 일과 판단에 대한 믿음과 책임은 자신의 일과 삶에 충실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둘째는 타인의 생명도 내 것처럼 여기는 사랑과 인간애다. 세월호의 선장처럼 추락 상황에서 혼자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고 가정할 때, '설리'가 어떤 판단을 했을지 모르지만, 기장은 자기만을 위한 판단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장'이라는 위치와 직업적 소명을 그저 충실히 했을 뿐일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자신의 그것과 동일시 여기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기장 '설리'에게 있었던 타인의 생명, 안전에 대한 애정, 공감이 '선장'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기적은 결과론적인 단어이지만, 기적을 만드는 요소는 결코 결과론적이지 않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 그리고 충실함. 그것은 당연하지 않다.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고, 성찰해야 하며, 되돌아봐야 한다. 인간에게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이익을 스스로가 취하는 것'은 본성이다. 그런 본성을 거스르는 것. 매일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채찍질하는 것. 그것이 기적 그 자체이고, 그것이 기적을 만든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내게,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은 그저 감동 실화 스토리에 대한 영화만은 아니었다. 유사한 상황이지만 너무나 다른 선택과 결과를 만든 우리의 모습이 더 슬퍼지고,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