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ke, 20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비와이의 Day Day 가사로 더 유명해진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은 믿음에 관한 성경말씀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다. 오감으로 느끼는 인간에게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닿지 않으며 귀에 들리지 않는 초자연적 현상들은 불사가의한 일이기에 과학적, 논리적, 이성적 기준과 근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이 존재하기에 이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서 추측이나 가설, 나아가 그것을 진리로 여기는 믿음이 '과학적 근거'가 빠진 빈 공간을 채운다.
문제는 인간의 머릿속에 공존하는 과학과 믿음이 서로 다른 본질의 영역에 있기에 때로 그것이 부딪히기도 하고, 서로 뒤섞이고 엉켜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와 근거가 믿음이나 그 믿음의 근거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될 때, 혹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욕망과 기대가 될 때 그것은 왜곡될 수 있고, 나아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기도 한다.
최근 <부산행>으로 이슈가 되는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는 그런 믿음의 본질과 왜곡된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수지 건설로 수몰 예정인 시골의 한 작은 마을에 어떤 목사와 장로가 꽃동산과 교회를 지어주겠다며 마을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영화 초반에 장로(경석)는 전형적인 악, 평면적인 악으로 묘사되며(마을 사람들에게는 선이지만), 목사(철우)는 진정으로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선한 목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에 반해 마을 주민인 민철은 아내와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웃에게도 괴팍하게 대하는 악질스럽고, 개차반 같은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전형적인 악인 장로 경석에게 속아 교회에 헌금과 충성을 바치는 순수한 마을 사람들과 목사 그리고 반대편에서 장로가 사기꾼임을 아는 민철이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과 갈등을 그리는 '사이비'에 관한 영화이지만 후반부를 갈수록 점점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누가 봐도 무지한 시골마을 주민들을 현혹시켜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인 장로의 모습에도 그가 선한 의도를 갖고 있을 거라고 믿었던 '목사'.
피를 토하는 중병에도 약 보다 교회에서 준 '성수'를 찾던 '칠성의 부인'.
설사 목사와 '성수'가 거짓이라 할지라도 그 거짓 때문에 부인이 행복하고 평안하다면 괜찮다는 '칠성'.
술집에서 일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면 괜찮다는 믿음을 가진 민철의 딸 '영선'.
술에 취한 남편에게 얻어 맞고, 위협을 당할 때에도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믿음만이 무기였던 민철의 부인이자 '영선의 엄마'.
사이비에 현혹되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마을과 이웃, 딸을 지켜보았음에도 먼 훗날 자신만의 또 다른 믿음으로 동굴 속에서 기도하는 '민철'.
왜곡된 믿음의 가장 첫 번째 속성은 '믿음의 목적성'이다. 어떤 대상이 목적을 충족시켜준다면, 그 대상이 진실한지, 실체가 있는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왜곡된 믿음은 인간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본능과 마찬가지로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이것은 칠성의 부인처럼 몸이 아프거나 무언가 처절하게 간절해본 적이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누가 봐도 허황되고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에도 그것이 주는 달콤한 결과와 꿈같은 해결책에 금세 빠져드는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믿음이 왜곡되는 이유는 그것의 근거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의 근거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되면서 믿음은 왜곡된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목사님의 기도 한 방에 기적적으로 걷게 되는 것을 보거나, 교회에서 준 '성수'를 마시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러한 눈에 보이는 것들에 근거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 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눈에 보이는 것'은 내 눈으로 보고 해석한 것이기에 그로부터 나온 믿음은 '나로부터 나온'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즉, 왜곡된 믿음은 그것의 근거와 원인이 내 안에서 나온다.
원체 믿음이라는 것은 이유가 없다. 외부에서 주어져 '믿어지는 것' 이 아닌 믿음이라면, 믿음의 근거와 이유가 '눈에 보이는 것'이고, 내 안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맹목적인, 왜곡된 믿음일 수 있다.
믿는다는 것을, 믿음의 대상을 눈에 보이는 것들로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누군가 명확하게 이해시키거나,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가 바로 사이비일 것이다.
영화 사이비를 보며, 믿음의 근거에 대해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했던 스무 살 초반 시절이 떠올랐고, 여전히 내 안의 왜곡된 믿음과 목적으로 믿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