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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Dec 22. 2017

한숨

겨울이라 좋은 건 딱히 없다. 굳이 꼽자면, 한숨을 깊게 내쉴 때 뜨거운 응어리가 차가운 공기에 부딪쳐 하얀 김이 불꽃처럼 보인다는 것. 그래서 한숨 쉴 맛이 난다는 것뿐.

언젠가부터 회사 문 밖을 나서면서 쉬는 한숨이 깊어졌다. 회사 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일하는 기계다'라고 속으로 되내이고, 문을 나서면서부터는 '지금부터 휴가다'라며 자기최면을 걸어왔었는데, 요즘은 웬일인지 퇴근하면서 용트림 하듯 한숨을 내쉰다. 돈을 내고 다니다가 돈을 받고 다니면서부터, '밥벌이'라는 신성한 '밥값'의 행위를 하면서부터, 어째 아이러니하게 점점 무언갈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그것이 단순히 언젠가부터 외롭고 초라한 의미가 되어버린 '꿈' 같은 건 아니다.

커피를 연료 삼아 몸과 머리와 감정을 쓰는 기계 같은 하루를 보내고 해야 할 일은 삐걱대는 기계를 잠시 쉬게 해주는 일이다. 요즘은 저녁 있는 삶이라며 그것마저도 투쟁으로 쟁취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내가 기대한 미래는 이게 아니었는데, 모두가 이게 맞다고들 한다. 누구는 '다 그렇게 살아'라고 보편의 위로를 해주고, 어떤 이는 '그러니까 얼른 퇴사하자!'라며 탈출의 능동적 의지를 불어넣는다. 그렇게 뭐가 맞는 걸까 고민할 새도 없이 고민이 쌓여가는 시점에 어느덧 내 등을 바라보는 후배가 똑같은 한탄을 내뱉는다.  
 

'선배, 하루하루 지겹고, 죽을 것 같아요. 이러려고 회사 들어온 거 아닌데. 다른데도 다 이런 거예요?'
  
겉으론 후배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주지만 마음으론 다르게 말한다.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래.'  
 

사실 나도 이런 일상을 진작부터 준비해온 것은 아니다. 단지 몇 년 더 익숙해졌을 뿐이지, 나를 잃어버리는 일상의 시간이 나도 아직 어색하다. '그냥 다 이런 거야'라며 생각 없이 산다면 모르지만, 그게 안되는 사람에겐 그것은 나를 기만하는 일이다. 후배에게 기가 막히게 멋진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한숨 좀 그만 쉬라는 후배에게 한숨도 숨이라며 한숨 그만 쉬라는 말 좀 그만하라고 했다.

퇴근길 유명 아이돌 멤버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다음 날 공개된 유서에는 그가 스스로 묻고 답한 질문과 대답이 있었다. 날 책임질 수 있는 건 누구인지, 그것은 혼자인 나뿐이라고. 왜 사냐고 묻는 질문엔 다들 그냥 산다는 한탄이 있었다. 유서만 보아서는 찬란한 시절에 스스로 생을 끊은 연유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울함의 심연 속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에, 왜 죽지 않아야 하는지에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인생이란 게 삶의 끝에서 결국 '수고했어'라는 인사를 받는 것이 전부라면, 스스로 수고했다고 생각했을 때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조금 이해되기도 했다.

정도만 다를 뿐 내 일상도 답 없는 질문으로 가득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게 내가 꿈꿔왔던 일상인가. 어떻게 하면 탈출할 수 있지. 난 그냥 먹고 놀고 싶은데. 나 역시 오늘도 무책임한 질문만 되내인다. 망상으로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내일의 출근 걱정에 난 이불 속에서마저 한숨을 쉬겠지. 이불속 한숨은 하얀 김도 나오지 않아 맛이 나지도 않는데. 그렇게 한숨 걱정에 또 한숨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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