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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ER Jun 13. 2017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적 오류에 대한 분석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ad verecundiam fallacy, 이하 VF)는 특정한 주장에 대한 근거로 특정 개인이 지지한다는 논증을 제시하는 경우 발생된다. 이러한 논증형식은 다음과 같다.

(A)
P1.A가 p를 주장한다.
P2(P1).그러므로 p이다.

이 논증은 A가 p를 주장한다는 사실에서 주장 p의 사실임(truthness)을 이끌어내는 논증이다. 그러나 이 논증은 부당하다. P1이 참이라도 P2는 거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를 약식논증(enthymeme), 혹은 생략삼단논법으로 취급해보자. 우리는 자비의 원리(principle of charity)를 사용함으로서 위 논증을 다음과 같이 보충해 볼 수 있다.

(*A)
P1.A가 주장하는 것은 언제나 참이다.
P2.A가 p를 주장한다.
Q1(P1,P2).그러므로 p는 참이다.

논증 (*A)는 이제 타당한 논증이 되었다. 언명 P1과 P2가 참일 때 결론 Q1은 언제나 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P1)과 (P2)를 통해 결론 Q1을 연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증은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결함을 갖고 있다. 자비의 원리를 통해 보충된 언명 P1의 건전성이 의심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 요컨대 A가 주장하는 어떤 명제가 거짓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A의 주장이 언제나 옳다는 가정을 함으로서 특정 주장이 옳다는 결론을 내릴 때 바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발생된다. 흥미로운 점은 A가 주장하는 것이 언제나 거짓이라는 것도 비슷한 종류의 오류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다음의 논증을 보자.

(*Af)
P1.A가 주장하는 것은 언제나 거짓이다.
P2.A가 p를 주장한다.
Q1(P1,P2).그러므로 ~p이다.

논증 (*Af)는 (*A)와 마찬가지로 연역적으로 정당하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전제 P1의 건전성이다. 이 명제의 형식은  <만약 A가 어떤 명제를 주장한다면, 그 명제는 언제나 거짓이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엄밀하게 형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L) A가 주장하는 모든 명제들의 집합 Γ에 대해, 만약 A가 Γ의 원소가 되는 임의의 명제 φ를 발화한다면, 명제 φ는 언제나 거짓이다.


그런데 (L)은 결국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L') A가 주장하는 모든 명제들의 집합 Γ에 대해, 만약 A가 Γ의 원소가 되는 임의의 명제 φ를 발화한다면, 명제 ~φ는 언제나 참이다.


쉽게 볼 수 있듯 (L')은 사실상 논증 (*A)의 첫 번째 전제와 다를 바 없다. 논증 (*A)에서의 A의 주장이 언제나 참인 것처럼 (L')에서의 A의 주장에 대한 부정은 언제나 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Γ에 토톨러지 원소가 있다면 어떠한가? (L')에 따르면 A에 의해 발화되는 명제 φ는 명제 ~φ의 참임에 대한 증거로 기능할 수 있다. 허나 Γ의 원소에 p∨~p가 있다면 (L')에 따라 ~p∧~~p가 참이 되며 이는 모순율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L')을 다음으로 교정할 필요가 있다:


(*L') A가 주장하는 모든 명제들의 집합 Γ에 대해, 만약 A가 Γ의 원소인 동시에 토톨러지가 아닌 임의의 명제 φ를 발화한다면, ~φ는 언제나 참이다.


이를 논증 (*A)의 첫 전제에 대한 형식적 틀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La) A가 주장하는 모든 명제들의 집합 Γ에 대해, 만약 A가 Γ의 원소인 동시에 모순이 아닌 임의의 명제 φ를 발화한다면, φ는 언제나 참이다.


라는 명제를 발굴할 수 있다. 그렇다면 (*L')이나 (*La)같은 명제를 통해 특정 주장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은 어째서 오류인가? 그것은 이러한 논증들, 예컨대 (*A)나 (*Af) 등이 발화자의 오류가능성(fallibility)을 고려하지 않고 발화자의 판단을 특정 결론의 근거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옳다>는 표현은 <예외없이 옳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특정 진술의 가부(可否)는 발화자가 누구인지와는 무관한 사안이다. 명제의 건전성은 발화자의 생각이나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명제가 함의하는 내용이 사실과 정합적인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발화자의 판단에 따른 진술이 사실인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는 발화되는 특정 진술과 그 진술의 건전성에 대한 경우의 수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a) 발화자가 진술 φ의 참임을 주장하는 경우(실제로도 φ인 경우)

(b) 발화자가 진술 φ의 참임을 주장하는 경우(실제로는 ~φ인 경우)

(c) 발화자가 진술 ~φ의 참임을 주장하는 경우(실제로는 φ인 경우)

(d) 발화자가 진술 ~φ의 참임을 주장하는 경우(실제로도 ~φ인 경우)


앞서 살펴보았듯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VF)가 오류인 이유는 (b)와 (c)의 가능성 때문이다. 그렇기에 (b)와 (c)의 경우가 배제된 상황에선 이러한 오류가 성립되지 않는다. VF는 오류가능성에 독립적일 수 없다. 그러나 이 결론은 괴이하다. 오류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닌가? 전문가의 진술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우리 모두는 그렇다면 VF를 범하고 있는 것인가? 제임스 카니에 따르면 A가 발화내용에 대해 믿을 만한 권위자라는 가정하에 A가 주장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해당 발화내용을 사실로 간주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다. 그렇다면 A가 특정 발화내용에 대해 권위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카니는 <그가 어떤 분야와 관련해 제시한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참이라면 그는 그 분야의 권위자다>라고 말한다. 문제시되는 것은 즉 오류가능성 그 자체가 아니라 적은 오류가능성을 갖는 발화자의 진술과 높은 오류가능성을 갖는 발화자의 진술의 구분이다. 그러므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는 결국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VF) 상대적으로 높은 오류가능성을 갖는 발화자가 주장하는 모든 명제들의 집합 Γ에 대해, 별다른 근거 없이 해당 발화자가 Γ의 원소인 동시에 모순이 아닌 임의의 명제 φ를 발화했다는 이유만으로 φ를 참이라고 간주하는 것


이 정의에 따르면 발화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실제 참/거짓 여부는 중요치 않다. 높은 오류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그가 발화자라는 사실만으로 결론을 연역하고자 하는 시도 그 자체가 오류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에 VF를 범한다 해도 논증에서 도출되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거짓이어야만하는 이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여기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권위자란 상대적으로 낮은 오류가능성을 갖고 있는 발화자로 정의되기 때문에 낮은 오류가능성을 갖는 발화자들의 진술을 참으로 간주하는 것은 VF가 아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논증은 VF가 아니다:


(C)

P1.A는 자동차에 관해 믿을만한 권위자이다.

P2.A는 자동차에 대한 명제들의 집합 Q={Y₁,Y₂,Y₃}를 주장한다.

Q1(P1,P2).그러므로 집합 Q={Y₁,Y₂,Y₃}의 원소들은 참이다.


그런데 믿을만한 권위자라는 명사의 내포는 역시 모호해보인다. 오류가능성의 높낮이는 상대적으로만 정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니와 쉬어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러면 어떤 분야에서 A가 믿을만한 권위자임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만일 그가 어떤 분야와 관련해 제시한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참이라면 그는 그 분야의 권위자인 셈이다. 이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ad verecundiam fallacy)란, 어떤 논증이 (C)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A가 본인의 발화내용과 관련된 분야의 권위자가 아닌 경우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만일 누군가가 어떤 자동차 모델이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데 A가 그와 같이 말한 사실을 근거로 삼을 때, 사실 A가 자동차에 관해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때의 논증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된다. 그러나 만일 A가 자동차에 관해 전문가라면, 그것은 올바른 논증이 된다.>(Carney, Scheer, 86)

 

카니와 쉬어는 <어떤 분야와 관련해 제시한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참일 때 그 사람은 그 분야의 권위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의된 권위자의 충분조건은 단지 특정 분야에 대한 오답제시 빈도가 낮다는 것뿐이므로 전문가가 아님에도 낮은 오류가능성을 갖는 일반인 역시 믿을만한 권위자로 취급될 수 있다는 문제를 갖는다. 또한 오답제시 가능성이나 정답제시 빈도 등등은 개연성의 문제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상 그 어떤 믿을 만한 권위자의 진술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 결론을 연역해낼 수 없다. 믿을만한 권위자는 사이비 권위자보다 오답제시 빈도가 낮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참인 진술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을 통한 결론이 결코 필연적 참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은 그것이 올바른 귀납이거나 올바르지 않은 귀납이라는 것과는 무관하게 실제 결론의 건전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올바른 귀납을 통한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에서도 거짓인 결론이 나오는 것은 가능하며 <올바르지 않은 귀납을 통한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에서도 참인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증 (C)를 올바르게 교정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C)
P1.A는 자동차에 관해 믿을만한 권위자이다. 그는 자동차에 관해선 거의 언제나 사실만을 말하기 때문이다.
P2.A는 자동차에 대한 명제들의 집합 Q={Y₁,Y₂,Y₃}를 주장한다.
Q1(P1,P2).그러므로 명제 Y₁, Y₂, 그리고 Y₃은 참일 확률이 높다.


카니에 따르면 (*C)는 올바른 논증이다. A의 권위자임에서 결론이 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A의 <믿을만한 권위자임>이 낮은 오답제시 빈도에서 근거지어지는 그 무엇이라면 <오답제시 빈도>에 대한 관측값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하는가? 가령 발화자 A는 청자 P에게 믿을만한 권위자이지만 다른 청자 Q 앞에선 긴장해서 자주 오답을 제시하기 때문에 A는 Q에게 있어선 사이비 권위자다. 이러한 경우, A의 진술로부터 특정 결론을 귀납하는 것이 VF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P에게 있어 충분히 믿을만한 권위자인 A가 동시에 Q에게 있어 의심스러운 사이비 권위자이기도 하다면 누군가에게 VF일 수 있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VF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인가? 객관적인 정답을 찾기 어려운 예술평론에서라면 권위자의 정의는 깨지는가? 누군가가 믿을 만한 권위자인지 아닌지는 결국 합의의 산물이다. 믿을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불분명해지는 지점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제아무리 똑똑해도 학계에서 왕따당하는 학자는 학적 자질을 의심받기 마련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VF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적용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혹자는 <선생님이 말했으니 사실이야> 따위의 주장이 VF의 일종이라고 지적하지만 권위자인 동시에 선생님인 사람이라면 위 주장은 VF에 해당하지 않게 되고, 누군가의 무오성을 토대로 진술의 건전성을 근거짓고자 하는 시도 그 자체가 문제라면 실제 권위자의 주장을 액면가치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오류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꽤 자주 권위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가령 우리는 아무런 의심없이 지구가 둥글다거나 유전자는 DNA를 매개로 전달된다거나 명왕성이 존재한다거나 빛이 태양에서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이 8분 12초라거나 아폴로가 달에 착륙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참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명왕성을 직접 본적이 없고 빛의 속도를 측정해본 적이 없으며 아폴로가 달에 착륙했다는 사실을 실제로 확인해본 적도 없고 유전자가 전달되는 과정을 지켜본 적도 없지만 이를 전부 믿는다. 여태껏 공부해온 내용도 있지만 이는 자연과학의 권위자들이 사실로 간주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어떤 방식으로든 권위자들의 진술을 액면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믿음이 종국엔 VF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어째서인가? 우리는 VF인 것과 VF아닌 것을 구분지을 수 없는 한 이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지금으로선, <믿을만한 권위자>를 소위 말하는 <전문가>로 번역해 모호한 오류가능성의 기준을 조금이나마 높여두는 것이 최선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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