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똑똑한 사람인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광장에서 외치던 "그노티 세아우톤"이라는 문구는 흔히 네 자신을 알라는 말로 번역된다. 본인의 우매함을 직시하라는, 지혜는 바로 그 사실을 인정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적 아포리즘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P)<똑똑한 사람들만이 자신을 바보로 여기고 바보들만이 자신을 똑똑하게 여긴다>는 에피그램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자신의 똑똑함을 시인하는 사람은 기실 바보에 가깝고 자신의 아둔함을 시인하는 사람이야말로 지혜에 근접한 사람이라는 바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여느 아포리즘이 그렇듯 논리적으로 따지고 캐묻다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보이기 마련이고 애초에 똑똑함과 바보의 정의도 불분명하지만 일단은 통상적인 의미로 (P)를 이해해보자.
나를 혼란에 빠뜨리는 고민은 대충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나는 내가 아는 것 없는 바보 애송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똑똑한 사람이 되고픈 욕구가 있다. 허나 이 문구에 따르면 나는 이미 똑똑한 사람이거나 바보가 아니다. 나는 내가 바보임을 부정할 의향이 전혀 없을 뿐더러 내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세상에 날고 기는 천재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같이 깜냥도 안 되는 듣보잡에 그런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나의 바보임>을 입증하기 위해 내 자신이 똑똑하다는 주장을 해야 하는가? 만약 자신의 똑똑함에 대한 시인이 곧 자신의 바보임에 대한 하나의 증거로 기능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바보임에 대한 나의 믿음을 방어하기 위해 내가 똑똑하다는 거짓 시인을 해야하는가?
나는 어리석다. 그렇다. 이것은 절대 불변의 우주적 진리이자 신의 섭리에 가까운 팩트 중의 팩트요 이젠 상수가 돼버린 일종의 공리다. 내 어리석음에 대해서라면 나는 끝도 없이─에라스무스와 몽테뉴가 쓴 것보다도 더 많이!─쓸 수 있는 준비가 돼있다. 문제는 좌우간 위 아포리즘을 읽어버렸다는다는 데 있다. 내가 백날 내 자신의 멍청함을 인정해도 (P)라는 진술이 머릿속에 각인돼버린 이상 멍청함에 대한 인정은 <나는 내 자신의 아둔함을 시인한 똑똑한 사람> 이라는 인정할수 없는 생각을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제 내가 어리석다거나 멍청하다거나 아둔하다는 말도─그리고 심지어 그러한 생각도─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돼버렸다. (1) 내가 (P)라는 아포리즘을 생각할수록 나는 <우둔함에 대한 인정은 현인의 덕목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프라임 될 것이고 나는 이런 나의 무의식적인 정신승리와 내가 현인이 아니라는 사실관계의 간극에서 야기되는 크나큰 괴리감으로 영원히 고통받게 될 수 있으며 (2) 내가 나의 멍청함을 시인할수록 지인들은 내가 현인이라는 세상 위험한 편견을 갖게될 가능성이 있는데 나는 친애하는 내 지인들이 거짓된 믿음에 현혹되는 꼴을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속일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똑똑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척 하는 것도 곤란하다. 내가 나를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똑똑한 척을 해도 나는 이미 <내가 바보라는 나의 믿음을 고수하기 위해 내가 똑똑하다는 거짓 믿음을 가지려한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알고 있으므로 이 지점에서의 <내가 똑똑하다는 나의 생각>은 <내가 나의 바보임을 시인하는 생각>의 연장선에 다름아니다. 즉 나는─이 진술의 참/거짓 여부와는 별개로─내가 (P)라는 진술을 의식하고 있는 이상 나의 멍청함이나 나의 똑똑함에 대해 생각해선 안 된다. 내가 의식적으로 나의 멍청함을 인정하고자할수록 나의 무의식은 나로하여금 진술 (P)를 떠올리게 하며 <어쩌면 나는 똑똑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한줌의 기대감섞인 의혹을 던져줄 테고 설혹 내가 이러한 부질없는 기대를 사전방지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나의 똑똑함을 인정한다 해도 나의 무의식은 나로하여금 <나는 (P)를 떠올림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거짓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일 뿐, 사실상 자신의 바보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으므로 (P)의 진술에 따르면 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탓이다. 물론, 이렇게 충돌되는 생각이 있다는 것은 현재 나에게 <자신의 멍청함에 대한 확신>과 <자신의 멍청함을 부정하고픈 마음>이 상존한다는 명확한 증거다. 당연하다. 자신이 멍청하다는 사실을 누가 받아들이고 싶을지. 단지 팩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안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똑똑한 사람이 아닐까>하는 무의미한 그러나 달콤한 유혹은 일종의 인지적 불평형 상태를 야기한다. 경험상 이런 생각은 하면 할수록 나의 지적 수준에 대한 나의 기대치의 정비례적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을─그러므로 상당히 위험해진다는 것을─나는 이미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다 자칫 스스로 내 자신의 똑똑함을 인정하는 흑역사를 만들게 된다면 (P)에 따라 나는 바보가 된다. 진술 (P)에 따르면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로 하여금 <나는 어쩌면 똑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망상>과 <나는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당위적 사명>을 불러일으키는 진술 (P)는 그와 동시에 <나는 역시 구제불능한 불가촉바보에 불과한 것이었던가!>하는 우울한 니르바나적 에피파니(라 쓰고 팩트폭행이라 읽음)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나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 역시 문제가 된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내가 똑똑하다는 거짓된 믿음이 지인들 사이에서 퍼져가는 꼴을 차마 볼 자신이 없다. 그러한 평가를 내려주는 것은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이러한 평가는 언제나 나에 대한 나의 기대치를 상향조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결과적으로 장기적인 측면에서 득보단 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트루입니다. 당신이 무심코 던진 칭찬,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나는 바야흐로 (P)가 사실이라 믿는 지인들에게 나의 바보임을 입증하기 위해 내가 똑똑하다는 주장을 해야하는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허나 안타깝게도─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이 글을 읽은 후부터는 내가 나의 똑똑함을 시인하는 모든 진술이 <내가 나의 바보임을 입증하기 위해 일부러 하는 거짓 진술>로 보일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나의 바보임을 시인하는 상황>과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앞서 내가 멍청하다는 바를 시인할 수 없게 돼버렸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 문장을 공개적으로 써버린 이상 나는 <내가 나의 멍청함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드러내버렸다. 고민해결을 위해 공개적으로 이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바보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바보!
물론 이 글을 공개적으로 썼다는 것 자체가 바보같은 일이라면 나는 내가 바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내 바보임을 입증할 수 있을테니 어쩌면 이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방금 막 뇌리를 스쳐갔지만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 글을 공개적으로 쓰는 것이 바보같은 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글을 공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므로 아무리 봐도 계획적으로 보이는 나의 바보스러움이 지나치게 바보같아 보이진 않아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결국 <똑똑한 사람들만이 자신을 바보로 여기고 바보들만이 자신을 똑똑하게 여긴다>는 에피그램에 대해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하는가. 이 문제는 <나의 지적 수준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관한 고민>과 <나의 지적 수준에 대한 나의 평가에 관한 고민>이 섞여있는 문제다. 당연히 내가 실제로 똑똑하고 말고는 (P)라는 에피그램 하나로 결정되는 사안이 아니다. 단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딜레마와 심적 고충이 문제일 뿐이다. 나는 (P)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머금고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P)가 사실이라면 자신을 바보로 여기는 나는 똑똑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이 결론은 내가 바보라는 기본 가정과 모순된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바보라는 전제>를 철회하지 않고서 (P)를 믿는 것이 가능한가? (P)가 거짓이건 사실이건 자존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빌어먹을 내 무의식은 (P)를 근거로대며 "난 기실 똑똑한 사람이다! 열등의 족쇄는 풀렸다, 만국의 우월감이여 단결하라!" 따위의 근자감 충만한 찌라시를 퍼뜨리며 내 정신을 오염시켜갈 것이다. 빤하다. 독특성-착각 효과. 즉 내가 의식적으로 (P)를 믿네 마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P)라는 문장은 말하자면 내 의식속의 기생충으로 남게 된다, 기억을 지우지 않는 이상. 이쯤되면 생각하기를 멈추는 게 최선의 방책인 듯하지만 나는 아직도 생각을 어떻게 멈추는지 모른다. 게임-오버다.
그리하여 결국 원점이다. 나는 나의 바보임을 인정해야하는가 인정하지 않아야 하는가, 나는 나의 바보임을 나의 무의식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거짓으로나마 나의 똑똑함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라면 자연의 섭리에 모든 걸 맡기고 선택하길 포기한 채 서서히 다가오는 아포칼립스급 팩폭 멘붕에 가만히 순응해야 하는가.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