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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곧 Jul 08. 2018

해납백천(海納百川)

학술교류 협력사업 논의를 위해 청도에 있는 중국해양대학교에 다녀온 적이 있다. 교정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화강암 바위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교훈(校訓)을 보게 되었다.  ‘해납백천 취칙행원((海納百川 取則行遠)’.


중국 송나라 때 고서 통감절요에 ‘해납백천’의 의미가 실려 있던 얘기라 한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진나라 귀족들의 이간질로 그의 핵심 브레인인 이사를 포함하여 외국계 중신들을 몰아내려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이사가 한 말이 바로 해납백천, 즉 ‘바다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라 한다.  모든 강물을 받아들인 바다는 멀리까지 갈 수 있다는 교훈인 듯하다.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 해서 언젠가는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품게 된다는 경구로 사용되는 말이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깨끗한 하천이나 더러운 하천, 큰 하천이나 작은 하천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야 하니 말이다. 더구나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 모든 하천을 오랜 기간 동안 묵묵히 정화해야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인내를 요구하는 것인가? 힘들고도 고통스런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 자금성의 모든 현판에는 몽고어가 한자와 함께 병기되어 있다. 자금성의 많은 전각, 누각, 대문 등에 걸려있는 크고 작은 현판에는 예외없이 한자와 함께 만주어(만슈리언)가 병기되어 있다. 만주족 누르하치가 세운 청(淸)나라는 한족의 명(明)나라를 정복한 정복왕조이다.


몽고족과 만주족이 중원대륙을 통일하여 원나라100년, 청나라 300년을 통치 한 동안, 한족에겐 참기 힘든 치욕이었을 것이다. 변발의 치욕을 인내하고 수용하여 자기의 통일왕조로 정화해 낸 것이다. 이민족에게 수시로 정복당한 역사를 지닌 중국에게, 그들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방법이자 자신들의 정통성과 명분을 세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중화사상이고, 그 중화사상의 핵심 실천전략이 바로 '해납백천‘인 것이다.     


타계한 스티브 잡스가 화려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는 선봉에 섰다고는 하지만,  실은 본인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라기보다는 몇몇 기본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다른 이들이 개발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라 한다. 즉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이란 여러 가지 요소들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창의적인 것은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새로운 것으로 융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낮은 곳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 그리고 그것을 오래 인내하며 정화해서 더 크고 창의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는 바다, 그 바다를 통해 세계 여러 곳까지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산에 있는 많은 분들이 모두 해운, 항만, 해양, 수산, 조선, 무역, 물류  바다를 중심으로  세계를 넘나드는  글로벌 경영인들이다. 바다를 공부하고 바다를 중심에 두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간직했으면 하는 경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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