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의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충무공 계초’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충무공 계초는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서 임진왜란을 맞아, 당시의 정황을 비롯하여 전란 중 왜군의 정황, 군사상의 건의, 진중의 경비 및 준비상황 등을 상세하게 조정에 보고한 내용이다.
충무공 계초의 의미를 살펴보는 이 세미나에서 해군사관학교 교수와 문화재청 관계자 두 분이 축사를 했다. 그런데 한 분은 충무공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사면을 청원한 정탁 선생의 후손이고, 또 한분은 원균의 후손이라 한다.
두분의 축사를 번갈아 들으며 역사는 살아있구나하는 생각에 미치면서 좌중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원균의
후손인 문화재청 관계자께서는 온양의 충무공 사당 근무시 매일 참배를 드린 분이라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두분의 후손들이 함께 모여 충무공의 기록물을 칭송하고 그 학문적 해석을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내편, 네편으로 진영과 사람을 나누는데 익숙해진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광경은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분법은 좀 긴 시간으로 바라보면 하등 의미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