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990년생

유예된 마침표

by 마가렛꽃


나는 노력하지 않는다. 이 시대가 청년에게 강요하는 가장 잔인한 형벌인 ‘노오력’이라는 단어를 증오한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한 패배를 선언하고 백기를 든 것도 아니다. 나는 노력과 포기 사이, 그 광활하고 축축한 회색지대에 서식한다. 사람들은 이 불확실한 정체(停滯)를 ‘준비 중’이라는 기만적인 수식어로 포장해 주지만, 나는 안다. 그래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이다. 타인에게 “무엇을 할지 고민 중”이라고 뱉는 말 또는 프로필의 포장글은 , 사실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숨어 있을 수 있을지 궁리 중”이라는 고백의 다른 판본일 뿐이다.


책상 위 노트북의 커서는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깜빡인다. 새 학기 강의에서 쓸 교안 파일은 하얀 비명처럼 펼쳐져 있다. 대학 시절, 나는 늘 똑같은 교안을 누렇게 바랜 종이 뭉치처럼 들고 들어오던 교수들을 경멸했다. 그들은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진리를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권태로운 현자들 같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열정적인 강의보다 족보만 있으면 학점을 쉽게 받는, 몸과 마음을 귀찮게 하지 않는 그들의 무책임한 안온함에 길들여졌다.


그리고 지금, 그토록 혐오하던 그들의 뒷모습을 정교하게 복제하고 있다.

교안을 응시하는 대신, 침대에 등을 붙이고 유튜브 쇼츠를 넘긴다. 누군가는 이 시간에 ‘미라클 모닝’을 설계하고 ‘갓생’을 전시하지만, 그들의 분주함은 내게 불쾌한 외계의 소음일 뿐이다. 이상하게도 이미 충분히 피곤하다. 무언가를 해낼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소모되는 에너지가 훨씬 더 지독하고 끈질기게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이 정도면 무력(無力)도 일종의 노동인 셈이다.


손가락 끝에서 무의미한 영상들이 명멸하다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IMF, 그때 우리는 어떻게 버텼나]

영상 속 남자는 잘 다려진 셔츠를 입고 자신의 고난을 회고했다. 휴학, 아르바이트, 그리고 극복. 그의 목소리는 잘 연마된 조약돌처럼 매끄러웠고, 서사는 기승전결이 확실했다. 고통조차 이미 화석화되어 전시용으로 박제된 느낌. 댓글창은 “그래도 그때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는 식의 승전보로 가득했다.


화가 치밀어 올라 댓글을 쓰려다 멈췄다.‘당신은 그때 이미 어른이었고, 싸울 대상이라도 분명했잖아요.’

나는 1990년생이다. 내게 IMF는 기억이 아니라 공기였다. 내가 자라남과 동시에 시작된 거대한 하강 곡선은 내가 의식을 차렸을 때 이미 우리 집의 기본값이 되어 있었다. 집안 사정은 늘 ‘좋아질 예정’이었지만, 그 예정은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처럼 방치되다 결국 폐기됐다.


어른들은 내 어깨를 짚으며 마법의 주문처럼 속삭였다. “그래도 네가 남자니까.”

그 말은 내게 갑옷이 아니라 투명한 감옥이었다. 남자라는 이유로 울음은 생략되었고, 책임은 구체적인 방법론 없이 덩어리째 던져졌다. 나는 기둥이 되어야 했으나, 기둥을 세울 땅은 이미 갯벌처럼 질척였다. 그래서 책임을 지는 대신, 책임질 수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사회라는 전장으로 나가는 대신 학교라는 참호 속에 숨어 “공부가 더 필요하다”며 스스로를 속였던 시간들. 그것은 학구열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비겁한 유예였다.


노트북 화면 속 커서는 여전히 깜빡인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데, 세상 모든 연대기에서 혼자만 낙오된 기분이다. 1990년에 멈춘 어떤 시곗바늘이 내 발목을 감아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만 같다.


"고장 난 시계는 하루에 두 번 은 맞는다. 하지만 잘 못 돌아가는 시계는 영원히 세상의 시간과 다을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빛나는 액정 화면 속에 의식을 숨긴다. 이것은 나의 살아온 방식이자, 내가 매일 아침 삼키는 항우울제 알약의 무색무취한 흰색과 닮은, 이 불안하고 서글픈 소설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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